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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성 수필 [ 29 ] 덕재 8 / 민둥산의 앰뷸런스와 치누크

김홍성 시인
  • 입력 2020.01.21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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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쓸모없는 차 껍데기라고는 하지만 선명한 붉은 십자가를 향해 기관총을 갈긴 자들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놈들인지 궁금했다. 나는 우리 소들을 향해 기관총으로 공포탄을 쏘아 대며 낄낄거리던 놈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김홍성 

치누크가 사격장에 날아온 날이 생각난다. 치누크는 프로펠러가 앞뒤로 두 개나 달린 헬리콥터다. 커다란 트럭이나 장갑차도 쇠줄로 매달고 날아다닌다. 그 날의 치누크는 앰뷸런스를 매달고 날아왔다. 흰 바탕의 원 안에 붉은 십자가를 그린 적십자 마크도 선명한 앰뷸런스였다. 치누크는 그 앰뷸런스를 여러 민둥산들 중에서 제일 왼쪽 민둥산 꼭대기에 내려놓고 돌아갔다.

우리는 그 때 소를 풀어 놓고 쉬면서 치누크가 하는 작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았다. 우리는 앰뷸런스가 거기 놓인 이유에 대해서 제각기 다른 주장을 폈으나 사격 연습의 타깃일 것이라는 누군가의 추리가 들어맞았다.

치누크가 돌아간 지 한 시간도 안 되어서 다른 헬리콥터들이 나타났다. 우리 소들에게 기관총을 쏴댔던 헬리콥터들과 같은 종류였다. 아연 긴장했지만 지난번처럼 우리를 향해 낮게 내려오지는 않았다. 만일 그 대여섯 대나 되는 헬리콥터들이 우리 머리 위로 낮게 내려온다면 우리 소들은 모조리 미쳐 날뛸 것이었다.

헬리콥터들은 굉음을 쏟아내며 그 민둥산 위로 날아가 앰뷸런스를 향해 기관총을 쏴댔다. 헬리콥터들이 완전히 돌아갔다고 판단된 후 나는 민둥산 위의 그 앰뷸런스가 어떤 꼴을 하고 있는지가 보고 싶었다. 그러나 또 다른 헬리콥터들이 날아올지도 모른다고 만류하는 형의 말도 일리가 있어 그 날은 참았다. 다음 날인지, 또 그 다음날인지 나는 앰뷸런스가 있는 민둥산을 향해 올라갔다.

바람이 불 때마다 돌가루가 날리고 화약 냄새가 퍼지는 민둥산 ......, 암반이 드러난 비탈은 채석장처럼 스산했다. 형체가 뭉그러지고 납이 물고기 부레처럼 삐져나온 총알이 누군가 먼저 지나간 사람의 발자국에 눌려 있었다. 좀 더 올라가서 그 발자국을 낸 사람을 발견했다. 그는 금속탐지기로 땅 속에 박힌 포탄을 탐지하기 위해 올라온 사람이었다.

그는 두 귀에 리시버를 꽂고 있었다. 탐지기에서 땅 속으로 보낸 전류가 금속에 닿을 때 나는 특별한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이었다. 그들은 땅 속 어느 정도 깊이에 어떤 종류의 금속이 얼마나 크게 자리 잡고 있는지를 예민하게 감지한다고 했다.

그의 생업에 대해 궁금한 게 많았지만 그가 너무 열중하고 있어서 말은 못 붙여 보았다. 민둥산 위는 운동장처럼 편편했고, 앰뷸런스는 그 가장자리의 벼랑 옆에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애당초 바퀴도 엔진도 운전대도 없는 껍데기 앰뷸런스였음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총알구멍으로 벌집이 되어 있었다. 지붕과 엔진 덮개를 비롯한 사방의 적십자 마크는 총알구멍이 더욱 촘촘하게 뚫려 있었다.

아무리 쓸모없는 차 껍데기라고는 하지만 선명한 붉은 십자가를 향해 기관총을 갈긴 자들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놈들인지 궁금했다. 나는 우리 소들을 향해 기관총으로 공포탄을 쏘아 대며 낄낄거리던 놈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적개심이나 증오는 물론 양심의 가책도 없이 일상적으로 하는 연습처럼 장난삼아 실전에 임하는 자들도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내 꿈에는 우리 소들을 향해 기관총을 쏘며 낄낄대는 미친놈들이 헬리콥터를 타고 날아오곤 했다. 꿈에서 들이 쏘는 기관총은 공포탄이 아니라 실탄이었고, 실탄인 줄 알았는데 공포탄이기도 했다.

우리 목장 종우들이 헬리콥터들이 쏴대는 실탄을 맞고서 옆구리가 열십자로 터지더니 거기에 붉은 선지가 맺히는 꿈도 꾸었다. 내 손에도 기관총이 들려 있었고, 이제 가까이 온 헬리콥터를 향해 사격을 해야 하는데 총알이 나가지 않아 낭패하여 어쩔 줄 모르다 꿈에서 깨기도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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