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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169] 양반도시 전주와 트로트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0.01.26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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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과 문화가 살아 숨 쉬는 예향, 호남의 관문이자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을 비롯하여 전북대 삼성문화회관, 덕진예술회관, 한국전통문화회관, 한국무형유산원, 전북예술회관 등 수많은 문화시설이 위치한 선조들의 멋과 풍류가 깃든 양반의 고장 전주.

전통과 문화가 살아 숨 쉬는 예향 전주, 사진 제공: 뉴시스

영어로 "빠르게 걷는다", "바쁜 걸음으로 뛰다"라는 뜻의 트로트는 미국과 영국 등에서 빠른 템포의 래그타임이나 재즈 템포의 4/4/박자 사교댄스 스텝 또는 연주 리듬을 일컫는 폭스트로르(Fox-trot)에서 연원한 단어다. 한국에 트로트풍(風)의 음악이 도입된 것은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말부터이다. 이보다 앞서 일본에서는 일본 고유의 민속음악에 서구의 폭스트로트을 접목한 엔카[演歌]가 유행하고 있었다.같은 시기 한국에서는 신민요풍의 가요가 유행하였는데, 1928년부터 레코드 제작이 본격화하면서 많은 일본 가요가 한국말로 번역되고, 한국 가요도 일본에서 녹음을 하는 과정에서 일본인이 편곡을 담당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 결과 일본 가요와 한국 가요의 선율이 자연스럽게 접근하고 1930년대 말부터는 조선어말살정책으로 인해 한국 가요는 갈수록 일본 가요에 동화되었다. 이로 인해 광복될 때까지 한국에서는 엔카풍의 대중가요가 유행하였다. 광복 후 왜색의 잔재를 없애고 주체성 있는 건전가요의 제작과 보급, 팝송과 재즈 기법 등이 도입되면서 엔카풍의 가요도 새로운 이름을 얻었는데, 일명 '뽕짝'으로 부르는 트롯(트로트)이 그것이다.

전주 MBC에서 방영한 명인명창열전, 사진 갈무리: 전주MBC 방송
전주 MBC에서 방영한 명인명창열전, 사진 갈무리: 전주MBC 방송

왠지 가장 한국적인, 양반의 도시라는 전주와 트로트라는 조합이 부자연스럽고 언밸런스하지 않나?

전주 MBC에서 <명인명창열전>이라는 프로그램을 기획, 방영하면서 명창들이 국악과 가요를 부르는 무대를 마련하였다. 확실한 것은 트로트는 우리 전통이 아닌 왜색이라는거다. 개인의 취향에 대해 왈가왈부할 의향은 없으나 민족성이라는 정의와 정체성 안에 얼마나 많은 것들이 오도되고 있는지 최소한 알고는 있어야 된다고 여긴다. 지금의 대한민국 민족성과 풍토가 100년 전 우리 선조들의 방식과 같을까? 시간을 건너 뛰어 우리는 같은 땅에 살고 있을 뿐 완전히 다른 민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리 가곡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의 가곡과 조선시대 가곡이 완전히 다르고 우리가 한국 가곡이라 칭하는 것들은 그럼 트로트와 달리 왜색이 없고 유입 경로와 발전과정이 다른 우리 민족 정통성을 확보한 곡들인가?

한국 전통소리를 하시는 분들이 트로트를 부르니 좋게 말하면 영역파괴이자 경계 허물기요, 트로트든 국악이든 가곡이든 모두 우리 노래니 이런 식으로 대중화를 시켜 음악가들 얼굴도 알리고 시장도 넓혀야 된다는 주장도 일견 설득력이 있다. 우리 노래, 민요의 정의(精義)에 대해서도 다시 숙고해야 될게 과거에도 여러 외세의 양식이 들어와 우리 풍토와 혼합이 되었으며 민요도 서민들이 즐겨 부르던 자연발생적인 산물이었다. 전통이 되어버린 지금의 판소리나 가곡 등도 현재의 트로트처럼 당대엔 민중들의 삶의 애환을 달래주고 같이 부르고 즐겼던 노래들 아니었겠는가.....트로트든 가곡이든 오직 돈을 벌기 위한, 뜨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자극적이고 형편없는 범작들을 타파해야지 판소리 명창이 트로트든 슈베르트든 팝송이든 부르고 그걸 또 우리네 민중들이 받아들인다면 그게 예술이지 않을까? 가곡이든 트로트든 좋은 곡을 많이 듣고 즐길 데 우리 것이 될 것이다.

지금 시대에 갓 쓰고 한복 입지 않지만 그렇다고 갓과 한복을 폐기처분하지 않은 것처럼 전주 한곳이라도 부화뇌동하지 않고 전통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도 하나의 방편이 될 터인데...
지금 시대에 갓 쓰고 한복 입지 않지만 그렇다고 갓과 한복을 폐기처분하지 않은 것처럼 전주 한곳이라도 부화뇌동하지 않고 전통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도 하나의 방편이 될 터인데...

13세기 유럽에서 악보가 만들어지고 인쇄술이 발달되기 전의 기록 대신 구전으로 행해지던 방랑시인의 노래와 중세 시대의 종교곡들이 현재 몇몇의 학자들에게만 전수되고 유물로 남은 것처럼 시대와 양식의 변화에 따른 대처와 유연한 사고가 필요하다. 물론 오픈 마인드와 유연성은 당대의 풍조를 따라가려는 욕구와 갈등한다. 과거의 씨름이 이종 격투기와 프로 레슬링이 되어 씨름 선수가 씨름은 안 하고 시장이 더 크고 즐기는 사람이 더 많은 그쪽으로 간다고 해서 비난할 수도 없는 일이요, 전통 사찰을 캔버스에 운치 있게 묵화로 한국적 감성을 살려 서양인이 그렸다면 그게 동양화일까? 한국 가수가 영어 노래를 부르고 가야금 연주자들이 비발디의 사계를 가야금으로 편곡해서 연주한다면? 수용자 입장에선 아무 관심 없는 문제를 동종업계, 한 '게토'에서만 아웅다웅하고 있다.

그래도 전주라는 상징성이 있는 곳에서만큼은 전통문화의 보전과 계승이라는 차원에서 이런 민간이나 시청률 끌어모으려는 상업적인 접근보다 공익과 공공성 측면에서 민요를 더 많이 방송해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창작의 본질적인 정의란 해당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이 공통적으로 공유하는 기득권층에 대한 정서와 비판을 해학과 음악, 그리고 문학적인 필치로 풀어내어 무대에 올리는 작업을 의미한다. 나아가 예술의 본질이란 시대를 향한 비판과 풍자, 그리고 해학이며 때로는 당대 시민, 국민들의 시름과 한을 잠시 내려놓고 해소하기 위한 마당과도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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