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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더 스키 홀릭 #7-도호쿠 이와테현의 숨겨진 스키장 순례기

김산환 전문 기자
  • 입력 2020.02.19 19:53
  • 수정 2020.02.20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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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토 고겐&시즈쿠이시&이와테 고겐 스노우 파크

 

이렇게 시즌이 끝나는 걸까? 215일 센다이공항에 내려 이와테현으로 가는 고속도로 풍경은 절망스러웠다. 2월이면 온통 새하얗던 산과 들이 너무 평온했다. 당장 모내기를 해도 좋을 만큼 봄빛이 물씬했다. 늦은 저녁 게토 고겐(Geto Kogen) 스키장 아래에 있는 세미온천에 닿았을 때는 부슬부슬 비까지 내렸다. 비 예보는 내일까지 이어졌다. ‘눈의 왕(King of Snow)’을 슬로건으로 내세운 게토 고겐 스키장. 얼마나 오래 동안 트리런의 천국으로 불리는 이곳에서 스키를 타려고 갈망했던가! 그런데 끝내 날씨가 도와주지 않을 모양이다. 정말 이대로 스키 시즌이 끝나는 것일까?

 

밤새 료칸 다다미 객실로 비긋는 소리가 들렸다. 개굴개굴 흘러가는 계곡 물소리도 생기가 넘쳤다. 다른 계절 같으면 참 낭만적인 하룻밤으로 기억될 터이지만, 이날은 그렇지 못했다. 그저 밤새 기온이 내려가 비가 눈으로 바뀌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다. 그러나 그런 바람과는 무관하게 아침까지도 비는 계속 됐다. 버스를 타고 게토 고겐 스키장으로 가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오래 동안 별러왔던 곳에서 마음껏 스키를 타고 싶던 꿈이 수포로 돌아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트리런의 천국 게토 고겐 스키장에서의 좌절

 

10여 년 전 게토 고겐 스키장을 찾은 적이 있다. 그 때도 이번처럼 게토 고겐과 시즈쿠이시 스키장을 취재하고, 앗피로 넘어가는 스케줄이었다. 딱 반나절만 허락된 게토 고겐 스키장에서의 시간! 하늘은 맑고, 정설 된 사면의 눈은 부드러웠다. 슬로프 주변 숲의 나무는 가지마다 눈송이를 한가득 안고 있었다. 스키를 타지 않고 그저 바라만 보아도 좋을 시간이었다. 그러나 게토 고겐 스키장의 매력이 슬로프가 아니라 숲이라는 사실을 그 때는 몰랐다. 아니, 알았더라도 숲으로 들어갈 생각은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는 트리런(Tree Run)을 할 실력이 안 됐으니까.

 

게토 고겐 스키장은 성격이 아주 분명한 스키장이다. 일본의 스키장 가운데 가장 젊은 스타일을 추구한다. 실재로 스키장 이용자들의 대부분이 20~30대가 많다. 스키 하우스에서 보이는 얼굴들은 모두 앳된 젊은이들이다. 숙소도 젊은 이용자의 취향에 적합하게 만들었다. 게토 고겐 스키장은 모두 숙소가 도미토리로 되어 있다. 모두 2층 침대를 사용한다. 이런 스타일의 숙소는 배낭여행 경험이 있는 젊은이들이 선호한다. 프라이버시와 좀 더 편안한 휴식을 우선하는 중년층 이상은 내키지 않을 것이다. 다만, 도미토리 반대편에 있는 프리미엄 룸은 스키어라면 누구라도 호감이 가게 생겼다. 주방을 여럿이 공유하기는 하지만 객실은 호텔급이다. 특히, 스키장 베이스가 바로 내려다보이는 조망도 좋다.

게토 고겐 스키장의 스키하우스. 
게토 고겐 스키장의 스키하우스. 젊은 스키어들이 많이 보인다. 
게토 고겐 스키장 스키하우스에 있는 카페. 직원이 아주 친절하다.

