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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186] 이 한 권의 책: 다시 연습이다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0.02.13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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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연습이다』(글렌 커츠 지음·뮤진트리 펴냄)는 재능을 인정받았으나 음악의 길을 포기한 전직 음악가가 ‘연습’이라는 주제를 심오하고 감동적으로 묘사한 책의 제목이다. 연습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 질문은 당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어떤 마음가짐과 자세로 임하고 있냐는 질문으로 대체할 수 있을 테다. 그래서 이 책은 꼭 음악인만을 위한 책이 아니다. 예술가든, 군인이든, 평범한 직장인이든, 취업준비생이든, 졸업생이든, 이직생이든, 어린 시절 진지하게 품었던 꿈을 포기한 사람들 그리고 지금 늦었다고 자포자기한 사람들, 매너리즘에 빠지고 인생의 낙이 없다고 한탄하는 사람들, 이 모든 이를 위한 남녀노소, 장르와 경계, 영역을 뛰어넘어 인생이라는 마라톤을 함께 달리는 파트너 같은 책이다.

다시 연습이다, 글렌 커츠 지음/ 뮤진트리 

세간에 넘치는 자기 계발서 또는 처세술 책과는 차원이 다르다. 사실 그런 유의 책들은 진솔하지 못하다. 인생이란 게 책에서 배운 대로 적용되는 것도 아니요 훈수나 훈계 또는 감성적으로 다가와서 위로 몇 마디 던진다고 감명받을 나이도 이젠 아니다. 몰랐던 세계를 알려준다는 비법서에 현혹될 만큼 인생 헛살지도 않았다.(그만큼 인생의 수업료를 냈다는 뜻이다) 그래서 필자같이 까칠하고 세상을 달관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텐데 이 책은 다르다. 진실된다. 저자인 글렌 커츠 스스로의 경험에서 우러난, 좌절에서 벗어나 다시 재기하기까지의 행보가 실감 난다. 지은이가 도달하고픈 이상이 세계 제일의 연주자 따위의 명예와 부, 허파에 바람 넣기가 아니라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이라 담담한 회고록이자 휴먼스토리다.

저자의 회고록과 같은 이 책에서 필자에게 가장 공감이 갔던 부분은 음악과 예술에 대한 감동과 받아들임의 차이를 절절하게 토로하는 부분이다. 음악을 듣고 환희와 감동에 들떠 주변 사람에게 들려줬을 때의 그 떨떠름하고 미적지근한 반응들... 그저 좋다, 아름답다, 멋지다 같은 그런 당연한 감정과 표현 말고 그것들을 넘어서 음악 안에 내포된 분노, 희생, 비애, 숭고, 우아함, 폭발, 격동 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필자도 음악을 연주하고 들으면서 그런 감정과 표현들을 주변인들과 공유하고 싶다. 왜? 나의 사랑을 타인과 정서적으로 교류하지 못하는 삶은 너무나 고독하고 적막하기 때문이다. 그 첫 번째 대상자가 이 책의 필자와 같이 필연적으로 부모님이 될 수밖에 없으며 다음은 살아가면서 만나 친구, 부인 등이 될 텐데 어느 누구도 나의 그 열정과 감동만큼 따라오지 못하고 삶을 뒤흔들 정도로 감동을 받지 못해 아쉬움과 서로 간의 벽만 생긴다. 오랜 세월에 걸쳐 누적되고 축적된 불공감으로 서로 생채기만 내고 영원한 평행선을 걸을 수밖에 없다. 음악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은 그렇다 치더라도 어찌 음악을 한다는 사람들도 그리 메마르고 담담할 수 있나! 수천만 번 듣고 들어도 온몸을 흔드는 전율과 짜릿한 감정, 승천하는 듯한 성스러움, 그리고 경탄 등에 들뜨고 그 열정이 가시지 않는다. 들을수록 다르고 들을 때마다 새롭다. 나만 들뜬다. 안다고 한다. 안다고? 나폴리 6화음의 구성 원리를 안다는 걸까? 아님 이 부분에 이 화음이 쓰여 기가 막힌 효과를 내고 형언하기 어려운 신비를 뿜어내는 걸 안다는 걸까? 안다면 어찌 그리 태연할 수 있나? 초월한 걸까? 클래식은 지겹다고? 많이 연주해서 새롭지 않다고? 그럼 난 뭔가? 칠 때마다 들을 때마다 새롭고 처음 듣는 곡 같아서 환호성을 지르고 싶다. 음악인의 그 무덤덤함.... 경지에 올라 초연한 건지 예술가의 특권과 같은 감수성이 메마른 건지... 80이 넘은 대가들의 연주를 보면 그의 모습에 서려 있는 환희와 영감, 기쁨과 감사의 표정과 넘치는 아우라는 그럼 뭔가? 누구를 탓하고 의지하고 그들을 바꾸려고도 할 수 없다는 걸 깨달은 불혹이 넘은 나이..... 고독하지만 혼자 간다. 주변 사람 그만 괴롭히고 차라리 나 혼자 골방에 처박혀 다시 듣고 다시 연습하리.

