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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191] Critique: 2020 서울시향 모차르트 교향곡 36번 '린츠'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0.02.22 10:08
  • 수정 2020.02.22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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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한 자기 절제와 통제로 '악보대로' 원형에 접근하고 충실한 연주

작곡가 박영희가 독일에 온 지 24년 후인 53세 때 쓴 <고운 님>은 문병란 시인의 '땅의 연기', 한용운 시인의 '님의 침묵'에 바탕을 두고 있는 사랑과 그리움의 대상인 <님>을 주제로 한 작품이다. 전북 지방의 방언으로 어떤 대상을 그리워하거나 아쉬워한다는 뜻의 "기룬" 님을 찾아가는 길은 해탈일까? 님의 대상이 무엇이든 간에 아귀다툼하는 속세를 추월하여 구세주를 만나려는 염원이 담겨 있다. 곱든, 기루었든 제목은 순우리말로 참으로 곱고 아름다운 어감이지만 음악은 그러지 않다. 박영희나 한용운이나 전북 출신도 아닌데 생소한 단어와 어휘까지 남발하면서 자기고백적인 언사를 구사한다. 불교 의식 음악인 범패처럼 박 같은 타악기가 주도적으로 쓰이며 대위법적으로 다성부로 나누어진 현악기들은 비브라토와 트릴 등으로 떨면서 층위적이다. 한용운이 일제 치하의 암울한 현실에서 반영론적 관점에서 님을 광복 조국으로 갈구한 것처럼, 박영희의 님은 표현론적, 절대론적 관점에서의 사랑과 인생의 경지에 도달한 메시아다. 그 과정은 고통과 가시밭길의 연속이다. 온갖 잡귀들의 뒤죽박죽 울부짖음에 천태 망상이 담겨 있으며 듣는 사람을 백팔번뇌하게 만든다. 제목이 역설적이다. 차라리 '절규','외침' 이랬다면 어땠을까?

브라비시모! 마에스트로 가즈노 오시! 코로나19를 카타콤에 묻어버리고 당당히 성문을 통해 들어오는 개선장군이여~~~
브라비시모! 마에스트로 가즈시 오노! 코로나19를 카타콤에 묻어버리고 당당히 성문을 통해 들어오는 개선장군이여~~~

처절한 수행 뒤의 맑고 깨끗한 모차르트를 들으니 모차르트 효과(Effect)가 더욱 부각되었다. 기분이 상쾌해졌다. 긍정의 에너지가 꿈틀거렸으며 힐링이 되었다. 클래식의 우아함이 비통에 빠진 중생들의 절규로 같이 괴로워하고 침체되었던 기운을 일거에 환기시켰다. 현대음악은 너무 직접적이고 감추고 숨기고 싶은 진실을 까 보이니 불편하다. 시대의 아픔과 고통을 거짓 없이 외치고 치열하게 고뇌하는건 이해되지만 공감은 안된다. 그러기엔 지금 2020년 2월의 대한민국에서의 삶이 너무 불안하고 어둡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터질지 몰라 불안하고 암울한 이때, 때때로 선한 거짓말과 위로로 안심하고 싶고 어서 빨리 이 우환이 물러나기만을 바라는 지금의 현실이 음악으로까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거 같아 비참을 더한다. 차라리 모차르트를 통해 위로받고 힘을 얻고 싶다. 잠시나마 음악을 들을 때만은 잊고 싶고 꿈속에 살고 싶고 쉬고 싶다. 음악에서라도 현실이 반영된다면 우리는 쉴 곳이 없기 때문이다.

공연 시작 전의 작곡가 박영희의 독일에서의 영상편지
공연 시작 전의 작곡가 박영희의 독일에서의 영상편지

지휘자 가즈시 오노는 악보대로 군더더기 없이 지휘했다. 악보에 충실하면서 철저한 자기통제와 절제로 장인의 품격을 보여준 연주였다. 박영희에서도 밀집된 음향과 분산된 떨고 울고 꿈틀대는 여러 목소리들의 진동을 미세하고 철저하게 제어하였으며 모차르트에 와서는 반복을 다 지켜가면서 청량하고 밝게 모차르트 특유의 C장조 교향곡의 계보를 재연했다. (린츠 이후의 C장조 교향곡이 주피터라 불리는 왕중의 왕, 밝고 당당한 41번 교향곡이다) .연주자와 관객이 음악에 빨려가고 생동감이 넘쳤다. 당시 오스트리아 궁정의 모습을 대변하는 듯한 3악장의 미뉴에트와 햇살 넘치는 4악장에서는 감히 칼 뵘을 닮았다. 단언컨대 지휘자의 역량이 뛰어나 무소르그스키까지 기대하게 만든 린츠였다.

모차르트에서 뵘이라면 무소르그스키에서는 트럼펫의 범상치 않은 첫 솔로부터 카라얀을 연상시키게 만들었다. 무소르그스키에서는 각각의 그림(곡)을 사실적으로 재현해내며 악기들이 가진 소리를 최상으로 끄집어 내었다. 역시 모든 답은 악보에 있다. 악보에 충실하라. 괜히 자신의 해석과 설명, 개성을 마구 집어넣지 말고 악보대로 연주하라. 가즈시 오노는 일본인 특유의 기질과 정신으로 작곡가가 남긴 그대로 재현한 기본에 원전에 충실한 지휘지였다. 카타콤에 이젠 불길하고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묻어버리고 큰 성문을 당당히 통과해 승리의 개가를 울렸다. 이 시국에 가장 만나고 싶은 '님'을 만난 것이다. 오늘 서울시향과 가즈시 오노의 연주를 통해 다른 이들보다 먼저 만나고 왔다. 이제 얼마 있으면 다들 만날 테다. 그 버틸 힘과 감동을 오늘 서울시향 연주회를 통해 얻고 왔다.

모차르트는 칼 뵘, 무소르그스키는 카라얀! 서울시향의 마에스트로 가즈시 오노 !
모차르트는 칼 뵘, 무소르그스키는 카라얀! 서울시향의 마에스트로 가즈시 오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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