 

게토 고겐은 스키장 운영도 개방적이다. 지금이야 파우더 스키가 대세가 되면서 일본의 스키장들이 앞 다퉈 트리런 코스를 확대하고 있지만, 게토 고겐은 시작부터 트리런을 전면에 내세웠다. 적설량만 놓고 본다면 도호쿠 최대-지난해 강설량은 무려 19m나 됐다-를 자랑하는 게토 고겐은 스키장이 트리런에 최적화된 구조다. 스키장 어느 곳에서 트리런을 시작해도 베이스로 모인다. 따라서 트리런을 하다가 계곡이나 능선을 잘못 잡아 엉뚱한 곳으로 갈 일이 없다. 여기에 처음부터 끝까지 적당한 경사를 이루고 있는 산세와 지속적인 숲 관리를 통해 턴을 하기에 충분한 공간을 확보하는 스키장의 노력이 배가 되면서 최고의 트리런 스키장으로 등극하게 됐다. 이언 연유로 게토 고겐 스키장은 최근 해외 스키어들에게도 크게 어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런 게토 고겐 스키장도 오늘은 아니었다. 짙은 운무 속에서 가늘게 뿌리는 빗줄기가 모든 기대를 앗아갔다.

게토 고겐 스키장의 도미토리에서 쉬고 있는 스키어들. 
게토 고겐 스키장 도미토리에 있는 레스토랑.
게토 고겐 스키장 프리미엄 룸의 키친. 키친은 공용이지만 객실은 호텔급으로 좋다. 
게토 고겐 스키장의 프리미엄 룸의 객실.

 

스키장을 소개시켜주겠다는 젊은 사장 사다히데 수가와라(이하 수가와라)를 따라 정상으로 가는 곤돌라를 탔다. 수가와라 사장은 젊은 스키장을 추구하는 스키장의 수장답게 30대로 젊었다. 그의 헬멧과 스키에는 호설(豪雪)이라 쓰인 스티커가 선명했다. 호설은 강설량이 많은 게토 고겐 스키장의 모토다. 그에 따르면 한 해 약 4,000명의 외국 스키어가 게토 고겐 스키장을 찾는다고 했다. 이 가운데 40%가 이와테현에 직항편이 있는 타이완이고, 30%가 호주의 스키어라고 했다. 한국 스키어는 아직까지 많지 않다고 했다.

게토 고겐 스키장 전경. 슬로프가 하나의 베이스로 모아져 트리런 하기가 좋다(2006년 촬영)
게토 고겐 스키장의 보더들. 눈꽃이 하얗게 핀 저 숲이 트리런의 명소다.(2006년 촬영)

 

게토 고겐 스키장 정상에서 오른쪽으로 이어진 슬로프(2006년 촬영)

 

게토 고겐 스키장의 노천온천. 

 

수가와라 사장을 따라 가장 왼쪽에 있는 A1 슬로프를 내려왔다. 주말이라 그런지 스키어가 제법 많았다. 문제는 흐릿한 시야와 함께 딱딱한 슬로프였다. 어제 많이 내린 비로 약 30cm 가량의 눈이 녹았다고 하는데, 낮에 녹았다 밤에 얼면서 슬로프가 빙판처럼 딱딱했다. 이런 슬로프 컨디션으로 대부분의 스키어들이 힘들어 했다. 다만, 한국 모굴 스키의 대명사 김태일 감독과도 친분이 있다는 수가와라 사장은 그런 슬로프 컨디션에서도 얄밉도록 스키를 잘 탔다. 그를 따라 내려가며 슬로프와 트리런 코스에 대한 설명을 들었지만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A4 슬로프에서는 살짝 숲으로 들어가 봤지만 금방 포기했다. 숲에 있는 눈 역시 빙판이었다.

 

안개가 자욱한 게토 고겐 스키장.
게토 고겐 스키장 정상에서 오른쪽으로 이어진 슬로프를 타고 오는 스키어들.
게토 고겐 스키장의 슬로프에 대해 설명해주고 있는 수가와라 사장.
트리런을 할 수 있는 숲도 비가 온 뒤 얼어 빙판처럼 딱딱했다. 
게토 고겐 스키장 베이스 이어지는 슬로프. 짙은 안개와 이슬비가 내려 스키를 타기가 쉽지 않은 날이다. 

 

오전도 다 못 채우고 스키를 포기했다. 예정대로라면 폐장할 때까지 허벅지가 터지도록 트리런을 즐기며 파우더를 타야 했다. 하지만 슬로프 상태가 너무 좋지 않고, 가랑비가 고글에 달라붙어 시야도 확보할 수 없는 상황이라 스키를 접는 게 이롭다는 판단을 했다. 점심을 먹은 후 바로 시즈쿠이시 스키장으로 출발했다. 이동하는 버스 차창에 빗줄기가 흘렀다.

