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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161] 제14회 종삼음악회를 다녀와서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0.01.19 08:44
  • 수정 2020.01.19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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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음악의 고독한 축제, 제14회 종삼음악회가 1월18일 열려

연신내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출발하려는 순간 아주머니 두 분이 버스를 우악스럽게 붙잡고 은평한옥마을행이냐고 물어봤다. 기사의 맞다는 대답과 함께 탑승한 두 분의 수다와 호들갑,극성,주접은 '혹시 저분들도 한옥마을 내 종삼음악회에 가나'하는 두려움과 한숨이 절로 나왔다. 처음 가보는 장소와 행사다 보니 어떤 분들이 오시는지 감이 안 잡혔지만 머릿수 채우기에 동참하려고 북한산 기슭까지 먼 길을 마다않고 달려온 게 아니기 때문에 기왕이면 시와 문학이 어우러진 격조 높은 시간이길 바라는 소망이었다.

1월 18일 토요일 오후 4시, 은평한옥마을에서 열린 김종삼시인 탄생 99주년 기념 종삼음악회
1월 18일 토요일 오후 4시, 은평한옥마을에서 열린 김종삼시인 탄생 99주년 기념 종삼음악회

한옥마을에 내리니 서울 도심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맑고 청량한 공기가 절로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었다. 일부러 1시간 전에 온 보람이 있었다. 한옥마을도 둘러보고 진관사에 발도장도 찍고 산림욕도 실컷 즐긴 후 드디어 오늘의 음악회 장소인 은평한옥마을 내 마을회관에 들어갔다. 마을회관 지하공간을 빌려 진행되는 종삼음악회는 시인 김종삼을 조명하고 그의 작품을 알리고 보급하면서 클래식 음악에 정통했던 시대의 선각자 시인 김종삼을 음악과 연계해 알아가는 자리였다. 박인 작가의 인사말로 시작된 이번 음악회 주제는 '라산스카'였다. 미국에서 태어난 유태인 소프라노인 훌다 라산스카(Hulda Lashanska, 1893-1974)는 당대의 다른 가수들에 비해 크게 알려졌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는 인물이지만 라산스카의 노래는 시인 김종삼에게 어머니같이 다가왔던 그리운 존재이면서 동시에 시적 영감을 안져준 뮤즈라고 한다.

일단 김종삼이라는 시인이 생소했기에 귀를 쫑긋하고 들었다. 1921년 황해도 해주 출신이 그는 일본 토요시마 상업학교를 졸업하고 광복 후에 극예술협회 연출부의 음악 효과를 맡았다. 그 점부터 다른 문인들, 시인들과는 다른 음악과의 밀접한 연관성을 보인다. 이후 동아방송국에서 근무하면서 음악과 연결 짓는 시적 환상의 세계를 선보인 작가였다. 그러다 보니 그의 첫 번째 개인 시집의 이름이 '십이음계'(十二音階)라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닐 터, 이후 <북 치는 소년>,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등의 시집을 발간하면서 1984년에 타계하였다는데 필자가 과문한 탓도 있겠지만 동갑내기인 김수영 시인에 비해 너무나 정보와 아는 바가 없었다. 그게 꼭 필자의 무지 때문일까?

종삼음악회가 열린 은평한옥마을 내 마을회관

김종삼 시인의 큰 영애와 손자 분이 입석한 가운데 치뤄진 시 낭송회에서는 여섯 명의 북한산글자매라는 문학동호인들이 라산스카에 관련된 김종삼의 시를 낭독하고 이민호 시인이 시에 관한 간단한 설명해주고 박시우 시인이 개개의 시에 속한 키워드와 문구에 맞는 클래식 곡들을 선곡해 감상하는 자리를 가졌다.이중 1961년 [자유문학]에 실린 라산스카는 다음과 같다.

루부시안느의 개인 길바닥, 한 노인이 부는 서투른 목관 소리가 멎던 날.

묵어 온 최후의 한 마음이 그치어도 라산스카. 사랑과 두려움이 개이어도.

박시우 시인이 가지고 온 하인츠 홀리거가 연주한 마르첼로의 [오보에 협주곡 라단조 2악장 아다지오]를 같이 감상했다. 한 노인이 부는 서투른 목관 소리가 오보에일까? 삶의 마지막에 부는 한 조각의 작은 선율이 라산스카라는 소프라노의 영혼으로 투영된다. 일련의 라산스카 작품들은 김종삼 시인의 개인적인 기호에 머물지 않고 속죄 의식과 정화의 과정을 거쳐 통렬한 자기반성과 구원의 메시지를 내포한다. 치유의 분위기로 좌중을 숙연케 만들며 뭉클한 종교적인 제의(Ritual)의 집단 나르시시즘을 경험한다. 오직 예술을 경험할 때만이 고통으로 가득 찬 의지의 세계로부터 벗어날 수 있으리라는 구원의 손길이다. 그래서 특히나 오늘의 여러 시 중에서 두 문장이 기억이 남고 가슴에 새겨진다.

