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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더 스키 홀릭 #4-일본 앗피 리조트

김산환 전문 기자
  • 입력 2020.01.19 10:31
  • 수정 2020.01.20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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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피린 파우더를 찾아서

 시속 40km에 육박하는 강풍을 뚫고 아오모리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적이 실망했다. 공항 주변의 풍경이 예전 겨울만 못해서다. 1월의 아오모리현은 세상이 온통 새하얗다. 그래야 한다. 하지만 20201월은 아니었다. 숲은 갈색의 맨몸을 그대로 드러냈고, 들판에 쌓인 눈도 빈약하기 짝이 없었다. 올 시즌은 포근한 날씨 탓에 북미권을 포함해 세계적으로 눈 부족 현상을 보이고 있다는데, 일본도 예외는 아닌 듯했다. 앞서 달리는 차량 바퀴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모습을 보며 이와테현 앗피 리조트로 향했다. 그곳도 여기처럼 녹은 눈으로 질척거릴까?

 

일본 인터스키의 대부 고다마상과의 인연

앗피 리조트와는 인연이 참 깊다. 아키타현 타자와코 스키장과 함께 일본에서 가장 많이 간 스키장 중에 하나다. 앗피 리조트만 예닐곱 번 간 듯하다. 이처럼 앗피 리조트와 깊은 인연을 맺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고다마 에이치 교장(이하 고다마상) 때문이다.

2005년 겨울 언론사 여행담당 기자들과 앗피 리조트를 찾은 적이 있다. 그 때 고다마상을 처음 만났다. 고다마상은 일본 인터스키(스키 기술 개발과 전파를 목적으로 한 세계 스키 지도자 단체)의 대부로 몇 년 전까지 앗피 리조트의 스키 스쿨을 총괄했던 분이다고다마상은 한국에서 귀한(?) 손님이 왔다면 우리와 함께 오후 내내 스키를 탔다. 당시만 해도 파우더 스키 경험이 많지 않아 스키를 탄다기보다 넘어지면서 내려간다고 할 정도로 요령부득으로 힘겨워했다. 그때 고다마상이 해준 한 마디가 기다려!’. 스키를 억지로 회전시키려 하지 말고 충분히 기다리라고 했다. 스키와 몸을 하나로 해서 꾹꾹 눌러주면 눈이 속도를 잡아주면서 자연스럽게 턴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그의 말대로 서둘러 턴을 하고 싶은 마음을 접고, 기마자세로 천천히 한 턴 한 턴을 하자 신기하게도 넘어지지 않고 내려갔다. 스키가 리바운스 되면서 눈에서 붕붕 뜨는 느낌도 느껴졌다. 이 날 받았던 강렬한 파우더 스키의 느낌이 지금도 선하다.

 

눈꽃이 만발한 앗피 리조트. 앗피는 일본에서도 손꼽는 스키장으로 일본 본섬(혼슈)의 북쪽 도호쿠 지방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눈꽃이 만발한 앗피 리조트. 앗피는 일본에서도 손꼽는 스키장으로 일본 본섬(혼슈)의 북쪽 도호쿠 지방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눈꽃이 만발한 마에모리 정상에서 스노우슈 트레킹을 즐기는 관광객들. 슬로프가 있다고 다 스키장이 아니다. 이처럼 겨울의 느낌이 나는 풍경이 함께 해야 진짜 스키장이다.
눈꽃이 만발한 마에모리 정상에서 스노우슈 트레킹을 즐기는 관광객들. 슬로프가 있다고 다 스키장이 아니다. 이처럼 겨울의 느낌이 나는 풍경이 함께 해야 진짜 스키장이다.

