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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성 수필 [ 33 ] 덕재 12 / 박 씨

김홍성 시인
  • 입력 2020.01.26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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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이 장사였다. 쌀 한 가마 정도는 지게에 지고 가뿐하게 걸었다. 쌀 한 가마 위에 작두까지 통째로 얹어서 삼십 리를 걸어오는 그를 마을이 있는 고개 마루에 내려가 마중한 일이 있다. 고개 마루는 시야가 넓었다. 연천 땅과 포천 땅 그리고 철원 땅들을 가르는 능선들이 드넓은 하늘 아래 겹겹이 달리는 것이 훤히 내다보였다.

ⓒ김홍성 

 

박 씨는 지나간 전쟁 중에 고향과 가족을 잃은 사람이었다. 지금은 비무장 지대인 철원 북쪽 어느 마을에서 자랐다. 전쟁 나던 해 봄에 인민학교 2학년이었는데 나물하러 가는 형들을 따라 산에 갔다. 

그 날 산에서 버섯을 따 먹었던 기억은 있는데 그 뒤 몇 달 동안은 기억이 없다. 그가 먹은 버섯은 미치광이 버섯이라고 부르는 독버섯이었다. 이 걸 먹은 사람은 낄낄거리며 사방천지를 돌아다니는 광인이 된다고 했다.

그도 그렇게 실성하여 낄낄거리며 돌아다니다가 피난민 대열에 휩쓸려 이남으로 내려왔을 것이다.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남쪽 어느 도시에서 거지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왕초 거지가 술에 취해 곯아떨어진 사이에 다리 밑 거지소굴에서 탈출했다. 무작정 북쪽을 향해 걷고 또 걸었다. 그렇게 걸으면서 자신이 실성한 사이에 전쟁이 있었고, 예전의 삼팔선 대신 휴전선이 생겼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휴전선이 막혀 고향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그는 철원 인근 부농의 집을 전전하며 머슴을 살면서 잔뼈가 굵었다. 부인이 두 번 있었으나 한 번은 사별했고, 한 번은 배반당했다. 배반당한 사연은 끝내 말하지 않았다. 

뭔가 깊은 상처가 있을 것은 분명했다. 봉급을 타면 그 날로 장거리 주막집 작부들과 젓가락을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고 놀았다. 그러느라고 봉급을 모조리 써버리기도 했으나 결코 후회하지 않았다.

힘이 장사였다. 쌀 한 가마 정도는 지게에 지고 가뿐하게 걸었다. 쌀 한 가마 위에 작두까지 통째로 얹어서 삼십 리를 걸어오는 그를 마을이 있는 고개 마루에 내려가 마중한 일이 있다. 고개 마루는 시야가 넓었다. 연천 땅과 포천 땅 그리고 철원 땅들을 가르는 능선들이 드넓은 하늘 아래 겹겹이 달리는 것이 훤히 내다보였다.

그 날은 1년 중 해가 제일 길다는 하짓날이었다. 저녁 노을이 그 어느 때보다 짙었다. 붉은 해가 저 멀리 철원 땅의 지장산 능선으로 내려앉으면서 온 하늘을 핏빛으로 물들였다. 핏빛은 콩고물 같은 흙과 돌멩이들로 뒤덮인 고갯길까지 푹 적셨다. 공기마저 붉게 물든 듯하여 손을 공기 중에 휘저어 보니 공기가 물처럼 진하게 느껴졌다. 내 손등과 손톱 밑의 하얀 반달까지 붉게 물들였다. 

그렇게 진한 노을이 깔린 고갯길 저 멀리 상여가 내려가는 게 보였다. 따르는 무리들이 없는 것으로 보아 송장을 묻고 돌아오는 빈 상여가 분명했다. 상여는 산호들이 빛을 뿜는 바다 밑에서 게처럼 꿈틀거렸다.

상여는 우왕좌왕 비틀비틀 걷다가 멈춰서 한동안 움직이지 않기도 했다. 상두꾼들은 모두 만취해 있음이 분명했다. 만취한 채 상여를 메고 가다가 다시 마시느라 상여를 내려놓았는지도 몰랐다.

