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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172] 콘서트 프리뷰: 소프라노 박선영 독창회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0.01.29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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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트 슈만이 아니다. 그의 부인이자 피아니스트였던 낭만파 시대의 여류 거장 클라라 슈만이다. 키릴문자로 적어놨으니 알파벳밖에 모르는 사람은 읽지 말라는 법인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다. 이 이름은 또 어떻게 발음해야 하는가? 프랑스어다. 프랑스 작곡가 쇼송이다. 그다음에 보이토? 누구지? 바로 베르디의 유명한 오페라 '오텔로' 대본을 쓴 극작가 겸 작곡가다. 마지막 베르디만은 좀 아는 사람이지만 역시나 동 작곡가의 다른 오페라와 유명 아리아에 비해 생소하다. 그런데 이런 곡들로 프로그램을 구성한 독창회... 그것도 소프라노 독창회를 연다고?

포스터와 전단만 보고는 상당히 불친절하다. 학구적인 프로그램인 건 인정하지만 지극히 내부 동종업계 사람들끼리의 발표회, 심포지엄적인 성격이다. 안그래도 가곡, 소프라노 독창회에 음악적 식견과 지식, 경험을 갖춘 일반인 관람객들의 방문은 드물다. 그럼 대중성을 삼가고 지극히 아카데믹한 범주로서만 머물고 만족하겠다는 의도인가? 일단 필자의 호기를 자극한다. 그래서 백문이 불여일청(聽)이라고 꼭 가서 들어보고 싶다. 바로 2020년 2월 8일 토요일 오후 2시, 예술의 전당 리사이틀홀에서 열리는 소프라노 박선영 독창회다.

소프라노 박선영은 예원학교, 서울예고를 거쳐 이화여자대학교 성악과를 졸업하고 독일로 건너가 뉘른베르크 국립음대와 이탈리아 가스파레스폰티니 공립음악원에서 박사과정을 이수하였다. 지적인 음악성과 학구적인 레퍼토리를 겸비한 그녀는 현재 계원예고에 출강하며 후학을 양성하고 있으며 '관객과의 활발한 만남을 계속하며 특별한 클래식 소통을 위해 힘쓰고 있다'고 배포한 리플렛엔 적혀있다. 그녀의 이력 마지막 문장을 읽고 적다 보니 더욱더 아리송하다. 관객과의 활발한 만남을 계속하겠다는 음악인과 오늘의 생소한 프로그램, 난해한 연주 안내가 왠지 언밸런스하다. 특별하긴 하다. 독일어, 러시아어, 프랑스어, 이태리어 통합 4개국의 언어로 되어 있는 노래다. 필자부터 곡들이 친숙하지 않은데 가곡 음악회에 오는 애호가들에겐 어떨는지? 그래서 특별한 클래식 소통인가? 자세한 곡 설명이 첨부되어 있는 것도 아니요 음악회 당일 해설자가 있는 것도 아닌 일반적인 소프라노 독창회다.

소프라노 박선영 독창회 프로그램과 출연진 프로필

파리 토박이인 쇼송(Ernest Chausson 1855-1899)은 지극히 프랑스적인 작곡가다. 독창적이면서 감각적이면서 우수에 찬 악풍이다. 쇼송의 음악을 들으면 동시대에 활동했던 화가 모네(Monet)의 그림이 연상된다. 직접 선구(先驅)하는 외광파(外光派)의 인상주의가 할까? 자연에 대한 경모도 동일하다. 2부의 첫 곡은 벌새라는 제목이다. 벌새? Hummingbird, 즉 벌처럼 꿀을 빨아먹는 새다. 1초에 수십 번의 날갯짓을 한다. 살기 위해 부단히 날개를 그어야 한다. 초록색 벌새는 언덕의 왕이다. 하나 잘생기고 멋진 붉은 아소카 나무 (Ashoka rouge)에 반해 붉은 아소카의 사랑을 마시고 처열하게 죽는다. 그래도 좋다. 사랑하는 여인과 입맞춤으로 영혼이 죽는다 해도... 어리석고 바보 같지만 참으로 낭만적이고 프랑스적인 감성이자 사랑이다.

다음 노래는 Le Temps des LIlas(라일락의 계절)이다. 이 곡은Poeme de l'Amour et de la Mer, op.19 (사랑과 바다의 시) 중 에필로그로서 프랑스의 시인이며 조각가였던 모리스 부쇼르(Maurice Bouchor, 1855-1929)의 시에 우수로 가득 찬 서정적인 선율이 봄의 감미로움과 가버린 봄의 아름답고 슬픈 에스프리가 꿈꾸듯 섬세하게 번진다. 

모네의 라일락 그림
모네의 라일락 그림

모네와 함께 르누아르(Pierre Auguste Renoir:1841~1919)의 그림이 쇼송 음악과 밀접하다. 르누아르의 명화들 중에서 6개의 피아노 치는 여인들 두 번째 그림 '이본느와 크리스틴 르롤 자매'의 등장인물 이본느와 크리스틴은 실제 인물이며 이본느 르롤은 쇼송의 누이로서 당대의 유명한 피아니스트였다. 드뷔시가 자신의 피아노 모음곡 '영상'(Image,1894) 1권을 헌정했고 초연했던 피아니스트인 이본느 르롤의 연주와 르누아르의 붓 터치, 그리고 울리는 쇼송의 영원한 노래(Chanson Perpetuelle)

이날의 끝 곡은 소프라노 박선영이 찾아준 관객들에게 바치는 헌사이다.'Mercè, dilette amiche' 고맙습니다, 친애하는 벗들이여! 이렇게 마치고 앙코르로 설마 한국 가곡이나 이태리 칸초네를 부르진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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