화엄사 흑매를 아십니까? 우리 선조들은 유난히 매화를 좋아했던 것 같다. 눈 속에 핀 설중매 보는 것을, 봄날 누리는 최고의 풍류라고 생각했었다. 선비나 문인들은 서원에 매화나무를 심어 봄을 즐겼다. 산청 단속사지에 피는 정당매. 남명 조식 선생 서원에 피는 남명매, 담양 소쇄원의 백매. 등등이 있다. 고승들도 사찰에 매화나무를 즐겨 심었다. 일찍 꽃망울을 터트리는 통도사 영각전 앞 자장매, 선암사 무우전 앞, 선암매, 화엄사 각황전 옆 흑매, 등이 유명하다. 여러 매화들 중 사진가들이 사랑하는 매화는 단연 화엄사 흑매이다. 이 봄, 지리산 화엄사로 흑매를 만나기 위해 길을 떠났다. 이른 새벽 각황전 새벽 예불을 마치고 문밖으로 나서자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매화나무 주변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도 이 매화꽃을 사진에 담겠다는 염원을 막지는 못했다. 구례 화엄사는 국가가 지정한 보물이 네 점이나 있는 대 가람이다. 각황전 앞 <석등>은 보물 12호, 현재 보수중인 <4사자3층석탑>은 보물35호, <영산회괘불탱화>는 보물301호, <각황전>은 보물 67호이다. 그러나 흑매화가 꽃을 피우는 이때만큼은 그 귀한 보물들도 이 매화 앞에서는 뒷전이다. 화엄사 흑매는 조선 숙종 때 화엄사 각황전(覺皇殿)을 지어 그 기념으로 심었다고 하니 수령이 삼백년이 넘었다. 지리산 연봉으로 해가 솟아오르자 활짝 핀 매화는 더더욱 붉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 빛깔이 오죽이나 붉었으면 흑매라고 불렀을까! 오래 전 보았던 사극 드라마 “동이”가 떠올랐다. 주인공 숙빈 최씨로 나왔던 동이의 환한 웃음이 지금 저 매화와 닮았다. 나는 지금부터 이 흑매를 동이매라 부르리라. 각황전 상량문에는 영조의 어머니 숙빈최씨와 그의 아들 연잉군(훗날 영조)이 시주했다고 적혀 있다. 각황전이 완공되자 건물을 지은 계파스님은 시주자인 숙빈최씨와 연잉군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이 나무를 심었다고 전한다. 각황전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소리, 스님의 빗질소리, 그리고 산사에 가득한 매화향기, 이런 풍경을 담을 수 있는 이 시간이 행복해 나는 느꺼워하며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저작권자 © 미디어피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해선 전문 기자 foryak@naver.com 다른기사 보기 좋아요1슬퍼요0화나요0후속기사 원해요0공유하고 싶어요0 핫키워드 #화엄사 흑매 각황전 화엄사각황전 홍매 화엄사 기사 공유 페이스북(으)로 기사보내기 트위터(으)로 기사보내기 카카오톡(으)로 기사보내기 네이버밴드(으)로 기사보내기 URL복사(으)로 기사보내기 개의 댓글 회원로그인 작성자 비밀번호 댓글 내용입력 댓글 정렬 최신순 추천순 답글순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닫기 더보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비밀번호 닫기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본문 / 400 비밀번호 닫기 내 댓글 모음 닫기
화엄사 흑매를 아십니까? 우리 선조들은 유난히 매화를 좋아했던 것 같다. 눈 속에 핀 설중매 보는 것을, 봄날 누리는 최고의 풍류라고 생각했었다. 선비나 문인들은 서원에 매화나무를 심어 봄을 즐겼다. 산청 단속사지에 피는 정당매. 남명 조식 선생 서원에 피는 남명매, 담양 소쇄원의 백매. 등등이 있다. 고승들도 사찰에 매화나무를 즐겨 심었다. 일찍 꽃망울을 터트리는 통도사 영각전 앞 자장매, 선암사 무우전 앞, 선암매, 화엄사 각황전 옆 흑매, 등이 유명하다. 여러 매화들 중 사진가들이 사랑하는 매화는 단연 화엄사 흑매이다. 이 봄, 지리산 화엄사로 흑매를 만나기 위해 길을 떠났다. 이른 새벽 각황전 새벽 예불을 마치고 문밖으로 나서자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매화나무 주변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도 이 매화꽃을 사진에 담겠다는 염원을 막지는 못했다. 구례 화엄사는 국가가 지정한 보물이 네 점이나 있는 대 가람이다. 각황전 앞 <석등>은 보물 12호, 현재 보수중인 <4사자3층석탑>은 보물35호, <영산회괘불탱화>는 보물301호, <각황전>은 보물 67호이다. 그러나 흑매화가 꽃을 피우는 이때만큼은 그 귀한 보물들도 이 매화 앞에서는 뒷전이다. 화엄사 흑매는 조선 숙종 때 화엄사 각황전(覺皇殿)을 지어 그 기념으로 심었다고 하니 수령이 삼백년이 넘었다. 지리산 연봉으로 해가 솟아오르자 활짝 핀 매화는 더더욱 붉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 빛깔이 오죽이나 붉었으면 흑매라고 불렀을까! 오래 전 보았던 사극 드라마 “동이”가 떠올랐다. 주인공 숙빈 최씨로 나왔던 동이의 환한 웃음이 지금 저 매화와 닮았다. 나는 지금부터 이 흑매를 동이매라 부르리라. 각황전 상량문에는 영조의 어머니 숙빈최씨와 그의 아들 연잉군(훗날 영조)이 시주했다고 적혀 있다. 각황전이 완공되자 건물을 지은 계파스님은 시주자인 숙빈최씨와 연잉군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이 나무를 심었다고 전한다. 각황전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소리, 스님의 빗질소리, 그리고 산사에 가득한 매화향기, 이런 풍경을 담을 수 있는 이 시간이 행복해 나는 느꺼워하며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