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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193] 호숫가의 피아노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0.02.24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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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내린 초저녁 석촌호수를 호젓이 걷고 있다 쾅쾅쾅 하는 피아노 치는 소리에 혼비백산했다. 동호와 서호를 나누는 다리 밑에 내버려둔 업라이트 피아노를 누군가 자기깐에 연주라고 막 치는 소리에 소스라쳤다. 고요한 호숫가의 적막도 깨져버렸다. 사람들로 항상 북적거릴 수밖에 없는 고속버스터미널엔 누군가를 급히 부르는 소리, 버스를 타기 위해 바삐 뛰어가는 발걸음소리, 반가운 조우의 환호성과 환희, 헤어짐의 아쉬움과 슬픔의 눈물 등 다양한 소음들이 뒤섞인 시끌벅적한 삶의 현장인데 거기도 한편에 피아노가 놓여있다. 이런 북적거림 와중에 누군가는 또 치고 있다. 마치 그에게는 모든 시공간이 멈춘듯 자기 혼자 흥에 빠져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을 제외하곤 어느 누구도 가던 길 잠시 멈추지 않고 다들 지나간다. 피아노 소리까지 섞인 토요일 오후다. 버스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다 잠시 휴게소에서 내리자마자 반겨주는 건 노점상의 국적불명의 딴따라 노래 소리에 별 희한한 장난감, 번쩍번쩍 거리는 생활용품 등의 호객이다. 그러고 보니 어렸을 때 버스만 타면 기사아저씨가 시끄럽게 트로트도 아닌 이상한 지금의 콜라텍에서나 나올만한 변종 음악을 틀어대 멀미할 뻔한 적이 종종 있었다. 지금은 그나마 버스에서 그런 음악 틀지 않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될 정도다. 서울에 도착, 지하철 고속버스터미널역은 3,7,9호선 3개의 노선이 지나가고 거기에 복합적으로 쇼핑몰, 영화관, 백화점, 호텔 등이 입주해 있어 복잡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데 환승하는 통로에 나름 무대라고 조촐하게 꾸며 논 공간이 있다. 안 그래도 웅성웅성 정신없는 와중에 거기서 나온 색소폰과 앰프 스피커 소리까지 혼을 빼 놓는다.

석촌호수 돌다리 밑에 덩그라니 놓여있는 업라이트 피아노
석촌호수 돌다리 밑에 덩그라니 놓여있는 업라이트 피아노

어떤 자의 머리에서 나온 발상인지 모르겠지만 호숫가에 피아노를 놔둔 건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짓이다. 가구를 야외 물가에 놔둔다면 상태가 어찌될지 상상해보라. 하물며 피아노를 거기다 덜렁 놔두고 누구나 연주하게끔 하는 게 문화적 혜택이며 체험인가. 모진 풍랑과 함께 수천, 수만의 씻지도 않는 손을 견뎌내야 하는 피아노가 불쌍하다. 지금의 4-50대 이상은 어렸을 때 피아노라는 악기에 대한 동경이 있었고 성인이 된 지금도 약간의 선망과 아쉬움이 마음 한 구석에 조금은 남아 있을 것이다. 피아노라고 하면 부잣집이나 교회나 가야 한두 대 구경할 수 있는 부의 상징 중의 하나였으며 백색의 깨끗한 상아건반은 함부로 손을 데면 안 될 정도로 범접하기 힘든 순수한 오브제였다. 그 피아노를 앞에 앉은 교회누나나 부잣집 아가씨는 정말 악기에 어울릴만한 하늘에서 강림한 천사 같았다. 지금은 누구나 접하고 누구나 누릴 수 있는 대중성을 지향에서인지 이렇게 온 사방 군데에 놔두고 관리도 안 하면서 방치해 두었는데 누구나 만지고 때리고 (연주라는 단어를 쓰지 않겠다) 장난감 취급하는 게 문화체험이요 참여인지 묻고 싶다. 연주와 연습을 좀 구분했으면 한다. 자기 멋과 흥에 취해, 자기만의 카라르시스를 분출하기 위해, 자기감정을 여과 없이 토해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도구라면 자기만의 공간에서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음악연주/노래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음악연주/노래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송파구청이 2020년 석촌호수 주말 버스킹 공연팀을 모집하면서 별도의 출연료를 책정하지 않은 재능 기부 대상자로 한정하여 비난이 일자 뒤늦게 출연료를 책정하며 빈축을 사고 있다. 그저 축제의 일환으로 버스킹 팀을 모집할테니 하고 싶은 사람은 와서 하라는 개념에 문화예술인들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이런 행정과 공무원들을 탓하기 전에 사회 전반적으로 음악하면 공짜로 듣고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유희, 자기 멋과 흥에 취해, 자신만의 카타르시스를 분출하기 위해, 자기 감정을 여과 없이 토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도구 정도로만 여기고 있는 우리 국민들의 인식전환을 촉구한다. 음악은 공짜로 누리는거요, 음악이라면 감상과 연습의 수고 없이 쉽게 즐기는게 생활예술이요 복지로 안다. 음악과 문화에 대한 1도의 이해와 존중도 없으면서 그저 돈벌이의 수단으로만 여긴다. 아마추어와 프로를 구분하지 못해 기타 들고 나가 신나게 아무데서나 연주하면 그게 진정한 공연인가?스스로의 위상을 깎아 먹을 뿐이요, 그러니 그 정도의 수준으로밖에 취급받지 못한다. 몇천만원 주고 유명 가수나 연예인 섭외하면 환호성을 부르고 좋아하는 바로 옆의 아줌마, 아저씨, 오빠, 언니들을 탓해라. 지성의 전당이라는 대학까지 축제에선 난장판인 와중에, 장르 불문 순수음악에 대한 개념도 제대로 없는 와중에, 자신도 언제가는 수천만원 받고 뜨고 싶어 음악하는 사람들 와중에, 분개하고 연대하고 스스로의 값어치를 올려야 하는게 급선무다. 송파구청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국 모든 지자체 다 마찬가지다. 그들은 문화예술에 대한 개념이 없으며 책 몇권 읽고 자신이 무슨 전문가이냥 행동하는 행정가와 전국노래자랑 마냥 막걸리 마시고 온 산하를 먹자와 춤판으로 만드는 사람들은 누구인지 자문해야한다. 

논란이 있자 삭제되었던 송파구청의 버스킹 팀 모집 공고문
논란이 있자 삭제되었던 송파구청의 버스킹 팀 모집 공고문

어딜 가든 차분한 가운데 자연친화적이지 않고 붕 떠 있고 시끄럽다. 산에 가도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켠 등산객들, 한강변에 조깅을 나가도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서 틀어 놓은 음악, 밤만 되면 술에 취해 고성방가에 깔깔거리는 경박한 웃음소리와 거센 척하면서 내뱉는 욕지거리에 기겁을 금치 못한다. 자신의 밥그릇에 해당되는 사항이니 거기 관련된 자들만 벌때처럼 들고 일어난다. 행정의 인식이나 거기에 기대어 어떻게라도 득을 보려는 사람들의 처세나 악어와 악어새다. 더 큰 거악은 모든 걸 돈으로만 여기고 그게 성공의 잣대가 되어버린 대한민국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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