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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182] Critique: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실내악시리즈 '베토벤 I'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0.02.08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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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음악을 듣고 연주하며 베토벤이 태어난 지 250년이 지났음에도 지금도 베토벤을 연주하고 들어야 하는가?

평상시 접하기 힘든 베토벤의 실내악곡을 실연으로 감상할 수 있다는 자체가 즐거움이었다.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맞아 여기저기 마케팅 용도로 가져다가 붙이는 무늬뿐인 기념과 조명 음악회가 아닌 코리안심포니의 참신한 프로그래밍이 와닿았다. 고향 본 시절에 선제후의 유흥을 위해 작곡된 청년 베토벤의 목관 8중주에, 당시 음악의 중심지 빈에 정착해 베토벤 만의 음악 세계의 구축을 알리는 패기 넘치는 현악5중주 '폭풍'으로 코리안심포니의 실내악 시리즈 베토벤 I을 통해 의욕 넘치고 당당했던 베토벤의 청년 시기를 살짝 엿볼 수 있었다.

1부의 베토벤 목관8중주
1부의 베토벤 목관8중주

1부의 목관 8중주는 싱그럽고 청량했다. 건조한 겨울 날씨 속에 더 건조한 홀에서 악기의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취구하는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터, 악조건 하에서도 최대한의 소리를 끄집어내며 밸런스와 균형 잡힌 연주를 펼쳤다. 2부의 현악5중주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오차가 없는 연주였다. 베토벤의 정격 연주를 듣는 듯 템포나 현의 슬라이드, 힘의 안배 등이 베토벤 모범답안 같았다.

그런데 여기서 질문이 생긴다. 우리는 왜 음악을 듣고 연주하며 베토벤이 태어난 지 250년이 지났음에도 지금도 베토벤을 연주하고 듣고 있는가?

정보의 홍수 시대에 오늘 연주되는 곡들에 대한 프로그램과 해설, 프리뷰 등은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고 사전에 찾아도 넘치고 넘친다. 또한 오늘의 음악회는 해설까지 첨부된 더 이상 친절할 수 없을 정도로 21세기에 18세기의 클래식 음악을 전하고 알게하려는 노력과 시대과제에 투철하다. 그런데 이 시대의 사람들이 거기에 따라가지 못한다. '폭풍'이기 때문에 당연히 단조의 음악일 거라 여기고 자신이 생각하는 드라마틱 하고 질풍노도와 같은 '폭풍'이 아니라고 베토벤을 현대의 관점으로 재단하고 평가한다. 18세기의 왕궁으로 돌아가서 베토벤의 음악을 감상하는 게 아닌 지금 시점의 눈과 귀로 음악에 접근해 지루하고 기대에 못 미친 말 그대로 '고전' 구닥다리 폭풍이자 베토벤으로 치부해 버린다. 같은 곡을 닿고 닿을 만큼 연주해서 지겹고 신선하지 않다고 한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재난 영화의 폭풍에 비해 너무 시시하고 틀에 박혔고 익숙해서 신선하지 않아 감흥이 없다고 한다. 클래식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그럴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음악을 전공한 사람들이 더욱더 이런 오류에 빠지고 베토벤을 옛날 음악 취급하고 음악을 음악 그대로 마음으로 즐기지 않고 머리로 공부하며 아카데미로만 취급한다면 우리는 베토벤, 더 나아가 클래식 음악이 주는 시대를 초월한 감동과 삶의 풍성함을 누리지 못한다. 가십 위주의 해설이 베토벤 이해에 도움이 될 거라 여기진 않는다. 우리는 본질에 접근하고 다가가야 한다. 그래야지 베토벤이 결코 과거의 예술이 아니며 과거와 현대를 잇는 유효성이 발휘된다고 믿는다.

2부의 베토벤 현악5중주
2부의 베토벤 현악5중주

앙상블(Ensemble)의 의미는 조화와 일체다. 여러 사람이 모여 하나의 소리로 일체가 되고 서로의 호흡을 맞춘다는 건 장기간의 단체 연습과 시간을 요구한다. 그런 의미에서 같은 악단의 단원들로 멤버를 조성하면 그만큼 장점이 크다. 이탈리아의 이 무지치나 캐나디안 브라스 등등의 독자적인 실내악 단체나 앙상블이 전무한 대한민국 음악계 현실에서 오케스트라가 관현악 연주 외에 실내악까지 해준다면 청중 입장에선 감사한 일이다. 물론 같은 직장의 단원들이라 해서 호흡이 더 잘 맞고 다른 멤버들에 비해 연습을 더 많이 한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여건은 조성되어 있다.실내악에서의 완성체는 연주로 종결되는 것이 아닌 연주자의 입/퇴장, 무대매너, 통일된 복장, 연주자 상호 간의 호흡과 소통까지 모두 포함된다. 무대 위에선 위계에서 오는 제약이 아닌 동등한 앙상블의 멤버로서 지분을 갖고 행동해야 한다. 서로 간의 합이 연주 내외로 절묘하게 맞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 자체가 음악의 연장선이고 지속이기 때문이다. 무대 위에서의 모든 언행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연주자의 몫이다.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의 2020년 여정, 시즌 프로그램

음악가가 존재하는 건 자신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음악을 위해서다. 보존과 계승은 연주자의 막중한 숙명이며 책임이다. 베토벤의 초기 실내악 작품들을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의 실내악시리즈를 통해 들을 수 있었던 건 값지고 의미 있는 수확이었다. 부디 그런 소중한 자리와 계승이 음악인들에게 그저 하나의 일(Work)이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취급되지 않고 자긍심의 발로로 이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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