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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197] 도밍고의 사과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0.02.29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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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시도 도밍고(79)가 결국 자신의 성희롱 의혹을 폭로한 여성들에게 사과했다. 로이터· AP 통신 등은 26일 스페인 출신의 스타 성악가 플라시도 도밍고가 성희롱 의혹을 폭로한 여성들에게 해당 의혹을 제기한 지 6개월 만에 사과했다고 보도했다. 여성 성악가들에게 부적절하게 행동했다는 미국 오페라 노조(AGMA · American Guild of Musical Artists)의 조사 결과가 나온 직후 발표한 성명에서 도밍고는 지난 몇 달간 동료들이 제기한 의혹을 반성하는 시간을 보냈다고 밝혔다. AP는 도밍고가 LA 오페라 총감독을 지낸 지난 20년 동안 '도밍고로부터 성희롱을 당했거나 그의 부적절한 행동을 목격했다고 말한 이는 27명이었다고 전하면서 1990년대 2000년대에 걸친 권력 전횡의 한 단면이라고 하였다. 

황혼의 거장, 플라시도 도밍고, 사진갈무리: 플라시도 도밍고 페이스북

Agma 조사에 대한 기사 보고서가 나간 뒤 도밍고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구구절절이 심경을 밝혔다. 자신의 사과는 진심이었고 어느 누구에게든 어떤 방식으로든 동료나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거나 상처를 입히려는 의도는 없었으며 자신의 지난 행동에 책임을 지고 절대 공격적으로 행동한 적은 없었고 도리어 오페라 가수들의 경력을 홍보하고 알리는데 반세기를 헌신했다고 항변했다. 사과에 의해 만들어진 허위 인상을 수정하기 위해서도 더 많은 진술과 발언, 변호를 할 거라고 밝혀 귀추가 주목된다. 피해자 중 한 명인 소프라노 루스 델 알바 루비오는 도밍고가 직접 사과했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며 마치 골리앗과 싸움에서 이긴 기분이라는 소회를 전했다. 루비오는 자신이 20대였던 1999년 로마에서 도밍고를 처음 만났으며, 당시 미국 워싱턴 국립오페라 예술감독이던 도밍고가 캐스팅을 무기 삼아 자신을 수차례 추행했다고 폭로했다. 하루는 도밍고가 공연 결과물을 모니터링해 주겠다며 자신의 집으로 불러 입을 맞추려 했고, 거부하자 도밍고가 약속한 워싱턴 국립 오페라단에서의 역할을 다시는 맡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음악인들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대중의 박수와 갈채, 관심에 굶주린 사람들이다. 긴장과 떨림을 감추고 관객들의 브라보에 용기를 얻고 추켜세우는 말에 어린아이같이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그들의 성취와 평생에 걸친 학문과 공부의 성과에 그렇게 목말라 있고 피드백이 전무하다는 방증이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큰 무대에서 입추의 여지가 없이 들어선 관객들 앞에서 멋지게 들려주고 그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싶어 하며 그들의 함성과 박수는 음악인들의 가슴을 고동치게 만든다. 연예인과 똑같은 기질이다. 하나 대중 연예인과 클래식 음악인들의 결정적인 차이는 클래식 애호 인구의 부재와 시장의 미 형성, 결코 좁혀지지 않은 음악의 벽과 그로 인한 불공 감으로 야기된 공부 하고 노력하고 시간과 돈을 투자한 만큼의 반대급부를 못 얻은 데서 오는 고립성이다. 알아주지 않는다. 아니 모른다. 듣는 사람도 없다. 극소수의 클래식 감상 인구는 최고만 찾고 또한 클래식은 최고가 아니면 기량 차가 너무나 현저하게 드러나 감동의 폭과 깊이도 엄청난 차이가 난다. 백발이 성성한 여자 소프라노든 80이 넘은 원로 작곡가든 나이만 많았지 조금만 칭찬해 주고 감상평을 해주면 아이와 같이 좋아하고 어쩔 줄을 모른다. 왜? 막연한 박수와 잘한다는 건성의 대답, 무지에서 오는 무례에서 탈피해 진심으로 자신의 행위에 인정과 칭찬을 받은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예술성으로 좌지우지되는 게 아닌 상업성과 대중성, 포퓰리즘에 만연한 몇몇의 스타플레이어 인물 주도로 움직이는 우리 사회이기 때문에 에고(Ego)를 경계해야한다. 연주자가 존재하는 건 자신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음악을 위해서다. 보존과 계승은 연주자의 막중한 숙명이며 책임이다. 연주자라면 다른 어떤 것보다 음악 자체에 집중하고 헌신하는 게 역할이고 사명이라고 강조하고 자신의 에고를 작품보다 윗길에 놓은 건 최악이다. 상업주의에 경도되어 음악 자체의 본질에서 멀어져 상금, 콩쿠르 수상 등은 공허하고 자신과 주변의 영혼을 오염시킬 뿐이다. 훌륭한 예술가의 조건은 자기 자신의 정체를 확보하는 거다. 진정한 예술가라면 자기 안에서의 독창성을 끄집어 내고 자신만의 레퍼토리를 가져야 한다.

지난해 10월 15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콘서트를 앞두고 기자회견에 참석한 모습. 사진제공: 연합뉴스
지난해 10월 15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콘서트를 앞두고 기자회견에 참석한 모습. 사진제공: 연합뉴스

일련의 사태를 보며 19 세기 뉴질랜드 시인 Thomas Bracken의 "이해할 수 없어"(Not understood)라는 시에서 한 구절을 인용하며 단상을 정리한다.

Not understood! Poor souls with stunted vision

Oft measure giants with their narrow gauge;

The poisoned shafts of falsehood and derision

Are oft impelled 'gainst those who mould the age,

Not understood.

이해할 수 없어, 작은 시야를 가진 약하고 불쌍한 영혼들

그들은 자주 그들만의 좁은 작은 게이지로 큰 것을 측정한다.

그들이 내뿜는 독은 거짓과 조롱으로 점철되어 있고

나이를 먹어가는 거인들을 몰아붙인다.

이해할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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