 

그날 이후로도 고다마상과 몇 번 인연이 있었다. 2007년 용평리조트에서 열린 세계인터스키대회 참가차 방문했을 때 잠시 만났고, 앗피에서도 두 번 더 함께 스키를 탔다. 어떤 경사에서도 완벽한 자세를 유지하며 스키를 타는 고다마상의 모습은 신의 경지에 오른 듯했다. 왜 그를 일본 인터스키의 대부라 부르는지 알 수 있었다. 고다마상은 함께 스키를 탄 뒤에는 늘 저녁을 함께 하며 스키 이야기를 들려줬다. 고다마상은 몇 년 전 현역에서 은퇴한 후 고향인 나가노현으로 돌아갔다. 그는 떠나고 없지만 앗피를 갈 때마다 눈 위에서 붕붕 떠다니며 스키를 타던 그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니시모리 정상에서 내려오는 비압설 슬로프. 앗피 리조트에서 눈이 가장 좋은 곳으로 파우더 마니아들의 집합소다.
니시모리 정상에서 내려오는 비압설 슬로프. 앗피 리조트에서 눈이 가장 좋은 곳으로 파우더 마니아들의 집합소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아스피린 파우더

버스가 도호쿠 고속도로를 벗어나 앗피고원으로 접어들자 풍경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해발 450m 위로 올라가자 나무에 제법 눈도 붙어 있다. 도로는 눈이 다져져 새하얗게 변했다. 그럼 그렇지! 눈 녹은 풍경에 우울하던 기분이 맑게 가셨다. 아마 지금쯤 해발 1,200m가 넘는 앗피 스키장 정상에는 여기보다 훨씬 더 상태 좋은 눈이 내리고 있을 것이다. 밀가루처럼 눈이 풀풀 날리는 건설까지는 아니겠지만 스키어를 포근하게 받아주는 파우더는 만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유난히 눈 가뭄이 심한 이번 시즌에는 적당한 정도의 눈만 있어도 감지덕지하다.

 

슬로프에 서 있는 자작나무가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빛난다. 앗피 리조트는 눈이 가벼운 아스피린 파우더로 소문났다.
슬로프에 서 있는 자작나무가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빛난다. 앗피 리조트는 눈이 가벼운 아스피린 파우더로 소문났다.

 

파우더 눈을 부르는 여러 가지 재미난 표현이 있다. 그 가운데 샴페인 파우더와 아스피린 파우더가 있다. 샴페인 파우더는 와인 잔에 샴페인을 따랐을 때 올라오는 기포처럼 눈이 가볍다는 뜻이다. 아스피린 파우더는 물에 아스피린을 떨어트렸을 때 생기는 기포를 말한다. 두 가지 모두 극상의 파우더에 보내는 찬사다. 이 가운데 앗피는 아스피린 파우더라는 말을 쓴다. 앗피 리조트 관계자의 말을 따르자면 눈을 내리는 구름은 동해에서 동쪽 방향으로 불어온다. 이 눈구름이 남북으로 길게 드리운 하치만타이산맥을 넘어오다 습설은 높은 산맥에 부딪쳐 서쪽에 내리고, 동쪽에 자리한 앗피 리조트에는 건설만 내린다. 그래서 설질이 최상이라는 것이다. 이 주장은 얼핏 일리가 있다. 그러나 어떤 눈이 내리는가보다는 그날의 날씨가 더 중요한 파우더 스키의 특성상 이런 분석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일본에서 가장 제설 능력이 뛰어난 스키장이 앗피라는 것이 좀 더 설득력이 있다.

 

니시모리 정상부의 숲에서 파우더를 즐기는 스노보더. 가벼운 눈이 밀가루처럼 날린다.
니시모리 정상부의 숲에서 파우더를 즐기는 스노보더. 가벼운 눈이 밀가루처럼 날린다.

 

일본의 작은 스키장들은 눈을 만들지 않는다. 제설기를 이용해 눈을 만들면 비용이 발생한다. 스키장 경비를 최소화하는 일본에서 제설기로 눈을 만들면 적자가 뻔하다. 그러니 하늘에서 내리는 눈에만 의존한다. 그야말로 천수답스키장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앗피 같은 대형 리조트는 다르다. 눈이 없는 최악의 경우에 대비해 제설장비를 갖추고 있다. 앗피는 일본 스키장 가운데서도 제설 능력이 톱을 달린다. 보통 스키 타기 가장 좋은 눈은 자연 눈과 인공눈이 반반씩 섞인 것이라 한다. 자연 눈이 주는 부드러움과 제동력, 인공눈이 주는 미끄러짐 등이 적당히 어울려 최적의 스키 환경을 제공한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앗피의 정설 능력 또한 칭찬받아 마땅하다. 이른 아침 앗피의 정설 된 슬로프는 정말 남 주기 아깝다. 혼자 독차지하고 싶을 만큼 설질이 좋다.

