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성 수필 [ 40 ] 울릉도 2 / 저동항
김홍성 수필 [ 40 ] 울릉도 2 / 저동항
  • 김홍성 시인
    김홍성 시인 ktmwind@naver.com
  • 승인 2020.03.16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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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멧이 물 위로 쑥 올라왔다. 조수 둘이 잠수부를 도와서 뱃전에 걸터앉게 한 후 잠수 헬멧을 몇 번 돌려서 벗겼다. 검은 잠수복 위에 덥수룩한 중년 사내의 핼쑥한 얼굴이 나왔다. 조수들은 좀 전의 그 큰 사발을 잠수부에게 건네고 됫병 소주를 콸콸 따랐다.

육지에서 배가 들어온 다음날 아침은 새파랗게 갠 하늘을 보여 주었다. 새하얀 구름은 어린 강아지들처럼 몽실몽실하고 귀여웠다. 바다도 언제 그렇게 사나웠냐는 듯이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무려 1주일 동안 겪은 섬의 악천후와 고독에 질려 있었다. 미소 짓는 바다에 홀려 며칠 더 머물다가 다시 악천후를 만나 갇히면 미쳐버릴 것 같았다.

나는 진저리를 치며 선창에 내려가서 다음날 떠나는 배표를 끊었다. 출항할 시각까지 남은 시간은 22시간. 하얀 강아지 구름들은 이제 저동항 쪽 능선을 넘어가고 있었다. 나는 도동항이라도 잠시 다녀오기로 작정하고 눈이 쌓여서 하얗게 보이는 언덕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도동항 가는 비탈길은 허리까지 쌓인 눈 사이로 도랑처럼 좁게 나 있었다. 눈 녹은 물이 졸졸졸 소리를 내며 흐르는 비탈길이었다. 그늘에 들어서면 길바닥이 아직 안 녹아서 미끄러웠다. 몇 번이나 넘어질 뻔 하며 내려온 저동항 포구에는 어선들이 정박해 있었다. 어부들이 배를 대고 내려서 길 하나 건너면 문을 열고 들어설 수 있는 대폿집들도 여럿 보였다.

그 중 한 대포집 앞 바닷가 도로에 사람들이 모여서 무언가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들이 바라보는 곳은 작은 어선의 뱃전이었다. 뱃전에는 세 사람이 보였다. 한 사람은 위아래가 붙은 검은 잠수복을 입고 앉아서 큼직한 국 사발을 두 손으로 들고 있었고, 그 사람 옆에 서 있던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손에 든 됫병 소주를 잠수복을 입은 사람의 사발에 조심조심 따르고 있었다.

잠수부는 사발을 들어 입에 대고 단숨에 마셔버린 후 호기롭게 뱃전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두 사람은 기다렸다는 듯이 잠수 헬멧을 들어 잠수부의 머리 위에 씌우고 시소(seesaw)처럼 생긴 공기 주입기 양쪽에 서서 손잡이를 눌렀다 올렸다 하면서 고무호스로 연결된 잠수복 안에 공기를 주입하기 시작했다.

잠수부는 뱃전에 걸터앉아 있다가 손을 한 번 들어 보인 후 바다 속으로 첨벙 들어갔다. 물속에서 잠수부가 무엇을 하려는지 궁금해서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한참 기다린 끝에 잠수부의 헬멧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는 한 손으로 뱃전에 늘어뜨린 밧줄을 거머쥐고서 다른 한 손으로 굵은 낚시 줄이 연결된 오징어 낚시 바늘 뭉치(수십 개의 낚시 바늘이 촘촘히 매달았다)를 뱃전의 조수로부터 받아들고 다시 잠수했다.

첫 번 째 잠수에서 뭔가를 찾았고, 이제 그 무엇을 건지기 위해 오징어 낚시 바늘을 들고 다시 잠수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무엇을 건지려는지 궁금했다. 현장 분위기로 봐서 뭔가 심상치 않은 물건이 올라올 것 같았다. 나는 그가 잠수한 바다 가까이 더 다가섰다. 발 치 앞에 바다의 파도가 물결치고 있었다. 길 건너에 있던 다른 구경꾼들도 건너와 내 옆에 섰다.

헬멧이 물 위로 쑥 올라왔다. 조수 둘이 잠수부를 도와서 뱃전에 걸터앉게 한 후 잠수 헬멧을 몇 번 돌려서 벗겼다. 검은 잠수복 위에 덥수룩한 중년 사내의 핼쑥한 얼굴이 나왔다. 조수들은 좀 전의 그 큰 사발을 잠수부에게 건네고 됫병 소주를 콸콸 따랐다. 잠수부는 대접의 소주를 단숨에 마신 후에 사발을 내려놓고 조수가 들고 있다가 건네준 굵은 낚시 줄을 받아들고 조심조심 서서히 당겼다.

잠수부가 조심조심 당기는 낚시 줄을 따라 수면에 올라온 물체는 시신이었다. 머리와 함께 오른손이 먼저 올라왔는데 그 손은 끊어진 새끼줄을 움켜쥐고 있었다. 엉덩이 쪽으로 내려진 왼손이 올라왔을 때는 손목에 찬 시계가 햇살에 번쩍였다. 맨 엉덩이가 올라왔고 바지는 둘둘 말려서 무릎 아래 걸려 있었다.

죽는 그 순간까지 손에 쥐고 놓지 않았던 새끼줄은 오징어 상자들을 묶은 새끼줄이었다. 귀동냥한 바에 의하면, 죽은 사람은 눈보라가 심했던 어느 저녁에 선술집에서 혼자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소주 두어 병을 마신 그가 다시 한 병을 더 주문해서 가지고 나갔는데 그가 없었다. 잠시 소변을 보러 갔겠거니 했는데 안 왔다.

다음 날에도, 또 그 다음날에도 오지 않았다. 그를 본 사람도 없었다. 필경 사고를 당했다는 결론이 나왔다. 사고 장소는 선술집 바로 앞 선착장. 그곳에는 새끼줄로 묶은 오징어 상자들이 바다를 향해 쌓여있어서 급할 때 용변 보기 적당한 자리였다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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