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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성 수필 [ 44 ] 뻐꾸기

김홍성 시인
  • 입력 2020.03.20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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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만두에 살고 있었던 어느 봄날 오후, 몸살이 나서 이불을 쓴 채 누워 있었는데 어디서 뻐꾸기 우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엔 어느 집 괘종시계에서 들려 오는 소리인 줄 알았다. 하지만 괘종시계의 뻐꾸기가 이 집 저 집 날아다닐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다들 그랬듯이 나도 고향 노래를 부르며 자랐다. 그런데 나는 고향이 어디라고 딱 꼬집어서 말하기 어려운 처지였다. 서울에서 태어났으나 한 달도 안 되어서 양구 땅으로 갔다가 돌 전에 포천 땅에 와서 자랐고, 열 살이 안 되어 서울로 유학을 가서 친척집과 하숙집을 전전하다가 군대에 갔기 때문이다.

서울은 태어난 곳이기는 하지만 정든 바 없고, 양구 땅은 오래된 흑백 사진 한 장으로 기억을 대신하고 있다. 포천 땅 또한 어릴 때 자란 곳이기는 하지만 스산한 기억들만 스치곤 했다. 그러므로 어린 시절의 나에게는 고향을 잃고 유랑하는 피난민 정서가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고 생각된다. 고향 노래를 부를라치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흐르던 어린 시절이 그것을 말해 준다.

내가 꿈꾸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이었다. 그래서 그럴듯한 산골 마을을 무던히도 많이 찾아 다녔다. 나는 내 고향도 이랬으면 좋겠다는 그림을 마음 속에 그렸다. 남의 고향을 찾아가서 베끼기도 하고, 이발소 그림에서 힌트를 얻기도 하고, 영화나 소설을 통해서 각색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내 고향은 내 이상향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어딘가에는 분명 그런 이상향이 있을 것이라는 허튼 꿈을 꾸게 되었다.

그 이상향은 다들 미쳐 돌아간다고 생각되는 대한민국에는 있을 수가 없었다. 세상과 격리되어 있음으로 해서 가난하기는 해도 푸근한 인정이 남아 있던 산골 마을들이 땅투기의 도마에 올라 요절이 나고 있을 때 친구들을 따라갔던 네팔 땅의 히말라야 산골 마을들은 정말 고향 같았다. 그곳 사람들이 먼 친척들 같았다. 나는 꿈에 그리던 고향을 찾은 듯 했다.

결국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근 십 년 가까이 네팔에서 살았다. 동포들보다 현지인들과 더 친하게 지내면서 산골 마을을 찾아 다녔다. 그러던 어느날부터 갑자기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공황 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나는 네팔의 공무원들로부터 체류 비자에 싸인을 받아야만 네팔에 살 수 있는 외국인이었다.

카트만두에 살고 있었던 어느 봄날 오후, 몸살이 나서 이불을 쓴 채 누워 있었는데 어디서 뻐꾸기 우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엔 어느 집 괘종시계에서 들려 오는 소리인 줄 알았다. 하지만 괘종시계의 뻐꾸기가 이 집 저 집 날아다닐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 뻐꾸기는 진짜 뻐꾸기였다. 그 날부터 우기가 올 때까지 뻐꾸기는 날마다 동네에 찾아와 울었다. 나는 '뻐꾸기 우는 소리가 들리는 곳은 어디나 고향'이라는 궤변으로 위안을 삼았다. 그러다가 유치찬란한 시 한 편을 썼으니 그것은 다음과 같다.

뻐꾸기

오늘도 뻐꾹 뻐꾹 뻑뻐꾹 뻐꾹
수억 년 대대로 뻐꾹 뻐꾹
토막말 밖에 모르는 배냇촌놈 뻐꾸기야
너는 어느 옛날에 고향을 두고 왔기에
이 낯선 세상에 와서 뻐꾹 뻐꾹
고향 사투리로만 우느냐

우리 아버지의 고향은 함경남도 함흥시이다. 올해 88세의 실향민. 그토록 강건하고 억세던 분이 이제는 걸음도 잘 못 걷는다. 그러나 고향에 가보고 싶다는 말씀을 우리 앞에서 하신 적은 없다. 다만 당신의 어머니 생각이 나서 눈물 짓는 때가 더러 있었는데 요즘들어서는 그런 일이 잦아졌다.

엊그제 무슨 일로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나와 내 동생은 고향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동생도 나도 우리의 고향은 아버지의 고향인 함흥이라는 얘기를 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실향민 1세라면 우리는 실향민 2세이며, 조카들은 실향민 3세라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오늘 그날의 이야기를 반추하면서 뒤늦게 떠오른 생각이 뻐꾸기였다. 뻐꾸기 우는 소리가 들리는 곳은 어디나 고향이라는 생각이었다. 봄이 문턱에 와 있으니 뻐꾸기가 찾아와 울 날도 멀지 않았다. 부모형제가 모여 사는 곳 또한 고향 아니겠는가? 고향이라고 해서 언제나 뻐꾸기 우는 화창한 5월은 아니지 않은가.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모여 사는 이곳이 바로 우리의 고향일 것이다.(2013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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