 

 

월드컵 다운힐 코스에서 캣스킹을 하다

 

시즈쿠이시 스키장 베이스에 있는 프린스 호텔 9층 객실에서 바라본 이와테산은 구름에 숨었다. 그 아래 내일 모래 가기로 한 이와테 고겐 스키장 위로 무거운 비구름이 드리웠다. 타닥타닥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아프게 들렸다. 정말 이걸로 올 시즌은 끝나는 걸까? 일본 스키 투어는 최소 1의 법칙이 있다. 45일 일정으로 투어를 가면 그 중에 하루는 대부분 파우더를 만난다. 물론 100%는 아니지만 거의 대부분 그래왔다. 그러나 이 법칙이 올해는 많이 깨졌다. 특히, 일본은 1월 말까지 눈 가뭄에 시달리면서 별 볼 일없는 시즌을 보냈다. 그러다가 2월 초에 일본 전역에 걸쳐 많은 눈이 내리면서 그동안 부족했던 눈을 일거에 회복시켰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었다. 213일을 지나면서 갑자기 포근해진 날씨에 많은 비가 내리면서 어렵게 회복한 눈을 녹여버렸다. 더 이상 이번 투어가 최소 1의 법칙을 장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게 되어 버렸다. 다행스러운 것은 내일 오후부터는 기온이 내려가면서 약하게나마 눈발이 날릴 것이라는 기상 예보다.

 

이와테현 스키 투어 3일째.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커튼을 열고 밖을 내다봤다.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 이 절망감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같은 시각 한국은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폭설이 내리면서 스키장마다 때 아닌 파우더 스키를 즐긴다고 난리인데, 적설량으로는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일본에서 이틀 연속 비를 맞으며 스키를 타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더욱이 오늘 오전은 월드컵 여성부 다운힐 경기가 열렸던 코스에서 캣스킹을 하기로 했던 터라 아쉬움이 더 컸다.

시즈쿠이시 스키장 베이스에 있는 프린스 호텔 9층 객실에서 바라본 이와테 고겐 스노우파크. 비가 내리고 잔뜩 흐린 날씨다. 
프린스 호텔 1층의 라커룸. 프린스 호텔은 로비와 라커, 렌탈실, 노천온천, 프렌치 레스토랑이 1층에 다 있어 심플하면서 편리하다.

 

캣스킹(Cat Skiing)은 슬로프를 관리하는 캐터필러(Caterpillar)를 타고 산으로 올라가 아무도 타지 않은 파우더를 타는 백컨트리 스키의 일종이다. 시즈쿠이시는 월드컵 다운힐 경기가 열렸던 슬로프에 곤돌라를 철거하고 일반 스키어들이 접근할 수 없게 했다. 대신 캣스킹만 가능하게 했다. 한 번에 4천엔이면 이곳에서 아무도 타지 않은 파우더를 경험할 수 있다. 이처럼 저렴한 가격에 캣스킹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행운이다. 특히, 해가 뜨는 시각에 맞춰 캣스킹을 할 수도 있다. 파우더 마니아들에게는 시즈쿠이시 스키장에서 가장 솔깃한 곳이다.

 

아침을 먹은 후 장비를 챙겨 호텔을 나섰다. 시즈쿠이스는 베이스가 두 곳이다. 왼쪽 프린스 호텔이 있는 곳이 한 곳이고, 호텔에서 오른쪽으로 500m쯤 떨어진 곳에도 베이스가 있다. 캣스킹은 오른쪽에 있는 베이스에서 출발한다. 오른쪽에 있는 베이스로 갔을 때다. 비가 진눈개비로 변하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눈으로 바뀐다면? 오후부터는 설질이 조금씩 바뀌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생겼다. 특히, 베이스보다 표고가 700m 이상 높은 정상부는 밤부터 비가 눈으로 바뀌었을 가능성이 컸다. 캣을 타고 10분쯤 오르자 풍경이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나무에 눈이 달라붙어 눈꽃이 폈다. 눈꽃은 고도가 높아질수록,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더 화사하게 피어났다. 아침을 먹을 때만해도 풀이 죽어 있던 취재팀에 기대감이 돌았다.

