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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 스마트 소설] 왕녀 Princess

박인 작가
  • 입력 2020.03.13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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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예술가의 정신은 매매 대상은 더욱 아니었다.

자존감에 내상을 입은 P는 조용히 물러났다.

P는 별 다섯 개를 받은 레스토랑 테이블 아래로 손을 뻗어 내 무릎을 감싸주었다. P의 우아한 손끝에서 온기가 흘러들어왔다. 성감대가 무릎인 내 하체에 전기가 흘렀고 그녀 역시 볼이 상기되어 달아올라 있었다.

P는 내 다리를 파란색 하이힐 앞코로 간질이며 속삭였다.

-저희 아빠 전용기가 있어요. 너무 바쁘셔서 그걸 사용할 시간이 없는 게 문제지만.

P의 아버지는 재계의 거물이었다. 그녀는 그가 만든 왕국의 외동딸이었다. 항공회사는 물론 식구마다 비행기를 여러 대 소유하고 있다고 해서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시쳇말로 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것이다.

-파리에 빈집이 한 채 있는데 오빠 작업실로 쓰면 안성맞춤일 거예요.

애써 냉정한 척했지만 나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P는 계산하고 화장실에 다녀왔다. 몹시 당황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저 제가 아파트 열쇠를 잃어버렸나 봐요. 오빠 작업실에 같이 가면 안 될까요?

▲P는 우리가 함께할 금빛 미래 청사진을 보여주었다. ⓒ박인
▲P는 우리가 함께할 금빛 미래 청사진을 보여주었다. ⓒ박인

안될 이유는 없었다. 그녀는 이미 도시 여기저기에 수많은 빌딩을 소유하고 있지 않은가. 열쇠꾸러미가 필요하다면 관리인이 언제든지 가져다줄 것이었다. 나는 작업실로 향하는 택시에서 침묵을 지켰다. 돈으로 예술작품을 구매할 수는 있어도 예술가는 사고파는 물건이 아니었다. 치열한 예술가의 정신은 매매 대상은 더욱 아니었다.

P는 우리가 함께할 금빛 미래 청사진을 보여주었다. 들으면 들을수록 그녀가 냉혈동물처럼 느껴졌다. 내게 그녀의 왕국은 너무 멀었다.

▲박인 단편소설집 『말이라 불린 남자』
▲박인 단편소설집 『말이라 불린 남자』

 

위성도시 외곽에 있는 허름한 작업실에 도착했을 때 나는 쓰러진 자존심을 일으켜 세운 후였다. P는 문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내 목을 끌어안았다. 나는 그녀를 가볍게 뿌리쳤다.

-미안해. 너랑 이런 거 할 기분이 아니야.

어리석게도 나는 솔직한 감정을 드러냈다. P를 향해 나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내 침대에서 자도 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야.

자존감에 내상을 입은 P는 조용히 물러났다. 나는 3인용 소파에 모로 누워 잠든 척하며 그녀가 가기를 기다렸다.

P가 빠져나간 후 천천히 일어나 창문 옆에 서서 밖을 내다보았다. P를 태운 검은색 리무진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끝>

스마트 소설은 짧은 시간에 대중 영상 매체인 스마트폰으로 읽는 소설입니다. 눈으로 빠르게 읽고 머리와 가슴으로 깊은 감동을 주는 『박인 스마트 소설』을 연재합니다. 박인 작가는 단편소설집 『말이라 불린 남자』 스마트 소설집 『네 여자 세 남자』(공저)를 펴냈습니다. 또 다수의 개인전을 연 화가이기도 합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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