 

베이스에서 마에모리 정상까지 스키어를 실어나르는 곤돌라. 밑에는 비가 와도 해발 1,304m의 마에모리 정상은 눈이 올 때가 많다.
베이스에서 마에모리 정상까지 스키어를 실어나르는 곤돌라. 밑에는 비가 와도 해발 1,304m의 마에모리 정상은 눈이 올 때가 많다.

 

사이드 컨트리 투어로 찾아간 비밀의 숲

이번 투어는 앗피에서 이틀간 스키를 탄다. 첫날 오전은 앗피자연학교 사이토 교장과 함께 사이드 컨트리 투어를 나섰다. 앗피처럼 큰 스키장은 슬로프를 포함해서 스키를 탈 수 있는 공간이 구석구석 많다. 그러나 로컬이 아닌 이상 이런 공간을 찾아다니면서 스키를 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앗피자연학교 투어에 참가한다. 앗피자연학교는 앗피에서 진행하는 체험이나 백컨트리 스키 같은 익스트림한 투어를 전담한다. 앗피자연학교와는 이전에도 몇 번에 걸쳐 하치만타이 백컨트리 스키 투어를 다녀온 경험이 있다.

 

마에모리 정상에서 사이드 컨트리 투어를 위해 비압설 슬로프를 내려가고 있다.
마에모리 정상에서 사이드 컨트리 투어를 위해 비압설 슬로프를 내려가고 있다.

 

앗피자연학교에서 진행하는 사이드 컨트리 투어는 보통 스키장 왼쪽과 오른쪽 끝에서 진행한다. 스키장과 산의 경계가 되는 곳을 따라 일반 스키어는 접근할 수 없는 곳으로 안내한다. 마에모리(1304mm)나 니시모리(1328mm) 정상까지 리프트나 곤돌라를 이용하기 때문에 걷는 것은 없다. 다만, 스키장 왼쪽 세컨드 슬로프 너머의 숲에서 목장으로 나오는 사이드 컨트리의 경우 다시 리프트를 타기 위해 스키를 신고 걸어서 올라가기도 한다. 스키가 워킹 모드에 적합하지 않다면 목장 끝까지 내려간 뒤 차량을 이용해 리조트로 돌아온다.

앗피 사이드 컨트리 투어는 기본적으로 트리런(나무가 있는 숲에서 스키를 타는 것)이다. 중간에 두 곳 정도 시야가 트인 곳이 있지만 거의 대부분은 트리런 지역이다. 따라서 중상급 이상의 스키 실력이 있어야 투어에 참가할 수 있다. 그렇다고 위험한 것은 아니다. 스키를 타다 나무와 부딪치는 사고를 제외하고 큰 위험은 없다. 앞뒤로 앗피자연학교 강사들이 가이드를 해준다. 트리런은 늘 가슴을 뛰게 한다. 나무에 부딪칠지도 모른다는 적당한 두려움과 나무 사이를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희열이 동시에 느껴진다. 물론 턴에 실패해 눈에 쳐박히는 경우도 많다. 그런 때는 또 눈에서 뒹구는 즐거움이 있다.

 

앗피 사이드 컨트리 투어는 투어를 신청해야 참가할 수 있다. 스키장에서도 이렇게 깊은 숲에서 아무도 없는 곳에서 스키를 탈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다.
슬로프를 벗어나 숲으로 들자 앗피자연학교 사토 교장이 길을 찾고 있다. 올 시즌 일본도 눈 가뭄에 시달리고 있지만 이곳은 예외처럼 눈이 가득하다. 
앗피 사이드 컨트리 투어는 투어를 신청해야 참가할 수 있다. 스키장에서도 이렇게 깊은 숲에서 아무도 없는 곳에서 스키를 탈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다.
가이드 투어는 항상 가이드가 앞에 있어야 한다. 가이드가 정한 길과 조금만 어긋나도 다시 돌아서 올라오려면 '개고생'을 해야 한다. 
앗피 사이드 컨트리 투어는 투어를 신청해야 참가할 수 있다. 스키장에서도 이렇게 깊은 숲에서 아무도 없는 곳에서 스키를 탈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다.
사이드 컨트리 투어는 순서대로 한 명씩 다운힐을 한다. 그래야 사고없이 내려갈 수 있고, 만약 넘어지거나 다치더라라도 도와줄 수 있다.

