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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170]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탐방기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0.01.27 09:34
  • 수정 2020.01.27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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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만 알고 싶은 곳이 있다. 공개하기 싫다. 언제든지 찾아가서 고적함을 누리고 싶다. 드넓고 시원스런 공원, 확트인 광장에 들어서 멀리서 봤을 땐 노숙자가 벤치에 모포를 뒤짚어 쓴 채 누워 있는 줄 알았다. 가까이 가보니 조각품이었다. 이름도 <노숙자 예수>, 예수님? 그렇다! 이 곳 서소문 밖은 조선시대 공식 처형지이자 한국 최대 순교 성지였다. 순교자의 이름을 새긴 순교자 현양탑이 높이 솟아 고인의 넋을 기리고 그래서 교황청에 설치된 것과 같은 티모시 쉬말츠의 '노숙자 예수상'이 낡은 담요 한장으로 세상의 거친 풍파를 이겨내고 있었다. 서울 중구 칠패로, 서울역서부 뒤에 위치한 서소문역사공원과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은 서울에서 휴식과 안식을 취할 수 있는 나만의 힐링 플레이스이자 은밀한 아지트다.

노숙자가 들끊었던 서울역 뒤의 고립된 섬이었던 이 곳이 서소문역사공원으로 탈바꿈했다.
노숙자가 들끊었던 서울역 뒤의 고립된 섬이었던 이 곳이 서소문역사공원으로 탈바꿈했다.

조선시대 4개의 대문과 4개의 소문 중 남대문 옆의 소의문(서소문)은 동쪽의 광희문과 함께 도성 안의 시체가 반출되는 문이었다. 그래서 그런걸까? 서쪽의 시구문인 서소문 밖에는 사형집행장이 있었고 해방 후에는 서소문고가, 염천교, 경의선철길등으로 고립되어 외딴섬이 되어 노숙자들의 해방구, 즉 거지들이 우글거리는 소굴이 되었다. 원래 노숙자들이 시간을 보내던 서울역 뒤의 공원과 쓰레기처리장으로 활용되던 지하를 역사를 품은 채 재생해서 재탄생시킨 대표적인 서울의 명소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서소문에 관련된 다양한 유물과 천주교 관련물이 진열된 지하3층의 상설전시관

공원에 위치한 박물관은 지하1층에서 4층까지 역사와 순교자를 품은 또 다른 세계였다. 천주교 박해의 기록물들과 전시물이 진열된 지하 3층의 상설전시관 중 유독 눈에 띄는 건 저명한 천주교 집안이었던 정약용 일가의 저서와 유품이다. 또한 안중근 의사가 돌아가시 전 하느님에게 공경하라라고 쓴 경천의 자필이 액자에 담겨 있다. 엄숙함의 절정을 이루는 상설전시관 옆의 콘솔레이션 홀(위로, 위안의 홀)은 실제로 순교성자들의 유해가 담겨 있는 무덤이기도 하다. 그곳에서 작은 수로를 따라 흐르는 물은 자유를 상징하는 하늘광장으로 이어져 사상과 종교의 자유를 위해 희생당한 사람들의 정신을 기리는 추념의 의미로 하늘을 바라 볼 수 있도록 조성했다.

하늘광장의 <서 있는 사람들> 조형물

갑자기 외부에 정사각형의 뻥 뚫여 있는 광장이 나와 놀랐다. 거기에 삐죽삐죽 세워져 있는 조형물들. 시편 139장의 16절에 나오는 골렘(Golem)인지 알았다. 16세기 유대인의 박해 시절, 그들의 보호자 성격을 가지기도 했던 사람 모양의 형상이 <서 있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서 있다.

하늘광장에 연결된 하늘길에서는 <Through the Narrow Gate>(좁은 문으로>라는 미디어아트가 한창이었다. 신비로웠다. 실재 같았다. 미디어아트와 함께 그 하늘길을 걸으니 진짜 황천길 같았다...좁은 문이라니....내겐 구원과 영생을 얻은 희망의 문이자 복된 문이다. 파도를 맞으면서 애달픈 바이올린음을 들으면서 좁은 문을 뚫고 영생을 맞으리....

하늘길에서 구현된 미디어아트, <좁은 문으로>

박물관 내의 정하상 기념 성당에서는 매일 미사가 열리고 지하 1층의 강의실과 도서관은 시민들에게 항시 개방되어 각종 문화행사나 음악회도 열린다. 종교를 불문한 모든 이들의 문화 공간으로 새단장 한 것이다. 도심 한 복판에 전혀 예상치 못한 신성하면서도 명상적인 비밀의 공간이다. 장엄미와 숙연함이 느껴지며 꼭 지하성당에 온 느낌이다. 마치 박해를 피해 지하에 숨어 예배를 드렸던 선조들처럼 세간의 부대낌과 시끄러움, 속세의 번잡함에 도망치듯 숨을 수 있는 안식과 위로의 장소다(Consolation H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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