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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171] 예술가의 천국: 영화 피아니스트의 전설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0.01.28 09:45
  • 수정 2020.01.28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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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골든글로브 음악상을 수상한 이탈리아 영화의 거장 주세페 토르나토레와 영화음악의 연금술사 엔리오 모리꼬네 콤비의 <피아니스트의 전설>(원제: the Legend of 1900)이 새삼스레 다시 주목을 받아 연유가 궁금했다. 알고 보니 2020년 1월 1일에 리마스터되어 재개봉한 건데 추억을 되살려볼 겸 예전에 보았던 영화를 설 연휴를 맞아 다시 관람해 보았다.

영화 피아니스트의 전설 포스터, 원제 The Legend of 1900

<피아노의 전설>은 배에서 태어나 평생을 함께한 배에서 죽음을 맞이한 천재 피아니스트, 대니 로드먼 T.D. 레몬 나인틴 헌드레드(대니 로드먼은 자신을 키워준 양아버지 이름, T.D는 Thanks Danny의 약자로 미들 네임, 나인틴 헌드레드는 태어난 1900년)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다. '버지니아'라는 유럽에서 미국으로 이민자를 실어 날으는 배에서 태어나 27년을 지내다 처음으로 사랑하는 연인을 찾아 배에서 내리기로 결심하는 주인공. 배에서 육지로 내려가는 트랩(계단)에서태어나서부터 자라온 배를 벗어나 새로운 세계에 발을 디딘다는 두려움 때문이지 결국 포기하고 배와 운명을 같이 하는 천재 피아니스트 나인틴 헌드레드. 유일한 친구인 트럼페터 맥스 투니의 회상으로 전개되는데 필자의 감상 포인트는 아래의 3가지였다.

첫째. 음악의 가치를 인정하고 자신의 직업에 대한 뛰어난 전문성과 투철한 자부심을 가진 악기 상점 주인

맥스가 자신의 악기를 파려고 악기상에 들어와 마지막으로 한 번만 연주를 해보고 싶단 간청을 마지못해 허락한 주인은 맥스가 연주하는 선율이 깨진 레코드판에서 우연히 들은 음악과 같다는 걸 간파하고 (그리고 뛰어난 트럼펫 연주 실력까지 덤으로) 선율의 주인공을 궁금해한다. 어찌 보면 영화의 도입에 이야기를 시작하는 계기에 불과한 이 대목이 도대체 왜 필자의 시선을 사로잡았을까? 십수년을 이어온 동네 빵집, 레코드 가게, 서점 등이 사라져가는 대기업 위주의 양극화 시대에 '장인'이라 불리는 자신의 분야의 최고 전문가에 대한 존경과 목마름에서다. 자신의 직업이 그저 생계를 위한 업이 아닌 사명을 가지고 임하는 분들, 그래서 그 분야만큼의 달인이 되어버린 분들이 대접받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이 부분은 의외로 중요하다. 만약 상점 주인이 그저 악기만 사고 맥스를 내쳤다면, 맥스가 연주한 곡의 진가를 느끼지 못했더라면 앞으로의 이야기 전개는 없기 때문이다.

천재 피아니스트로 분한 팀 로스, 사진 갈무리: 영화 피아니스트의 전설

둘째, 교육과 환경으로도 어쩔 수 없는 타고난 재능, 사람마다 주어진 각자 다른 능력

주인공 나인틴 헌드레드는 제대로 된 음악교육을 받아보지도 않았지만 피아노를 능수능란하게 다룬다. 절대음감이다. 한번 들은 곡은 잊지 않고 연주한다. 모티브가 주어지면 어떤 스타일의 곡도 척척 만들어낸다. 이런 사람 앞에 날마다 겸손히 최선을 다해 열심히 연습하고 또 연습하는 사람은? 책상에 하루 종일 앉아 있지만 한 마디 악보 담아내기도 어렵고 원고지 한 줄 쓰기 어려운 사람은? 불공평하다고?

그럼 신을 원망해야지......