 

사이드 컨트리 투어는 초반에는 괜찮았지만 고도가 낮아지면서 눈이 많이 무거웠다. 지난해도 오후에 이 코스를 탄 적이 있는데, 그때의 눈과는 많이 달랐다. 눈이 무겁다는 것은 턴을 만들기가 생각보다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음이 앞서면 항상 눈 속으로 고꾸라지게 되어 있다. 그래도 아무도 없는 숲에서 우리만의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역시 매력적이다.

 

사이드 컨트리 투어를 하며 숲을 빠져 나오면 목장 지대와 연결된다. 이곳도 과거에는 슬로프로 사용하던 곳이다. 
슬로프를 거슬러 오르기 위해 스키에 스킨을 부착하고 있다. 스키가 산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투어링 모드가 아니라면 이곳에서 목장을 따라 끝까지 내려간 뒤 차량을 이용해 앗피 리조트로 돌아온다. 
스키를 타고 내려오는 재미도 있지만 스키를 신고 산을 오르는 재미도 특별하다. 스키로 눈을 쓱쓱 밀며 걷다보면 어느새 정상에 닿는다. 

 

배반을 모르는 니시모리산

오후에는 니시모리산으로 갔다. 이미 정설 슬로프나 비압설 슬로프 모두 스키어들이 오전 동안 충분히 탔기 때문에 자연 모굴이 형성된 곳이 많다. 이때는 차라리 압설을 하지 않는 니시모리산으로 가는 게 이롭다. 운이 좋으면 숲에 아무도 먹지(?) 않은 파우더 눈이 남아 있을 지도 모른다. 특히, 앗피 리조트 두 개의 정상 가운데 하나 니시모리는 정설 슬로프가 없어 초보들은 잘 오지 않는다. 이곳은 또 앗피에서 가장 좋은 설질을 보인다. 다른 곳은 다 망가져도 이곳은 예외일 때가 많다. 며칠씩 눈이 내리지 않아도 숲으로 들어가면 부드러운 파우더가 있는 곳이 바로 니시모리다.

 

첫날 오후에 넘어간 니시모리 정상. 이곳에는 2인용 리프트 한 기만 운영되는데, 모든 슬로프가 비압설이라서 파우더 성애자들이 좋아한다. 
니시모리 정상에서 내려오는 이누와시 슬로프. 맞은편에 보이는 산이 곤돌라가 운행하는 마에모리 정상이다.
이누와시 슬로프 가장자리에 남아 있는 파우더를 찾아 다니는 파우더 헌터들. 늦은 오후였지만 그래도 싱싱한 파우더가 남아 있었다.  

 

니시모리 정상에서 내려오는 비압설 슬로프는 예상했던 대로다. 자연적인 모굴이 형성되어 허벅지가 터질 듯이 힘들다. 하지만 슬로프를 벗어나 숲으로 들자 상황이 달라졌다. 숲에는 아직도 싱싱한 파우더가 남아 있었다. 눈이 부서지지 않은 것은 물론, 설질도 아주 좋아서 입이 귀에 걸리게 만들었다. 역시 니시모리산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다만, 시간이 아쉬웠다. 오전 사이드 컨트리 투어에서 시간을 많이 허비한 탓에 시간이 부족했다. 니시모리산에서 세 번 내려오자 리프트가 멈춰 섰다. 아쉽지만 오늘은 이렇게 돌아설 수밖에. 특히, 며칠 동안 폭우에 가깝게 비가 내렸던 것을 생각하면 이렇게 좋은 눈을 만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다.

