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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 스마트 소설] B-52

박인 작가
  • 입력 2020.02.14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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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은 그녀를 ‘붉은 암캐’라고 불렀다.

▲취한 우리는 다시 일어나 지그재그 스텝으로 춤을 추었다. ⓒ박인
▲취한 우리는 다시 일어나 지그재그 스텝으로 춤을 추었다. ⓒ박인

-아버님, 색깔이 너무 멋져요.

사촌 동생 결혼식에 데려간 B는 내 아버지의 넥타이를 만지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정말이지 거저 줘도 안 맬 넥타이를 어디서 주워온 것일까. 나는 아버지 목에 걸린 촌티 나는 총천연색 새끼줄을 다시 바라보았다. 처녀가 남자의 상징처럼 목에 걸린 타이를 가지고 놀다니. 내게는 B의 행동이 남자의 상징을 조몰락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질투가 난 나는 B를 노려보았다. 그날 결혼식 파티에 온 그녀는 엉덩이를 전부 가리기에는 턱없이 짧은 원피스 차림이었다.

거기에 빨간색 하이힐이라니.

남자들을 한 방에 날려 보낼 핵폭탄이랄까. 빨강 하이힐을 신은 B는 그만큼 성적 매력을 풍겼다. 게다가 그녀는 온 힘을 다해 춤까지 추었다. 장학금을 노리고 공부하는 학생처럼 미친 듯이 춤을 췄다. 쭉쭉 뻗은 다리로 무대 중앙을 장악하고 홀을 누비는 B를 상상해 보라. 남자 하객들의 눈길이 무대를 휘젓고 다니는 그녀의 다리와 엉덩이에 고정되어 있었다. 여자들은 B에게 넋을 빼앗긴 남자들을 사나운 눈으로 쏘아보았다.

▲박인 단편소설집 『말이라 불린 남자』
▲박인 단편소설집 『말이라 불린 남자』

나는 파티장에서 B를 쫓기듯 빼냈다. 우리는 저택 후미진 방으로 가서 사랑을 확인했다. 그래도 사랑할 때 B는 온전히 내 것인 것처럼 굴었다. 헝클어진 몰골을 한 채 우리는 파티장으로 돌아왔다. 조금 전까지 우리가 무슨 짓을 했는지 사람들은 알아챘을까. 부러움과 의혹이 뒤섞인 눈길들이 우리를 덮쳤다. 나는 시침을 뚝 떼고 모른 척할 수밖에. 사람들의 관심을 무시한 채 우리는 술을 마셨다. 그러나 오늘 하이라이트 쇼는 이제 막 시작될 참이었다.

취한 우리는 다시 일어나 지그재그 스텝으로 춤을 추었다. 남이 뭐라 하든 상관없는 일이었다. 취기가 오르자 발이 꼬였고, 하객들과 뒤엉킨 우리는 무대 바닥에 나뒹굴었다. 내 양복은 찢어지고 B는 떨어져 흘러내린 원피스의 어깨끈을 겨우 붙잡고 뻗어버렸다. 우리를 둘러싼 하객들의 비웃음이라니! 그 순간 나는 B의 그물에 걸려든 한 마리 잡어에 지나지 않았다. B는 그날 모든 남자를 사로잡았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오늘의 스타에 등극하였다.

이후 그녀는 몇 번인가 나를 속이고 다른 남자들을 만났다. 물론 이 붉은색 폭격기가 다른 사내놈들도 초토화했을 것이다. 남자들은 그녀에게 ‘B52’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파티에 참석한 여자들은 그녀를 ‘붉은 암캐’라고 불렀다. 그렇다면 나를 비롯한 모든 남자는 그녀의 새끼들이 아닌가. <끝>

스마트 소설은 짧은 시간에 대중 영상 매체인 스마트폰으로 읽는 소설입니다. 눈으로 빠르게 읽고 머리와 가슴으로 깊은 감동을 주는 『박인 스마트 소설』을 연재합니다. 박인 작가는 단편소설집 『말이라 불린 남자』 스마트 소설집 『네 여자 세 남자』(공저)를 펴냈습니다. 또 다수의 개인전을 연 화가이기도 합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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