캣스킹을 하기 위해 캣에 스키를 싣고 있다. 
캣을 타고 올라온 정상. 이곳은 과거 월드컵 스키 여자 다운힐이 열렸던 경기장으로 지금은 캣스킹 전용으로 운영된다. 

 

그럼 그렇지! 해발 1200m 가까이 되는 정상은 우리가 상상하는 일본의 겨울 모습 그대로 다. 많은 비가 내렸는데도 정상부는 아직 완벽한 겨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다만, 약간 쌓인 파우더는 습기를 머금고 무거웠다. 그래도 파우더를 맛볼 수 있다는 게 어딘가! 파우더가 아니라도 편하게 스키를 탈 수만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아침까지의 상황과 비교하면 확실한 반전이다. 그것도 아무도 타지 않은 순백의 설원을 질주하다니! 저절로 야호~ 함성이 터졌다. 정상에서 최소 1km 이상은 신나게 달릴 수 있었다. 중반부는 얼어붙은 사면에 눈이 살짝 덮여 있어 엣지가 터지기도 했다. 하반부는 슬로프가 녹은 상태라 확실히 설질이 변해 있었다.

캣스킹 정상에서 바라본 시즈쿠이시 스키장. 짙은 가스에 가려 흐릿하게 보인다. 
캣스킹 정상에서의 활강. 이틀 동안 많은 비가 내렸던 것에도 불구하고 정상부는 설질이 나쁘지 않았다. 
캣스킹 정상에서 한 명씩 출발하고 있다. 뒤로는 과거 월드컵이 열릴 때 사용했던 곤돌라 시설이 있다. 

 

그렇게 두 번에 걸쳐 캣스킹을 했다. 눈만 많았다면-이런 가정은 무의미하지만- 정말 황홀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곳 같았다. 그래도 급격히 호전되고 있는 날씨는 위안이 됐다. 캣스킹은 첫 번째보다 두 번째가 훨씬 더 설질이 좋았다. 오후에는 더 좋아질 것이고, 내일은 더욱 좋아질 것이다. 그런 기대를 품을 수 있다는 것은 불행 중 다행이었다.

과거 다운힐 경기가 열렸던 슬로프를 따라 멋지게 활강하는 텔레마크 스키어.
캣스킹 중단부에서 멈춰서 쉬고 있는 취재팀. 눈만 좋았다면 기억에 남을 코스다. 
취재팀이 내려가는 동안 캣도 따라서 내려오고 있다. 

 

점심을 먹은 뒤부터는 본격적으로 시즈쿠이시 스키장 구석구석을 돌아봤다. 시즈쿠이시 스키장은 호텔에서 보이는 모습이 전부가 아니다. 스키장은 베이스에서 로프웨이를 타고 올라가는 중간 허브에서 시작한다고 봐야 한다. 허브 아래에 딱 하나 있는 슬로프는 호텔로 돌아갈 때만 이용한다. 또 호텔 앞에는 정말로 스키가 고픈 이들을 위한 짧은 야간 운영 슬로프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중간 허브에 올라오면 스키장 풍경이 완전히 바뀐다. 일본잎갈나무가 군락을 이룬 숲 사이로 완만한 슬로프가 펼쳐져 있다. 아주 얕은 경사의 슬로프 두 개가 숲 사이로 아늑하게 자리했다. 오른쪽에는 스키를 처음 시작하는 이들을 위한 연습장이 있다. 정말 초보 스키어나 가족이 놀기에는 최적의 공간처럼 보였다.

시즈쿠이시 스키장 중간 허브에서 올라가는 리프트. 낙엽송 터널 사이로 리프트가 운행된다. 
시즈쿠이시 스키장 허브의 초급 슬로프의 보더들. 초보나 가족이 놀기에 최적의 장소다. 
시즈쿠이시 스키장 허브에 있는 푸드 코트. 이곳에서 점심을 먹으며 스키를 타다가 폐장에 맞춰서 호텔로 돌아온다. 

