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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180] 바라만 봐도 좋아~ 아이콘택트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0.02.06 09:07
  • 수정 2020.02.06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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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고슬라비아 출신 행위 예술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c)의 2010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회고전 중의 <예술가가 여기 있다>(Artist is Present)은 아보라모비치가 3개월 동안 하루 종일 미술관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관람객과 마주 보며 서로를 가만히 응시하는 퍼포먼스였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오른쪽 의자에 앉은 여인), '예술가가 여기 있다'(2010)

3개월의 전시 기간 동안, 미술관 개관부터 폐관까지 매일 8시간, 총 736시간 30분 동안 딱딱한 의자에 앉아 말도 하지 않고 화장실에 가지도 않으면서 수시로 바뀌는 맞은편의 관람객과 마주 보기만 하면서 서로를 응시(아이콘택트) 하기만 했다. 이 퍼포먼스를 보기 위해 3개월 동안 미술관을 찾은 사람 수가 몇 명인지 아는가? 총 850만 명이었고 이중 최소 75명이 12번 이상 찾아왔다고 한다. 이 같은 숫자와 결과는 무엇을 의미할까? 아는 사람도 아니요,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빤히 쳐다보려면 아브라모비치 같은 유명 작가가 아니고 굳이 미술관까지 가지 않더라도 주변의 가족이나 소중한 사람 등, 바라만 보고 있어도 좋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서로 빤히 쳐다보면서 묵언수행을 하면 되지 않은가? 왜 가까운 주변을 팽개치고 굳이 아브라모비치를 쳐다봐야 하는가? 그녀가 그렇게 넋을 잃고 쳐다볼 만큼 천사같이 아름다워서? 아님 바라만봐도 병이 낫고 치유되는 무당 같은 신녀라서? 역설적으로 그건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말없이 아이콘택트 만으로 교감을 나누고 위로와 위안을 받을 주변의 사람이 없다는 방증 아닐까? 그래서 누군가가 특별히 나를 위해 시간을 내주고, 나를 바라봐 준다는 자체만으로 위안을 받는 게 아닐까?

사람을 살리는 소프라노 김정아의 노래

신종 코로나가 유행인 요즘, 밀폐된 공간에서 일정한 시간을 함께 있어야 하는 음악회 자체가 부담이다. 더군다나 입을 벌려 소리를 내면서 침을 튀겨야 하는 성악 공연이요, 무대와 객석이 분리되지 않는 살롱이나 소규모 카페에서는 부르는 사람이나 그걸 또 뻔히 쳐다보며 들어야 하는 사람이나 서로 곤욕일 터. 얼마전 독창회는 소프라노의 이런 시국에 공연을 취소해야 되는 거 아니냐는 의견을 묵살하고 진행했다. 의외로 많이 모인 사람들.... 소프라노가 음악을 들으러 온 한사람 한사람 곁으로 다가가 손을 붙잡고 눈을 바라보면서 노래를 불러줬다. 알아듣지 못하는 슈베르트의 독일 가곡, 그러나 슈베르트 음악이 가지고 있는 힐링과 순수성이 발동했다. 갑자기 노래를 불러주는 사람과 듣는 사람 둘만 있는 듯한 착각, 땀이 차는 손, 고이는 눈물, 손끝과 눈짓을 통해 전해진 음악의 감동.... 그렇다... 어려울 때일수록 사람들은 영육간에 치료받길 원한다. 그게 바로 예술이 필요한 이유다.

예술이 세상을 구할 순 없다. 하지만 예술은 세상을 치료하며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 그리고 감동을 선사한다. 그래서 사제와 동일하다. 신의 목소리, 사랑의 소리를 전달한다. 먹구름 사이를 뚫고 나오는 한 줄기 빛이요 큰 비가 지나간 뒤 맑은 하늘에 걸린 무지개이기 때문에 아무에게나 허락된 게 아닌 신의 목소리를 듣고자 간절히 기다린 사람, 즉 적은 수의 사람만이 들을 수 있고 구원 받는다. 그래서 예술가는 절망 가운데서 신음하는 신의 울부짖음에 민감하고 고통 가운데서 괴로워하는 신의 모습에서 사람들에게 무조건적인 사랑과 긍정의 에너지를 전파해야 한다. 노래를 불렀지만 우리말이 아니라 의사소통과는 상관없는 추상적인 비언어적 상호작용이다. 아브라모비치를 그저 바라만 보고 있던 관객도, 소프라노와 손을 맞잡고 눈을 응시하면 노래를 부르고 들었던 그 관객도 비물질적 에너지를 공유하며 소통했다.

오죽하면 이런 콘셉트가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의 소재로 쓰였겠는가. 매주 월요일 밤에 방송되고 있는 채널A의 <아이콘택트>라는 프로그램은 사연을 보낸 신청자와 사연의 주인공이 서로 아이콘택트를 한 뒤, 각자의 속마음을 털어놓는 침묵예능을 표방하고 있다. 사람마다 다 고민이 있다. 고민의 강도와 고통은 사람마다 다 다를 터, 등가를 메길 수 있는 무형의 질량이다. 주변에 왜 이리 외롭고 상처받은 사람들이 많은지..... 결국 이 문제의 해결법은 예술이라고 다시 귀결된다. 예술과 한번 아이콘택트를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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