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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 신사(216) - 내가 어떤 여자인가요?

서석훈
  • 입력 2014.08.16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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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창(소설가, 시인)




내가 어떤 여자인가요?



영화감독 김은 왕년의 여배우 장화자가 보쌈을 볼이 미어져라 먹고 있는 걸 보며 그 우월한 미모와 뇌쇄적인 몸매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서민적인 식성과 심성을 갖고 있는 걸 매우 좋게 보고 이런 여자에겐 오히려 돈을 좀 써야 마땅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만약 그녀가 아까 블루호텔 로비에서 만났을 때 ‘저녁을 여기서 먹으면 되지. 나가기는 어디 가냐’고 짜증을 내며 ‘여기 중식당 가서 코스 15만 원 정도 하는 거나 와인 곁들인 스테이크 2인 정식 39만 원짜리로 간소하게 때우자’는 소리를 했더라면 그렇게 하기는 했겠지만 그녀에 대한 인식이 지금처럼 긍정적이지는 못했을 것이었다. 남자의 돈을 아껴주려고 하면 할수록 남자는 그 여자에 대해서 뭐라도 더 하나 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건 감독 하나만은 아닐 터였다. .
“왜 안 드세요?”
장화자는 감독이 소주만 두 잔 마시고 고기를 몇 점 입에 가져가지 않자 바쁘게 먹다말고 물었다. 이 대목이 또 신선한 감동을 주었다. 보통 자기 혼자 먹기 바쁜데 이 와중에도 이 허기에도 감독이 식사를 거의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예리하게 파악하여 그 이유를 직접 물어보고 있는 것이다.
“드세요. 천천히 할게요.” 감독은 장화자가 서민적으로 먹는 걸 보며 이런 여자를 위해서라면 돈을 많이 써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있느라 음식 먹는 걸 잠깐 유보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보쌈을 내가 얼마나 좋아하는데.....그래서 소자 시킬까 하다 중자를 시킨 건데 이제라도 젓가락을 들어 화자 씨가 다 먹기 전에 맛을 좀 봐야겠다고 다짐했다.
“난 감독님이 날 잊지 않고 있어서 깜짝 놀랐어요.”
장화자는 배가 좀 부른지 먹기를 멈추고 말을 계속 하기 시작했다.
“안 잊히는 여자가 있는 법이죠.” “어머 그래요?” “그렇죠.” “주로 어떤 여자들이 안 잊히는 거에요?” “글쎄요. 돈 떼먹은 여자? 가시 같은 말로 상처 주는 여자?” “뭐에요!” “하하. 농담이고 이렇게 말하면 어떨까요? 화자 씨 같은 여자가 안 잊히는 여자라고,” “저 같은 여자요?” “네.” “내가 어떤 여자게요?” “어떤 여자일 거 같아요?” “아이. 놀리지 마시고,”
“뭐 지금 이 자리에서 다 말하면 심심하니까 천천히 얘기할 기회를 주세요.”
아 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궁금증을 유발해 만남을 더욱 이어가게 하는 고도의 전략! 감독도 자신에게 이런 말재주가 있는 줄 잘 몰랐었다. 장화자는 남자의 말문을 트이게 하는 여자이기도 했다.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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