 

중간 허브에서 리프트를 두 번 갈아타면 정상(1,128m)에 오른다. 정상에서 시작하는 슬로프는 최소 중급 이상이다. 왼쪽으로 가는 슬로프 두 곳은 비압설로 운영되는 곳도 있어 상급 스키어들이 타기 좋다. 오른쪽으로는 중상급자 이용할 수 있는 슬로프가 있다. 2개로 시작하는 슬로프는 아래로 내려가면서 여러 갈래로 흩어진다. 왼쪽으로 내려가는 선샤인(Sunshine)이나 크리스탈(Crystal)은 정상으로 가는 리프트로 모아진다. 여기서 더 내려가면 중간 허브까지 간다. 오른쪽으로 뻗어나가는 다운힐(Downhill)이나 조이풀(Joyful), 로망스(Romance)는 또 다른 베이스로 간다. 특히, 정상에서 베이스까지 능선을 따라 이어진 다운힐은 대회가 많이 열리는 슬로프로 하단부는 최대 32도의 급경사 코스가 기다리고 있다.

시즈쿠이시 정상으로 가는 리프트에 얼어붙은 고드름. 
오전부터 비가 눈으로 바뀌면서 점차 제 모습을 찾아가는 시즈쿠이시 스키장 정상부.
시즈쿠이시 스키장 정상부는 가장자리를 따라 아직도 파우더가 남아 있었다. 
시즈쿠이시 스키장 정상에서 오른쪽 능선으로 이어진 코스. 바람이 많은 슬로프지만 이와테 고원의 그림같은 풍경을 볼 수 있다. 

 

오후 내내 정상 리프트를 타고 놀았다. 역시 고도가 높은 정상부가 설질이 좋았다. 여전히 슬로프 바닥은 딱딱해서 엣지가 터질 때도 있고, 비압설 구간은 녹다가 얼어붙은 눈덩이가 도사리고 있지만 오전에 비하면 확실히 설질이 나아지고 있었다. 많이는 아니지만 간헐적으로 내리는 눈이 슬로프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스키는 글렀다고 생각했는데, 한나절 만에 슬로프 컨디션이 이렇게 달라졌다. 오후 4시에 종료하는 마지막 리프트를 타고 정상으로 올라갔다. 그 넓은 스키장에 아무도 없었다. 스키장 전체를 전세 낸 것과 같았다. 회를 거듭할수록 달라지는 슬로프 상태에 환호하면서 마지막 온 힘을 다해 4.5km를 달려 프린스 호텔까지 내려왔다. 전날 게토 고겐 스키장에서 타지 못했던 아쉬움을 보상받기에 충분한 하루였다.

 

 

설질이 좋아지자 한껏 스피트를 내는 보더.
시즈쿠이시 정상에서 가장 왼쪽에 있는 슬로프로 이어진 눈꽃 터널. 
아무도 없는 슬로프에서 황제 스키를 즐기고 있는 보더.
시즈쿠이시 스키장 베이스에 있는 프린스 호텔. 이와테산 방면의 객실 조망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대반전을 완성한 이와테 고겐 스노우 파크

 

투어 마지막 날 아침. 버릇처럼 눈을 뜨자마자 커튼부터 열고 창밖부터 살폈다. 적설량은 최소 5cm가 되어 보였다. 어제 오후부터 설질이 좋아지고 있으니 이와테 고겐 스노우 파크(이하 이와테 고겐)은 확실히 다를 것이다. 다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오전 12시까지다. 오후에는 짐을 꾸려 공항으로 출발해야 한다. 마음이 급했다. 오전 8시 프린스 호텔을 떠나 820분 이와테 고겐 스키장에 도착했다.

이와테 고겐 스노우파크의 스키하우스. 
이와테 고겐 스키장의 푸드 코트.

 

이와테 고겐 스키장에 도착하자 눈발이 훨씬 굵어졌다. 함박눈이 무엇인지 보여줄 듯이 내릴 때도 있었다. 오전 830분부터 땡스키를 시작했다. 우선 오른쪽에 있는 초급 슬로프에서 두 번 정도 몸을 풀었다. 그러나 생각만큼 슬로프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얇게 덮여 있는 신설 아래로 딱딱하게 얼어붙은 슬로프가 있었다. 이런 슬로프를 타는 느낌은 좋지 않다. 파우더에 대한 기대감으로 속도를 내보다가 스키가 밀리면 머리카락이 쭈뼛 선다. 아직도 눈이 부족한 걸까?