니시모리 정상은 모든 슬로프가 중급 이상의 비압설로 운영하기 때문에 초보들의 접근이 어렵다. 그러나 중상급 스키어에게는 파우더와 자연 모굴 스키의 재미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니시모리 정상에서 리프트 아래로 난 야마가라 슬로프. 니시모리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파우더 슬로프다. 
마에모리 정상에서 베이스까지 이어진 야마바토 슬로프 중간에서 잠시 쉬고 있는 보더들. 초보자 코스인 야마바토는 길이가 무려 5.5km에 이른다. 

 

정설의 끝판왕 앗피의 슬로프를 달리다

둘째 날은 슬로프를 달려보기로 했다. 사실, 앗피에 오면 늘 파우더만 찾아다녔다. 파우더가 주는 특별한 매력에 빠진 터라 다른 것은 눈에 잘 안 들어왔다. 정상에서 베이스까지 비행기 활주로처럼 쭉쭉 뻗은 앗피의 슬로프는 그저 파우더를 찾아 잠시 스쳐 가는 정도였다. 그러다보니 일본 최고의 정설을 자랑한다는 앗피의 슬로프를 제대로 타보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작정하고 슬로프를 제대로 즐겨보기로 했다. 특히, 며칠간 제대로 된 눈이 내리지 않은 날씨도 슬로프를 택하게 했다. 파우더는 매일 새로운 눈이 최소 10cm 이상 내려줘야 회복된다. 그렇지 않으면 자연 모굴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눈이 얼면서 빛 좋은 개살구가 되는 경우가 있다. 보기에는 그럴듯하지만 막상 타보면 딱딱해서 허벅지로 전해오는 충격이 생각보다 크다. 리프트가 운행을 시작하는 오전 830분부터 땡스키에 나섰다. 곱게 정설 된 최상의 슬로프를 누리려면 누구보다 앞서서 타야 하기 때문에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베이스에서 리프트 두 개를 갈아타고 가케스 코스로 갔다. 마에모리 정상에서 오른쪽으로 흘러내린 이 슬로프 상단부는 최상급으로 가파르지만 중단부터는 완만한 경사여서 마음껏 속도를 낼 수 있다. 리프트를 갈아 타는 동안 햇살이 숲을 넘어 왔다. 파란 하늘 아래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는 나무와 슬로프! 파우더 데이가 아닌 날은 이렇게 좋은 경치를 볼 수 있어 좋다.

 

 

맑개 개인 앗피 리조트의 아침. 앗피의 겨울은 대부분 흐리고 눈 오는 날이 많다. 이처럼 맑은 날은 설경을 감상하며 스키를 타는 재미가 있다. 
햇살이 비껴드는 한산한 슬로프. 보더 혼자 슬로프를 독차지하며 즐기고 있다. 

 

역시 정설 슬로프는 베는 맛이 있다. 파우더용 허리 97mm의 팻스키를 타지만 그래도 스키팁이 설면을 파고들며 돌아가는 맛이 있다. 얼음처럼 딱딱한 슬로프에서는 절대로 느낄 수 없는 가르는 맛이 느껴진다. 한 사람씩 순서를 정해 슬로프를 통째로 사용하면서 롱턴을 즐기기도 하고, 슬로프를 싹뚝싹뚝 잘라가면서 숏턴도 해본다. 무엇을 하더라도 슬로프가 스키를 받아주는 느낌이다. 사선으로 빗겨드는 햇살은 포근하고, 바람 한 점 없다. 입에서 절로 탄성이 터진다.

 

엉덩이와 어깨가 슬로프에 닿을 듯이 자세를 낮춰 질주하는 알파인 보더. 아침 일찍 올라가면 정설된 슬로프를 독차지하며 원없이 질주하는 즐거움이 있다. 
가케스 슬로프의 중단부. 멀리 앗피 리조트의 상징인 노란색 호텔이 보인다. 

