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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성 수필 [ 31 ] 덕재 10 / 외딴집

김홍성 시인
  • 입력 2020.01.22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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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병사들은 모조리 판초 우의를 뒤집어 쓰고 비를 줄줄 맞고 있었다. 한 병사가 방에서 나오자 줄 맨 앞에서 있던 병사가 안으로 들어갔다. 한 병사가 방에 들어갔다 나오는 데 걸리는 시간은 1분도 안 되는 것 같았다.

ⓒ김홍성 

대규모 기동훈련이 여러 날 계속되던 어느 날 비가 몹시 내렸다. 사격장 출입은 통제 되어 있었고 소들은 목장 옆에 조성한 목초 밭에 풀었기에 목동 두 사람이 각각 마을로 내려가는 길목과 사격장 넘어가는 길목을 지켰다.

나는 마을로 내려가는 길목에서 소들을 지켰다. 판초 우의를 걸치고 바위 처마 밑에 혼자 앉아 하염없이 내리는 비를 바라보노라니 무료한 가운데 처량한 생각도 들었다.

소들은 찬비 맞는 등에 더운 김을 피워 올리며 열심히 풀을 뜯었다. 빗소리와 도랑을 흐르며 모래를 굴리는 물소리 속에서 이따금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다. 멀지 않은 풀숲에는 노란 산 나리꽃이 고개를 숙인 채 비를 맞고 있었다. 내 발 밑에는 개미들이 열을 지어 어디론가 이동하고 있기도 했다.

산중의 시간이 그렇게 흘러 점심때가 되자 박 씨가 교대해 주러 왔다. 나는 목장으로 올라가 점심을 먹는 대신 여우 고개 주막집에서 막걸리를 마시기로 작정하고 마을로 내려갔다. 박 씨는 나더러 돌아올 때 막걸리 반말과 담배 한 보루를 사오라며 안주머니에서 비닐 주머니를 꺼냈다. 비닐 주머니 속에는 담뱃갑이 있었고 돈은 담뱃갑 속에 돌돌 말려서 끼워져 있었다.

마을로 내려가는 길가 저만치 외딴집 마당에 낯선 남녀들이 있었다. 그 집은 고철을 주워 생계를 잇는 노부부가 사는 집이었다. 사람이 찾아오는 일이 거의 없는 집이어서 낯선 남녀들이 서성이는 게 눈에 뜨인 것이다. 혹시 객지에 나가 사는 자식들이 찾아온 게 아닌가 싶었을 뿐 다른 생각은 못 해 봤다.

한 손에 막걸리 반말을 들고, 판초 우의 속 겨드랑이에는 담배 한 보루를 끼고 목장으로 돌아오는 진흙길 위에는 여전히 빗방울이 세차게 튕기고 있었다. 사위가 컴컴했지만 그것은 밤이 되어서가 아니라 하늘에 드리운 검은 비구름 때문이었다. 산모퉁이를 에돌자 저만치 외딴집이 나타났는데, 아래 위 두 개의 방문 앞에 두 줄로 늘어선 수 십 명의 미군들이 보였다.

미군 병사들은 판초 우의를 쓰고 비를 줄줄 맞고 있었다. 한 병사가 방에서 나오자 줄 맨 앞에서 있던 병사가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갔다 나오는 데 걸리는 시간은 1분도 안 되는 것 같았다. 병사들이 그 외딴집에 무슨 볼 일이 있는지가 의아하여 한참 바라보았지만 도무지 짐작이 안 갔다.

그러다가 생각났다. 내가 내려올 때 그 집 앞에서 서성이던 남녀들, 그리고 며칠 전에 산 밑에서 우연히 만나 같이 올라온 남녀들. 그 두 상황을 연결시켜 생각해 보니 답이 나왔다. 모포부대였다. 모포부대가 외딴집을 세를 내어 성매매 업소로 이용하는 것이 분명했다.

미군들이 늘어선 줄은 길어지면 길어졌지 전혀 줄어드는 기미가 안 보였다.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었다. 한 여성이 어떻게 그렇게 많은 미군을 계속해서 상대할 수 있다는 말인가? 나는 그 의문을 목장에 돌아와 목동끼리 막걸리를 마시는 자리에서 제기했다.

의문은 윤 씨에 의해서 풀렸다. 윤 씨에 의하면, 그런 경우에는 손에 콩기름을 바르고 '물건'을 펌프질 해주는데, 바쁠 때는 미군 둘을 양쪽에 눕혀 놓고 양손으로 동시에 펌프질을 한다고 했다.

윤 씨는 또 미군 중에는 이상한 놈들도 많다면서 어떤 놈은 사정하기 직전에 '마미'를 찾는다고도 했다. 그 때 박 씨가 윤 씨에게 물었다. 어떻게 그렇게 잘 아냐고. 윤 씨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고 그냥 씩 웃고는 막걸리 사발을 들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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