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용원 음악통신 183] Critique: 소프라노 박선영 리사이틀
[성용원 음악통신 183] Critique: 소프라노 박선영 리사이틀
  • 성용원 작곡가
    성용원 작곡가 klingsol@hanmail.net
  • 승인 2020.02.09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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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과 같은 선한 눈망울, 맑은 심성을 감지할 수 있는 이미지, 그녀에겐 필요한 건 진정한 조력자

예술의 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과 같은 홀에서의 독창회 프로그램은 일종의 종합선물세트다. 음악을 들으러 오는 수용자의 욕구와 상태, 수준 등을 철저히 고려하지 않고 다국어로 되어있는 프로그램을 짜는 게 관례 아닌 관례다. 그 연유는 학업이라는 뿌리에서 기반한다. 우리나라에서 성악이라는 게 외국 노래에 기반을 두고 시작하였기 때문에 으레 노래를 배운다고 하면 이태리 가곡으로 시작해서 대학에 입학, 거기서 독일어, 영어, 프랑스어 등 골고루 유럽의 언어와 문화권에 기인한 노래들을 배운다. 노래의 종류와 장르도 많은데 서구 유럽의 음악만이 正으로 받아들여져 대학에서 학문같이 다루어졌다. 노래를 더욱 심도 있게 배우려고 유학을 간다. 외국에서 우리말로 되어 있는 노래를 가르칠 리 만무할 테니 오페라를 비롯한 남의 나라 노래들을 열심히 익히고 들어왔다는 일종의 증명이 귀국 독창회다. 더 나아가 독창회란 대중음악 가수들과는 다르게 '나 이만큼 할 줄 알고 이런 노래들을 섭렵했다'라고 보여줘야 하는 일종의 신고식이자 학술발표회 자리다. 학계에서 인정받고 검증받았야지 실적으로 인정받아 취업이 되고 가르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으며 성악가로 활동할 수 있는 '자격증'을 받기 때문에 철저히 학교란 거점과 직장, 생계를 중심으로 클래식 음악인들은 움직이고 끼리끼리 그들만의 잔치를 할 수밖에 없다. 그러려면 밖으로 나오지 않고 학교 안에서 자기들끼리 세미나같이 하면 좋으련만 그들만의 기준으로 정해 놓은 몇 석 규모 이상의 홀에서만의 연주회만이 연구 실적으로 인정된다는 해괴망측한 법칙이 있다. 이것도 자업자득이다. 남들보다 튀려는 몇몇이 실적을 증명하고 과시하기 위해 별이 별 이상한(?) 그리고 소규모, 지인들끼리의 노래방도 다 이력에 집어넣었기 때문에 변별력을 두기 위해선 일종의 매뉴얼이 필요하다.

맑고 고운 심성과 이미지의 소유자 소프라노 박선영

2월 8일 토요일,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에서 독창회를 개최한 소프라노 박선영은 딱 봐도 사슴 같은 선한 눈망울과 거울같이 맑은 심성이 얼굴에 드러나는 소유자임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부드럽다. 예원학교- 서울예고- 이화여대-독일 뉘른베르크 음악대학, 누가 봐도 한국식 엘리트 코스를 착실히 밟았다. 기존의 틀을 거역하고 뿌리치며 파괴하면서 나아가는 역동적이고 진취적인 가수라기보다는 곱고 모범적인 가수다. 요즘 겁잡을 수없이 범람하는 트로트란 장르로 벌이는 오디션, 서바이벌 텔레비전 방송 프로그램에 성악 전공자들도 이제는 금도를 깨고 너도나도 출전하는 가히 질풍노도와 같은 적자생존의 시기에 소프라노 박선영 같은 선녀가 거친 파도를 헤치며 자신만의 입지를 굳히기는 어간 어려운 게 아닐 것이다. 선생님들 말씀 잘 듣고 잘 배우고 순종하면서 학교라는 울타리에 안착해 후학을 양성하고 명예를 누리며 때 되면 오페라에 출연, 무대에 올라 자신의 가치를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는 그런 과거는 대한민국에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기존의 제도권에 오래 있으면 오래 있을수록 거기거 벗어나기 힘든 거 자명한 이치, 갈림길에 과거의 제도와의 불일치의 충동이 일어난다. 예전의 방식으로 배우고 사유습성이 몸에 익어버려 변하는 세태에 소요되는 에너지를 충당하기 어렵다.