 

스키어들이 함박눈을 맞으며 리프트로 향하고 있다.  

 

정상으로 가는 곤돌라를 탔다. 이와테 고겐은 조금 단순한 스키장이다. 이와테현의 명물 이와테산 자락에 둥지를 튼 이 스키장은 로컬들이 사랑하는 곳이다. 앗피나 시즈쿠이시 같은 유명 리조트가 있는 스키장은 외지인이나 외국 스키어도 많이 찾는다. 그러나 이와테 고겐은 숙박시설이 없다. 자연히 현지인들이 와서 당일 스키를 타고 간다. 주말에는 조금 붐비기도 하지만 평일은 대체로 한산하다. 이곳 역시 평일에는 전세스키가 가능한 곳이다. 스키장은 조금 단순하다. 정상에서 시작하는 슬로프 4개가 전부라고 생각하면 된다. 다만, 정상에서 시작하는 슬로프들이 장쾌하게 뻗어 있고, 중간에 경사 30도가 넘는 비압설 구간 등 짜릿한 곳도 있어서 단순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스키장 베이스에서 정상까지는 15분쯤 걸렸다. 고맙게도 곤돌라를 탈 때와 내릴 때 모두 직원이 스키를 꽂아주고 빼준다. 너무 황송해서 고마울 따름이지만 과잉 친절 같아 조금은 부담스러웠다. 스키를 들고 밖으로 나오자 발끝에 전해오는 눈의 감촉이 다르다. 뽀드득 소리를 내며 다져지는 느낌이 우리가 기대하는 그 눈이었다. 역시 1,213m의 정상은 달랐다. 처음에는 정상에서 곤돌라를 따라 내려가는 슬로프를 탔다. 적설량이 발목 이상을 넘자 스키를 타는 기분이 달라졌다. 황홀감이 밀려왔다. 부드러운 눈의 저항을 느끼면서 마음껏 속도를 내볼 수 있게 했다. 적어도 스키장 중반부까지는 우리 모두가 기대하던 스키의 신세계가 기다리고 있었다. 다만, 하단부로 갈수록 눈의 두께가 얇아지고, 딱딱한 빙판의 감촉이 느껴져 조심해야 했다.

이와테 고겐 정상부의 슬로프에서 파우더 스키를 즐기는 취재팀. 시간이 지날수록 설질이 좋아지면서 뜻밖의 황홀한 파우더를 만났다. 

 

스키장 정상의 좋은 눈 상태를 확인하자 마음이 급해졌다. 주어진 시간에 최대한 많이 즐겨야 했다. 두 번째는 정상에서 살짝 숲으로도 들어가 봤다. 숲은 눈이 좋은 곳도 있고, 여전히 크러스트 된 곳도 있었다. 나무의 간격이 적당한 곳도 있고, 잔가지가 많은 곳도 있었다. 일단, 트리런은 일찍 포기했다. 시간이 많지 않았기에 그렇게 한가하게 시간을 보낼 수는 없었다. 최대한 많이 이 고마운 파우더를 즐겨야 했다. 정상에서 가장 오른쪽에 있는 코스는 최대 경사 34도의 비압설 코스였다. 슬로프 중심부는 눈이 많이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자연 모굴이 남아 있었지만, 가장자리를 중심으로 좋은 파우더가 있었다. 특히, 이날 내리는 눈은 습기가 거의 없는 건설이라서 스피드를 조금만 내도 훌훌 날렸다. 급한 경사를 시작 계곡으로 이어지는 완만한 슬로프는 어제까지 비가 내렸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최상의 설질을 보였다.

이와테 고겐 스키장 정상부에서 시도한 트리런. 
숲에서 멋진 활강을 하는 보더. 
이와테 고겐 스키장에서 경사가 가장 센 맨 오른쪽 슬로프를 질주하는  스키어.

