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평론가 기영노 콩트 88] 양준혁의 히트와 에러의 갈림길
[스포츠 평론가 기영노 콩트 88] 양준혁의 히트와 에러의 갈림길
  • 기영노 전문 기자
    기영노 전문 기자 kisports@naver.com
  • 승인 2020.02.11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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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기록원은 선수출신의 ‘선출’과 일반인 출신의 ‘비선출’로 나누는데, KBO 공식기록원은 선출이 30% 밖에 안 되고, 대개 비선출이다.

우리나라에서 프로야구 공식기록원이 되는 길은 딱 하나 밖에 없다. 해마다 2월에 한국야구위원회, 그러니까 KBO에서 개최하는 전문기록원 과정을 수료해서 그때 보는 실기시험을 잘 치러야 한다. 일단 점수가 좋아야 지원할 자격이 생긴다.

그런데 전문기록원 과정을 들을 자격을 얻는 것도 쉽지 않다. 수강 인원수가 60명 정도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자리가 별로 없다는 점이다. 일단 공식기록원이 되면 은퇴를 할 때 까지 근무를 하는 경우가 많다.

거의 모든 공식기록원이 프로야구가 좋아서 택한 직업이고, 또 프로야구를 원 없이 보면서 일정한 월급(출장수당 포함)을 받고 있기 때문에 만족도가 매우 높다. 그래서 사표를 내는 경우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거의 없다.

KBO 전문기록원 양성 과정 모습(사진= 한국야구위원회 홈페이지 갈무리).
KBO 전문기록원 양성 과정 모습(사진= 한국야구위원회 홈페이지 갈무리).

프로야구 10개 구단마다 자체적으로 기록원을 두고 있는데, 그 자리는 대개 인맥으로 채용되기 때문에 일반인이 들어가기는 KBO 공식 기록원보다 더욱 어렵다.

공식기록원들은 야구장에서 플레이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 즉 (포수 뒤쪽)에 기록원 실이 마련되어 있어서 만약 야구경기를 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즐기면서 일을 하는 ‘최고의 직업’이라고 할 수 있다.

공식기록원은 프로야구가 시작되기 2시간 전에는 야구장에 도착해야 한다. 그리고 검은색 빨간색 볼 팬과 혹시 잘못 적었을 때를 대비해서 수정액도 비치해 놓는다.

주심이 ‘플레이볼’을 선언하면, 그 이후부터는 그라운드에서 단 한순간도 눈을 떼서는 안 된다(화장실도 가기 어렵다).

잘 아시다시피 스트라이크와 볼, 아웃과 세이프는 주심과 루심이 판정을 한다. 공식기록원이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판정’은 인플레이 타구가 나왔을 때다.(파울 볼과 인플레 볼 판정도 심판들의 몫이다)

공식기록원의 주 임무는 인플레이 상태에서 타자(또는 주자)가 진루에 성공을 해서 주자가 되었을 때 그것이 안타 혹은 도루에 의한 진루인지, 아니면 실책에 의한 진루인지를 판단하는 일이다.

한화 이글스 외국 타자 제라드 호잉이 매 타석마다 안타건 범타건 전력질주를 하는 걸로 잘 알려졌다(사진= 연합뉴스).
한화 이글스 외국 타자 제라드 호잉이 매 타석마다 안타건 범타건 전력질주를 하는 걸로 잘 알려졌다(사진= 연합뉴스).

보통의 수비로 처리할 수 있었던 것을 포구하지 못했다면 수비수에게 실책이 주어지고, 그렇지 않은 타구라면 타자에게 안타가 주어진다.

여기서 타자의 안타냐! 아니면 수비수의 에러냐! 여부는 선수들에게는 ‘하늘과 땅’ ‘천국과 지옥’ 사이만큼 엄청난 차이가 난다.

안타로 처리하면 타자의 타율이 좋아지지만, 투수의 방어율(자책점), 수비수의 수비율이 나빠진다. 그러나 에러(실책)로 처리하면 타자의 타율이 떨어진다.

선수들의 연봉에 직접 영향을 끼치는 셈이다.

그래서 그런지 약삭빠른 몇 몇 선수들은 경기가 시작되기 전에 기록원실로 와서 씩~ 웃으며 깍듯이 인사를 하거나, 때로는 음료수를 놓고 가기는 선수들도 있다.

이미 은퇴를 한 양준혁 선수는 한 때 프로야구 역사상 최다안타(2318개, 2020년 3월 현재 LG 트윈스 박용택의 2,439개)를 기록했을 정도로 뛰어난 선수였다.

양준혁 선수는 매 타석마다 안타건 아니건 1루로 전력 질주하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지금은 한화 이글스 외국 타자 제라드 호잉이 매 타석마다 (안타건 범타건) 전력질주를 한다.

양준혁은 프로야구 역사상 최초로 기록원실에 난입한 것으로도 잘 알려졌다.

양준혁의 현역 시절 모습(사진= 연합뉴스).
양준혁의 현역 시절 모습(사진= 연합뉴스).

1995년 5월, 자신이 친 타구가 안타가 아닌 에러로 기록되자 기록원실에 뛰어 들어 수정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기록원실을 나가면서 기록원실의 출입문을 발로 강하게 걷어찼다. 그 사건으로 양준혁은 50만 원의 벌금을 부과 받았다.

모 스포츠지 기자가 ‘프로야구 역대 사건사고’를 취재하다가 기록원실 난입사건의 주인공 양준혁 씨를 만났다.

기자 ; 당시 사건(기록원실 난입)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 가?

양준혁 ; 결과적으로 는 후회한다. 기록이 (에러가 안타로) 바뀌지 않았으니까.

기자 ; 당시 야구방망이로 기록실을 부셨다느니, 기록실 문을 열어주지 않아서 발로 차서 문을 부셨다느니 말이 많았었다.

양준혁 ; 야구방망이는 들고 가지도 않았었고, 기록실 문도 부수지 않았다. 그냥 문을 열고 들어가서 수정을 요구 했고,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나올 때 문을 ‘살짝’ 걷어찼을 뿐이다.

기자 ; 양 선수는 키가 1m88cm나 되고 몸무게도 100kg이 넘는다, 그런 거구가 ‘살짝’ 걷어 차 더 라도 보통사람은 엄청난 공포를 느낀다.

양준혁 ; 그래서 뉘우치는 뜻으로 결혼을 하지 않고 있다.

기자 ; 비혼의 핑계 치고는 너무 궁색하다.

P.S 프로야구 공식기록원

프로야구 공식 기록원은 우리나라에서 단 15명만 있는 아주 특이한 직업이다. 모두 한국야구위원회(KBO)소속으로 일정한 연봉과 출장비와 수당을 받는다.

공식기록원 15명은 1군 경기에는 2명씩, 2군 경기에는 1명만 배정된다. 특히 1군 경기에 배정된 기록원은 거의 모두 야근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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