온갖 추함을 겪고서 인간 되었던 작대기를 집고서.

나 지은 죄 많아 죽어서도 영혼이 없으니...

뒤풀이 장소에서 문인들에게 다른 시인들에 비해 김종삼 시인의 연구가 미진하고 대중적이지 못한 이유에 대해 물어봤다. 음악계와 별다르지 않았다. 시대에 묻혀가고 학계라는 소위 먹물들의 카르텔에 배척당한 것이다. 왜? 힘이 없고 세력의 부재로 학계에서 뒷받침해 줄 세력이 없어서이다. 제자를 길러내고 계속 가르치면서 우위를 점해야 되는데 한국에서 대학을 나온 것도 아니요 동문이나 스승, 선후배가 없었으니 문단에서 철저히 소속이 없는 아웃사이더였을 것이다.

과학 사회학의 창시자인 로버트 킹 머튼은 <신약성서>의 '마태복음'에 나오는 "부유한 사람은 점점 부유해지고, 가난한 사람은 점점 더 가난해진다"라는 문장을 차용해 '이익-우위성의 누적' 메커니즘을 지적하고 '마태 효과'라고 명명하였다. 즉 이미 다른 경로로 검증된 경력과 실력은 실제보다 부풀려지거나 확대된 형태로 유리한 상황을 이미 선점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명의 인물들, 세력이 없는 자들은 이중고를 겪는다. 세간의 현미경 검증과 "어디 네가 얼마나 잘하나 보자"하는 우려감과 질투가 섯긴 시선과 태클을 이겨내야 한다.

지금이야 유통과 보급 방식, 즉 플랫폼의 획기적인 변화로 신문, 방송 등 전통 매스미디어 환경이 무너져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틱톡, 네이버, 카카오, 페이스북 등 콘텐츠를 전달하고 유통하는 플랫폼으로 넘어갔고콘텐츠를 제공하고 창작할 수 있는 크리에이터, 1인 미디어 창작자의 방식의 틀이 바뀌었다.이미 기존의 지식 통용과 여론 조성, 카르텔 생성의 플랫폼이었던 신문, 방송, 언론, 학교, 기업 등은 미디어 환경의 변화로 인해 새로운 구조로 재편되고 있다. 기존의 교수, 전문가, 기자 등은 여론 선도층과 전문가 집단의 절대적인 권위와 영향력은 무뎌지고 있다. 즉 지금까지 성공을 위해 핵인싸가 되는 필수조건이었던 학벌, 학연, 지연 등의 옛 구조가1인 기업으로서 직접 콘텐츠를 제작, 유통하면서 충성도 높은 팔로워와 소셜미디어를 통해 소통하면서 전환되었으니 김종삼의 시대와는 접근 방식이 다르다.

행사를 기획하고 주관한 박시우 시인(왼쪽)과 이민호 시인(오른쪽)
행사를 기획하고 주관한 박시우 시인(왼쪽)과 이민호 시인(오른쪽)

김종삼의 시를 아끼는 이들이 만든 '종삼포럼'이 매년 행사를 기획하면서 지금까지 이어오고 내년 김종삼 시인 탄생 100주년을 맞아 인사동에서 칼리그라피전도 마련하는 등 다채로운 이벤트를 준비 중에 있다고 한다. 김종삼의 시집에서 이름을 딴 도서출판 <북 치는 소년>에서는 김종삼 문학을 집대성해서 김종삼의 시와 삶을 만날 수 있는 '김종상정집'이 출판되었다고 한다. 오늘 소개된 시만 오는 길에 다시 읽어봐도 '시인의 시인'으로 불리는 그에게 조금 다가간 거 같았다. 김종삼의 시에 매혹당한 이들인 '종삼종삼'모여 환담하고 전국으로 일본으로 발길을 향하고 음악을 듣는다. 그래서 시와 음악의 고독한 축제다....'고독'.... 어쩔 수 없는 소수를 위한 선택적 고독이지만 이런 훌륭한 시인이 좀 더 알려지고 많은 이들이 김종삼의 시를 접할 수 있도록 고독에서 벗어나게 해 보는 건 어떨까? 연신내역에서 한옥마을행 버스를 탔던 전형적인 우리네 아줌마들도 역시, 같은 언어로 말하고 생활하는 한민족 이웃이니 얼마든지 같이 즐길 수 있을 텐데......

도서출판 북치는소년에서 발간한 김종삼정집
도서출판 북치는소년에서 발간한 김종삼정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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