그 때 구슬픈 노래가 들려왔다. 상여가 멈춘 고갯길 아래에서 들려오는 노래였다. 그 노래는 만가, 즉 상엿소리였다. 가슴속 생살을 에는 듯 구슬픈 상엿소리가 들려오는 중에 붉은 해는 지장산 능선 너머로 잠겨 버렸다. 얼마 후 상여는 다시 비틀비틀 움직이더니 이내 산모퉁이 뒤로 사라졌다. 그래도 상엿소리가 한동안 이어졌다.

상엿소리가 끊어지고도 한참 지나서 박 씨가 나타났다. 사위는 이미 어둑해진 후였다. 박 씨는 지게를 진 채로 앞장서서 고개 마루 주막집에 이르자 지게를 내려 작대기로 받쳤다. 쌀 한 가마 위에 작두까지 통째로 얹혀 있는 지게였다. 나는 작두를 내 빈 지게에 옮기자고 했으나 박 씨는 한사코 그냥 놔두라고 하더니 내 손을 잡아끌고 주막집 안으로 들어갔다.

지게 지고 고갯길을 올라오느라 땀을 많이 흘린 박 씨는 고개 마루 주막집 주모가 꾸물거리자 직접 술독 뚜껑을 열고 고무 바가지로 한 바가지 가득 퍼서 꿀떡꿀떡 들이켠 후에 부엌 선반에 놓인 김치 그릇에서 총각김치 한 개를 손으로 집어 통째로 입에 넣고 씹었다. 그러면서 말했다. 전날 밤 오입을 했더니 몸이 가뿐해져서 짐이 하나도 안 무거웠다고. 땀이 무척 나서 목이 말랐는데 상두꾼들을 만나서 한 사발 얻어 마셔서 좋았다고.

나도 그 상여를 봤다고 박 씨에게 말했다. 그토록 짙은 노을은 처음 보았다는 말도 했다. 주모가 와서 주전자와 술잔과 김치보시기를 받친 쟁반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나는 내가 본 노을을 박 씨에게 좀 더 설명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박 씨는 내 말을 듣기가 지루한 듯 했다.

나는 말하다 말고 내 앞의 막걸리 사발을 들어 모두 비웠다. 그 사발에 술을 채워 주는 박 씨에게 다시 물었다. 상두꾼의 노래 소리는 들었냐고. 그 말에 박 씨는 눈을 빛내면서 그 소리가 어떻더냐고 되물었다.  

나는 좀 과장해서 대답했다. 이를테면, 너무나 애절해서 오장육부가 다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 같더라고. 그러나 박 씨는 여전히 아무 말이 없었다. 내가 사발을 비우자 박 씨는 일어섰다. 막걸리 주전자는 이미 비었으므로 더 늦기 전에 목장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박 씨는 먼저 나가고 나는 아무래도 술이 모자랄 것 같아서 막걸리 반 말을 더 사서 지게에 지고 앞서 간 박 씨의 뒤를 따랐다.

걸으면서 생각했다. 박 씨처럼 무식하고 힘만 센 둔한 사람의 눈에는 그토록 황홀한 노을이 보일리가 없다고, 또한 그토록 애절한 상두꾼의 노래도 제대로 들릴 리가 없다고. 그러나 그 생각은 잘못된 생각이었다.

목장을 향해 한참 올라가다 보니 어둠 속에서 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구슬프기 짝이 없던 아까의 그 노래였다. 나는 지게 밑 등줄기에서 전율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내가 노을 속에서 들었던 상두꾼 노래 역시 박 씨가 불렀다는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그는 나 들으라고 노래를 불렀을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는 그냥 뒤처져 오는 나를 기다리기도 할 겸 가슴 속에 오래 묵은 회한을 그렇게 달래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 내 기억의 박 씨는 그날의 노을이나 노래와 다르지 않다. 그는 그 날의 모든 것에 완벽하게 용해되어 있었다. 그는 그 자체였기 때문에 나처럼 이렇게 호들갑을 떨 필요가 없었다고 여겨진다.

덕재 목장에서 함께 일했던 박 씨에 대한 기억은 이것이 전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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