신은 진정으로 공평하다. 사람마다 제각각의 재능을 주었으니... 인간들이 인간들의 잣대로 층층이 구조를 만들고 평가하고 거기에 가둘 뿐이다.

클래식 음악의 위대함을 전파하기 위해 전도사가 되어 오늘도 백방으로 뛰고 열변을 토하며 글을 쓴다. 내가 듣고 느낀 그 심원한 음악의 세계에 한 명이라도 더 빠져 무한한 감동과 행복을 느껴보길 바란다. 그런데 지루하다고 한다. 트로트나 아이돌이 좋다고 한다. 이게 교육으로 바뀐다고? 악보를 볼 줄 모르니 창피하고 보게 만들어야지 교양 있는 인간이 된다고? 수포자? 수학을 해야 되는 이유가 뭔가? 더 나은 삶을 영위하고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다. 대학 가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공부고 그걸 못하면 무능하고 불행한 인간이 대한민국이다.

셋째, 엔리오 모리꼬네만 만들 수 있는 음악, 그러나 한국에선 그저 소모품 늙은이로 모욕당한 음악의 연금술사

엔리오 모리꼬네만 만들 수 있는 영상과의 절묘한 조화와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음악, 풍만한 서정성과 천진무구한 순수함, 인간 본연의 심성에 살포시 따뜻한 손을 올려놓는 엔리오 모리꼬네의 인간성... 엔리오 모리꼬네와 나인틴 헌드레드는 모짜르트의 재림이다.(Mozart reincarnated)

영화와 함께 항상 깊은 여운을 남겨 놓은 이런 엔리오 모리꼬네가 십수 년 전 부산국제영화제와 와서 경호원들과 행사 관계자들에 의해 문전박대 당한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분통이 터진다. 분명 자신이 엔리오 모리꼬네라고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뒷방 노인네 취급한 거다. 그건 상술한 첫 번째 관점과 일맥상통하다. 사설경호업체 직원들이나 행사 관계자들 모두 부산국제영화제라는 행사에 돈 받고 고용된 사람에 불과하지 일에 대한 전문성과 애정이 없으니 엔리오 모리꼬네가 누군지도 몰랐을거다. 국제적 망신이다. 최저임금 받는 아르바이트생 수준의 '수틀리면 안 하면 그만'이란 마인드를 버리고 단 1시간을 일하더라도 주인정신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임하면 좋을 텐데.... 그들만 탓할 수 없다. 이렇게 돈만 알고 물질만능주의에 빠진 전체 대한민국 풍토를 개선해야지....... 그러려면 더욱 필요한 게 이런 <피아니스트의 전설>같은 영화라도 보는 거다.

결국 주인공은 배에서 내리지 않고 바다에서 배와 함께 폭발을 맞이한다. 어찌 보면 그게 진정한 행복이자 옳은 결정이었을 터. 내려봤자 뭐 하나? 아귀다툼 벌이는 세상에 홀로 내버려져 돈벌이의 대상으로 이용만 당하고 동물원의 원숭이 마냥 갇혀서 재롱만 피우다 쏙쏙 기 빨려서 소진할 텐데..... 부디 멋대로 이래라저래라 하지 말자. 나인틴 헌드레드에겐 배라는 공간이 천국이었을 터, 그 안에 있는 게 행복이고 후회 없는 삶이 없을 테다. 나라도 그런 배가 있다면 내리지 않을 건데...

배에 탄 사람들의 공통의 목적지와 희망의 대상은? 아메리카다! 나인틴 헌드레드의 연주에 빠져 있다가도 아메리카라는 꿈과 환상, 손대면 닿을듯한 눈에 보이는 도시에 불나방같이 뛰어들고 나인틴 헌드레드는 홀로 남겨진다. 선택적 고독이자 숙명이다.

이 리뷰를 읽는 당신의 버지니아 호는 무엇인가요? 영화 <피아니스트의 전설>과 함께 88개의 건반이 아닌 수백만 개의 우리의 의지로는 어쩔 수 없는 건반을 치기 위해 아등바등 거리고 있지는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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