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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212] 이 한 장의 음반: 바이올리니스트 원동은의 '관점들'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0.03.20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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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아드 예비학교와 음대를 거쳐 예일대에서 전액 장학생으로 석사와 최고 연주자 과정을 마치고, 뉴욕 스토니브룩 주립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바이올리니스트 원동은(Dawn Dongeun Wohn)의 데뷔 앨범 <Perspectives>(관점들)은 제목 그대로 새로운 관점의 제시다. 그녀는 한국, 미국, 아프리카, 러시아 등 다양한 문화적인 환경과 근원을 가지고 상대적으로 주목 받지 못한 여성작곡가들의 작품을 소개한다.

바이올린 원동은의 새 앨범 <관점들> Delos DE3547

줄리아드와 예일대학교에서 수학하면서 유럽과 남성 작곡가들의 작품만 연주로만 돌아가는 클래식 생태계를 체감했다는 그녀는 연주자이자 교육자로서 이번 앨범을 통해 전통적인 클래식 음악이 전부가 아니고 19세기부터 현재까지 동양과 서양, 소수의 시각 등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번 앨범을 위해 위촉된 강선정의 작품은 견우와 직녀에서 영감을 받아쓴 곡이다. <Star Crossed>라는 제목의 이 곡은 별이 빛나는 밤의 고요한 정경으로 시작된다. 현의 고음과 피아노의 3음 모티브의 지속으로 별들이 잠에서 깨어난다. 갑자기 빨라지는 피아노의 음형은 연인의 발걸음을 재촉한다. 오늘은 사무치게 그리워했던 임을 1년 만에 만나는 순간이다. 기다림을 길지만 만남을 짧고 아쉬움을 한 아름 담은 채 헤어져야 하는 운명, 또다시 일 년을 기다려야 한다. 곡은 그래서 여운을 담고 다음 만남을 기약하면서 끝난다. 세련된 스토리텔링에 절제의 미가 돋보이는 짧고 Compact 한 작품이라 인상적이다.

20세기 중반 활동했던 미국 여성 작곡가 Amy Beach의 <Romance>는 전형적인 유럽풍의 바이올린 소품이다. 3부 형식으로 되어있으면서 그녀가 유럽에서 작곡을 전공하고 학습한 1세대 미국 여성 작곡가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유럽 음악의 틀을 고수하고 아카데미 하다. 다만 의욕이 과해서 그럴까? 곡 하나에 지나치게 많은 걸 담으려고 한거 같아 질질 끄는 경향이 있다. 강선정의 콤팩트하고 과감한 압축이 더욱 빛난다. 요점만 딱 집약적으로 전달하는 게 더 어렵기 때문이다. 중언부언보다. 축약과 생략의 선문답이 음악적 묘미다. 다만 상대방(청자)도 그와 같은 수준을 요구하긴 하지만.

바이올리니스트 원동은

1939년 플로리다 마이애미 태생으로 여성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Ellen Taaffe Zwilich의 <Episodes: No.1 Arioso>는 전체 에피소드들 대신 이 1번만 수록되어 있으나 1번이라는 번호가 상징하듯 서두를 여는 묵직하고 장중한 Introduction, 서곡 같은 느낌의 곡이다. 기품 넘치면서 품위 있다. 바로크 시대의 음악 같기도 하다.Florence Price의 <Elfentanz>(요정의 춤)은 유쾌하다. 특성이 명확한 엘프라는 종족을(가장 알기 쉬운 예로 영화 <반지의 제왕>을 관람해보라) 엘프의 춤이라고 번역이 되지 않고 Elfen을 요정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체코 출신 작곡가 Popper의 첼로곡 <Elfentanz>도 잘못되었다. 아마 Elf라는 판타지 소설에서 등장하는 인물인 중세 설화의 가공의 인종이 우리나라에 제대로 들어오지 않아 개념이 없었을 시 포괄적인 의미로 쓴 단어들이 그대로 고착화되어 버린 듯하다. 난쟁이, 엘프, 오크 등은 엄연히 다른 종족이다. 한국인의 춤과 일본인의 춤이 명백히 다른 것처럼...

반주를 맡은 에스더 박(Esther Park)은 원동은과 줄리아드 예비 프로그램에서 만나 고등학교 때부터 20년간 같이 연주한 사이라고 하니 두 사람의 호흡도 자연스럽다. 이번 원동은의 음반은아마존에서 구매하거나, 애플 뮤직(Apple Music), 스포티 파이트(Spotify)를 통해 들을 수 있다. 원동은의 새 앨범을 통해 그동안 알지 못했던 미지의 세계, 생소한 영역을 조금이나마 더듬거리면서 탐험을 할 수 있었다. 소품이다 보니 작곡가들의 깊은 내면까지는 탐구가 미치진 못하였으나 남과 차별화된 관점에서의 음반 기획과 제작은 고무적이다. 원동은을 통해 특히, 생존 한국 작곡가들의 작품(남녀 구별 없이)이 알려지고 소개되길 바란다. 클래식 음악을 바라보는 관점이 사회학적으로 더욱 넓혀지는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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