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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174] 이 한 권의 책: 기돈 크레머의 '젊은 예술가에게'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0.01.31 10:14
  • 수정 2020.01.31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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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음악을 하는 진정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빈번한 무대 출연, 우레와 같은 박수, 평단과 학계에서의 인정, 대중들로부터의 갈채와 환호, SNS에서의 관심집중과 폭발하는 조회수와 좋아요 그리고 얻게 되는 부와 명예를 갈구해서? 청중이 넘쳐는 페스티벌과 유명한 무대에서 명망 있는 음악가들과 함께 연주하고 스타로서 명성을 누리는 삶, 아니 그런 거창한 꿈이 아니더라도 아주 소박하게, 생계에 위협받지 않고 꾸준히 연주하면서 음악가로서의 삶이라도 영위할 수 있다면 다행인 대한민국의 현실에 기돈 크레머는 경종을 울린다. 그래서 기돈 크레머의 <젊은 예술가에게>(Phono)는 젊은 예술가가 아니라도 모든 장르, 영역 불문 예술인이라면 꼭 읽어야 하는 책이다.

기돈 크레머 / 젊은 예술가에게 / PHONO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Gidon Kremer 1947- )는 음악의 순수성과 본질에 대한 접근과 자세에 대해 이야기한다. 읽다 보면 우리가 얼마나 현실에 부딪혀 잊고 살았던 원초적인, 정말 음악이 좋아서 시작했던 유아와 같았던 그 시기로 돌아가게 된다. 총 4부로 편집된 <젊은 예술가에게>는 2013년 독일어로 쓴 《젊은 피아니스트에게 보내는 편지》와 2015년 발표한 영어 에세이〈루트비히를 찾아서〉의 부분들을 한 데 담은 책이다.1부와 3부는 한마디로 요약하면 '잔소리의 연속'이다. 연주자로서의 기본을 강조하고 음악 말고 다른 걸 추종하는 걸 경계하고 그 모든 건 허깨비라고 단정 짓는다. 성서의 10계명을 빗댄 3부의 연주자의 십계명에선 연주자라는 '신' 즉 에고(Ego)에 대해 경고한다. 연주자가 존재하는 건 자신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음악을 위해서다. 보존과 계승은 연주자의 막중한 숙명이며 책임이다. 연주자라면 다른 어떤 것보다 음악 자체에 집중하고 헌신하는 게 역할이고 사명이라고 강조하고 자신의 에고를 작품보다 윗길에 놓은 건 최악이라고 일갈한다. 상업주의에 경도되어 음악 자체의 본질에서 멀어져 상금, 콩쿠르 수상 등은 공허하고 자신과 주변의 영혼을 오염시킬 뿐이라고 한다.

너무나 옳은 말이요 조언이지만 한국 현실과는 너무나 다른 이상적인 말씀에 불쑥 반발심이 생긴다. 당신은 이미 대가의 반열에 올랐고 당신이 경계하는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지금의 위치에 도달한 거 아니냐, 당신은 다 해봤고 누렸으면서 왜 지금의 우리에게는 그러지 말라고 하는가, 음악대학을 나오고 유학까지 가서 박사를 받고 와도 한국에 와서 파트타임 일거리도 없어 유치원생 가르치고 떠돌이 악사를 전전하는 이 현실에서, 클래식 음악을 듣는 이 없는 한국에서 살아가려면 어찌해야 하는지 알고나 있는가? 그런데 무슨 서당 훈장님, '게토'에 갇힌 케케 먹은 구닥다리 영감님 소리만 하는가? 전형적인 꼰대다!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 이 책을 읽다보니 그가 더욱 더 좋아지고 흠모하게 되었다.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 이 책을 읽다보니 그가 더욱 더 좋아지고 흠모하게 되었다.

맞다! 기돈 크레머 본인도 그걸 알기 때문에 시종일관 다른 연주자, 젊은 세대와 소통을 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그런데 기돈 크레머의 금과옥조와 같은 계명은 영원불멸, 이 시대에만 적용되는 게 아닌, 불변의 법칙이자 음악가들에게는 길이길이 새기면 명심해야 하는 좌우명 아닌가! 먹고사는데 함돌되어, 성공에 도취되어, 남보다 우위에서고 싶은 마음에, 대중들의 박수갈채와 칭찬에 목말라, 우리는 인정을 받고 자기만족에 빠지고 싶고 그걸 또 성공이라 여기는 세간의 인식에 합류하여 얼마나 본질에서 멀어지고 있는가! 교수되고 악단에 취직하려고 음악 하는가? 당신이 음악을 하는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자문해보라! 밥벌이에 불과한 직업인지 아님 진정으로 음악을 사랑하고 열정을 다해 이 세상과 부딪혀 가며 자신의 이상을 이루기 위해 살아가려고 노력하는지... 요즘 세태에, 대한민국에 기돈 크레머 같은 꼰대가 없는 게 도리어 더 큰 문제다. 이목에 비위 맞춰가며 기회주의자처럼 처신하며 욕먹고 공격받을까 봐 자신의 위명에 조금이라도 오점을 남길까 봐 전전긍긍하고 나서지 않으며 옳은 걸 옳다고 당당하게 주장하고 훈육하고 가르칠 수 있는 만인의 존경을 받는 클래식 음악계의 원로가 누가 계신가? 학교, 레슨 선생 말고 음악계 전체를 포괄하면서 옳은 방향을 제시하고 기돈 크레머같이 아픈 데를 후벼 파면서 애정을 담아 쓴소리를 하는 음악계 어른이 누가 계신가? 꼰대? 그렇다면 나라도 기꺼이 꼰대가 되리!

기돈 크레머의 금과옥조와 같은 가르침은 이 시대에 더욱 적용되는 연주자라면 꼭 읽고 깨닫고 가슴에 깊이 새겨야할 지침서이다.

기돈 크레머가 생각하는 훌륭한 예술가의 조건은 자기 자신의 정체를 확보하는 거다. 진정한 예술가라면 자기 안에서의 독창성을 끄집어 내고 자신만의 레퍼토리를 가져야 한다는 주장, 어디서 많이 들어본 소리 아닌가? 필자도 끊임없이 브랜드와 정체성에 대해 떠들고 다니니 일면식도 없는 기돈 크레머와 일심동체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건 지금 현시점에만 적용되는 설교가 아니다. 몰라서 안 하는 건 괜찮다. 하지만 알면서 행하지 않는 건 죄악이다. 대한민구의 음악인들이여, 현 자신의 처지를 원망하지 마라! 자신이 자신의 삶을 그렇게 만든 거뿐이니....

4부의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한 최고의 음반을 찾아가는 과정은 위에서 언급한 기돈 크레머의 예술 철학이 모두 녹아 있는 글로서 파트너십, 템포, 슬라이드, 페르마타, 카덴차, 내용, 개성 등을 심사 기준 삼아 까다롭고 엄격하게 청취해나가니 베토벤 바이올린협주곡 더 나아가 베토벤을 연주하고 바이올리니스트라면 교과서나 마찬가지니 필독을 권유한다. 안 그래도 작년의 크리스티안 테츨라프와 올해의 카바코스의 서울시향과의 베토벤 바이올린협주곡 연주가 떠오른다. 그들은 이 책을 읽었을까? 그들의 연주를 들었다면 기돈 크레머는 뭐라고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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