 

오전 12시까지 곤돌라를 6번 탔다. 단 한 번의 휴식도 없이 베이스에 도착하기 무섭게 스키를 벗고 곤돌라 탑승장으로 향했다. 일행 중에 흡연자도 있었지만, 담배를 피울 시간조차 없었다. 그만큼 눈이 좋았다. 그냥 두고 가기가 아까워 눈물이 날 정도였다. 눈 없는 시련의 시즌을 보내고 있었기에, 많은 비에 엉망이 된 스키장을 보며 좌절했었기에 지금의 눈이 소중할 수밖에 없었다. 눈은 계속 내렸고, 슬로프의 파우더는 점점 더 좋아졌기에 한 번이라도 더 스키를 타고 싶어 애를 태운 순간이었다. 이렇게 스키를 타고 싶어 안달이 났던 적이 과연 있었을까 싶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깊이를 더하는 눈 속에서 환상적인 파우더 스키를 즐기고 있는 취재팀. 이틀 동안 비가 내렸는데도 단 숨에 설질을 회복하는 믿기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다. 

 

오전 12. 정확히 스키장 베이스에 도착한 시간이었다. 휴게실에서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푸드 코트에서 대충 점심을 먹은 후 공항으로 출발했다. 이곳에서 공항까지는 3시간이 꼬박 걸린다. 이와테 고겐 스키장에서 내려오는 길은 삼나무가 터널을 이루고 있었다. 눈발은 점점 굵어졌다. 삼나무 푸른 가지가 회색으로 보일만큼 굵은 눈이 세차게 내렸다. 그때 일행 중 누군가 탄식처럼 말했다.

 

그래 이게 진짜 도호쿠지!”

 

이번 투어도 불안하기는 했다. 하지만 최소 1의 법칙은 깨지지 않았다. 앞으로 지구 온난화의 역습에 얼마나 이 법칙이 지켜질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이번 투어만큼은 극적인 대반전을 보여주며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할 수 있게 해줬다. 차창 밖으로 퍼붓는 함박눈이 우리의 겨울 이야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줬다.

이와테 고겐 스키장에서 반나절 밖에 시간이 없었지만 원없이 파우더 스키를 만끽했다. 

 

 

이와테현 스키투어 정보

이와테현에는 일본 5대 스키장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앗피를 비롯해 여럿 스키장이 있다. 이 가운데 게토 고겐(www.geto8.com)과 시즈쿠이시(www.princehotels.com/ko/ski/shizukuishi), 이와테 고겐 스노우 파크(http://iwatekogen.jp)는 이와테산 남쪽에 있다. 세 곳의 스키장 모두 도호쿠의 관문 센다이 공항에서 2~3시간쯤 걸린다. 다만, 공항에서 스키장으로 곧장 가는 교통편이 없어 기차와 버스 등을 갈아타고 가야 하는 불편이 있다. 게토 고겐 스키장은 JR 기타카미역에서 셔틀버스를 이용하면 50분이면 갈 수 있다. 시즈쿠이시 스키장도 JR 모리오카역이나 시즈쿠이시역에서 송영버스를 이용해 갈 수 있다.

게토 고겐 스키장은 일본스키닷컴(www.ilbonski.com)에서 45일 패키지를 9만엔(97만원)에 판매하고 있다. 이 상품은 세미온천료칸에 숙박 및 조석식, 리프트 3일권, 료칸~센다이 공항, 료칸~스키장 송영 서비스가 포함됐다. , 4인 이상 출발 가능하며, 항공권 및 중식은 불포함이다. 시즈쿠이시와 이와테 고겐 스노우 파크는 현재 스키 투어 패키지가 없다. 다만, 두 스키장이 차로 20분 거리라 향후 두 스키장을 연계한 스키 투어 패키지가 나온다면 반응이 좋을 것으로 보인다.

세미온천료칸은 게토 고겐 스키장 근처에 있는 고급 료칸이다. 게토 고겐 스키장의 숙박시설이 도미토리로 되어 있어 불편하기 때문에 세미온천료칸을 이용하는 스키어들이 많다. 세미온천료칸은 본관과 최근에 신축해 시설이 좋은 신관이 있다. 가급적 신관에 머무는 것이 훨씬 쾌적하고 좋다. 특히, 계곡이 바라보이는 독탕이 딸린 객실은 료칸의 정취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세미온천료칸 본관 입구. 
세미온천료칸에서 가장 좋은 객실. 실내에 독탕이 있다. 
세미온천료칸의 석식 가이세키 코스요리. 
세미온천료칸의 안주인.
신관 프리미엄 객실에 있는 독탕.
신관 프리미엄 객실의 독탕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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