앙코르로 연리지 사랑(서영순 작시/이안삼 작곡)을 부르고 있다.

PPT에 오타가 너무 많았다. 곡 해설도 짐작컨테 소프라노 박선영이 스스로 공부하면서 적은 거 같다. 언제 박수를 쳐야 되는지 알지 못하는 손님들 모셔 놓고 부르는 노래치고는 지나치게 생소했다. 그래서 아무 때나 튀어나오는 박수가 이번 연주회를 녹음해 고이 간직하려는 소프라노의 바램을 헤치기만 한다. 손뼉 치는 사람이야 아무것도 모르니 그저 노래만 끝나면 열심히 박수쳐주는게 예의와 응원인지 알았을 터. 이만큼 상호 간의 괴리감과 언어의 장벽이 크다. 그나마 프로그램이 짧고 개별적인 곡들의 성격이 명확해서 그렇지 안 그랬으면 엄청 처지면서 마치 졸업연주 심사같이 되었을 테다. 공식적인 리사이틀이 끝나고 소프라노 박선영이 직접 마이크를 잡고 무대인사를 하면서 관객들에게 지루하지 않았느냐고 물어본 건 난센스다. 본인이 본인의 무대에서 관객들에게 지루하지 않았냐고 물어보는 건 기이하다. 그렇게 프로그램을 짠 사람이 누군데, 위대한 명곡들의 진가를 알리고 자신을 드러낼 생각을 해야지 재미없는 독창회를 자인하는 격이요 그래도 이런 어수선한 시국에 와준 건만 해도 고맙다는 뜻인가? 지나친 겸양이다. 음악회의 주인공은 소프라노 본인이다. 우리는 그녀가 부른 노래를 들으러 간 거다. 클래식 음악은 일등만 살아남는 더러운 세상이기 때문에 수천 시간의 연습을 들여 완벽하게 작품을 체화해 낸다고 해도 그날의 여건과 컨디션에 따라 음악적 감동의 승패가 달라지는 섬세하고 영적인 예술이다. 트로트 부르고 놀고 웃는 그런 동네잔치가 아니라는 거다. 클래식 음악의 위대함과 숭고함이 각인되고 감동이 오래가고 우리의 가치를 우리가 지킬 수 있다. 오늘 박선영을 통해 라흐마니노프의 시니컬한 가곡들, 그리고 쇼송의 프랑스 에스프리를 만끽하지 않았나! 이런 체험과 연구는 관객들에게 새로운 지경을 선사할 것이다. 언제까지 아는 노래만 부를 순 없으니...

반주자 한미연과 함께

이제 아무리 파도 물 한 방울 나오지 않는 우물 그만 파고 지금이라도 소프라노 박선영이 가지고 있는 퍼텐셜과 선한 심성 그리고 진지한 학구열을 뒷받침하고 지원하면서 같이 갈 수 있는 진정성 있는 음악의 조력자와 인도자를 만나야 한다. 그렇다면 소프라노 박선영은 비상하리! 언제까지 달빛을 받으며 악보가 까매질 정도로 적으면서 공부하고 공부한 노래들과 외롭게 나아가겠는가... 고요한 연꽃에서 벗어나 친애하는 벗들이 넘치는 음악의 유토피아에서 한 마리의 벌새가 되어 종횡무진하면서 사랑의 마술에 취한 소프라노 박선영이 영원한 노래를 부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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