저자 글렌 커츠
저자 글렌 커츠

누구나 한 번쯤은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바쳤지만 기대했던 결과를 얻지 못했거나 재능의 부족함을 탓하며 중간에 포기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예술이든, 운동이든, 공부든, 인생이든…. 원하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연습만이 해답이다. 열심히 달리기만 하면 되는가? 그저 난 열심히 뛰고 살아오기만 했는데 지금 내 인생은 왜 이렇게 꼬였나? 뭘 위해 사나? 내 인생은 왜 이럴까?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좌절에서 날 건져내고 낙담과 실망에서 다시 날 일으켜 세워주는 책이자 다시 서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말이다. “그래, 다시, 연습이다!”

필자의 책장 한켠에 놓여있는 빨간색의 책, 다시 연습이다.
필자의 책장 한켠에 놓여있는 빨간색의 책, 다시 연습이다.

이 책의 저자인 글렌 커츠는 미국 뉴욕주 롱아일랜드에서 태어난 전직 음악가다. 음악을 좋아하는 집안 분위기에서 독학으로 기타의 기본을 익혔고, 재능을 인정받아 여덟 살부터 교습을 받고 연습에 매진해 음악 명문 뉴잉글랜드 음악원에 입학했고, 각종 콩쿠르에서 여러 차례 우승도 했다. 음악의 도시 빈에서 연주가로 살아가려 했으나 자신의 재능과 실력의 한계를 절감하고 악기와 연주자의 삶을 포기해 버린다. 우리 주변에서도 이런 사람을 쉽게 볼 수 있다. 정말 자신이 하고 싶어서 현재의 일을 하면서 사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들의 이야기다. 『다시, 연습이다』는 정말 소재만 바꾸면 문장 하나하나 전부 내 얘기 같고 계속 눈물이 치미는 걸 참으며 읽어나가게 한다. 무엇을 향하든, 무엇을 하든 연습은 늘 상실과 고통을 동반한다. 아무리 피해 가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자신만의 한계를 떠나보내고 새로운 나를 발견하게 만드는 책. 결국, 삶이란 어떤 순간들을 위한 길고 끝나지 않는 연습의 연속이다. 이 책은 연습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재발견해야 하는, 우리 모두를 위한 책이다. 그래서 이 책은 졸업을 하고 새로운 곳에서 시작하는 모든 학생들에게, 어려운 시기를 이 악물고 이겨내고 드디어 당당히 취업에 성공한 이에게, 출산과 육아로 경력단절에 빠졌다가 다시 일을 해보려는 우리네 엄마들에게, 단단한 알을 깨고 나가는 사회 초년생들에게 다들 한 권씩 선물로 안겨주고 싶은 책이다. 이 책이야말로 인생 지침서요 힘들 때마다 품에서 꺼내 읽고 또 읽으면서 희망과 용기를 얻는 비법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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