 

몇 번을 그렇게 시원스럽게 슬로프를 누비다가 자일러로 옮겨갔다. 햇살이 좀 더 드는 곳을 찾아 나섰다. 앗피의 대표 슬로프는 마에모리 정상에서 호텔 베이스까지 곧장 내려가는 하야부사와 자일러 롱코스다. 두 코스 모두 정상부는 최상급으로 절벽 같은 경사를 자랑한다. 하지만 중반부에 접어들면 경사가 완만해지면서 자신 있게 스키를 타게 만든다. 이 가운데 자일러 롱코스가 좀 더 자연미가 있다. 하야부사는 곤돌라가 머리 위로 지나가고, 슬로프 정상부 가장자리는 바람을 막기 위해 방풍벽을 세워놓아서 자연미가 조금 덜하다. 반면 자일러 롱코스는 정상부에서 내려서기만 하면 슬로프와 숲만 있다. 이 슬로프에 햇살이 넘치니 이 또한 장관이다. 앗피의 재발견이라고나 할까? 슬로프만 타고 놀아도 이리 좋은데, 억지로 파우더만 고집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 것이다.

 

곤돌라가 도착하는 마에모리 정상에서 곧장 시작하는 자일러 롱 코스. 베이스까지 4km에 이르는 이 코스는 앗피를 대표하는 슬로프 가운데 하나로 늦은 봄까지 연다. 
파란 하늘 아래 펼쳐진 새하얀 눈꽃 속에서 담소를 나누는 스키어와 보더. 이런 날은 무엇을 해도 즐겁다.
마에모리 정상에서 시작하는 슬로프 가운데 가장 왼쪽에 있는 세컨드 앗피 세컨드 런 슬로프. 슬로프 아래 광활하게 펼쳐진 센세컨드 베이스가 인상적이다. 

 

앗피에서 주변 스키장으로 놀러갈까?

슬로프만 타고 놀았는데도 반나절이 후딱 지나갔다. 이제 짐을 꾸려 핫코다로 이동해야 한다. 최근 앗피 리조트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스키장에 트리런과 파우더존을 대폭 확대한 것을 필두로 앗피 리조트 주변의 스키장도 즐길 수 있는 원데이 투어도 운영한다. 하치만타이 국정공원에 있는 시모쿠라나 이와테산 너머의 게토, 시즈쿠이시, 아오모리현의 핫코다 등 주변의 스키장도 함께 즐길 수 있다. 한 번의 스키 투어로 두 곳의 스키장을 타보고 싶은 스키어들의 욕망을 충족시켜주기 위함이다. 이 가운데 앗피에서 30분 거리의 시모쿠라 스키장은 꽤나 많은 스키어들이 찾고 있다. 시모쿠라를 제외한 다른 스키장은 아직까지 이용자가 많지는 않지만 입소문만 나면 상황은 달라질지도 모른다.

 

슬로프에서 바라본 세컨드 베이스의 그림 같은 풍경. 마치 한 폭의 풍경화를 보는 것처럼 아름답다. 

 

여행정보

  • 리조트는 일본 본섬(혼슈)의 북쪽 도호쿠 지방에 있다. 리조트로 가려면 아오모리나 센다이 공항을 이용한다. 아오모리 공항에서는 2시간, 센다이 공항에서는 3시간 30분쯤 걸린다. 아오모리 공항이 좀 더 가깝지만 센다이는 항공편이 매일 있어 스케줄 잡기가 편리하다. 리조트는 보통 45일 일정으로 스키 투어를 가는 경우가 많다. 3일은 머물러야 하루쯤 파우더 데이를 만날 수 있다. 또 평균 거리 2.1km에 이르는 긴 슬로프는 최소 이틀은 타야 섭렵해볼 수 있다. 1일 투숙 인원이 7,000여 명에 이를 만큼 규모가 큰 리조트라 레스토랑을 포함한 편의시설이 완벽하다. 뷔페 포함 일식, 한식, 중식, 양식 등 13개에 이르는 레스토랑은 끼니마다 골라먹는 재미가 있다. 물론, 스키를 타다가 점심을 먹는 푸드 코트도 훌륭하다. 최근에는 시라카바노유 노천탕도 새롭게 오픈해 스키를 타지 않는 사람도 온천욕을 하며 휴식할 수 있게 했다. 일본스키닷컴(www.ilbonski.com)에서 다양한 스키 투어 상품을 판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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