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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159] 이 한 권의 책: 유윤종의 '클래식, 비밀과 거짓말'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0.01.17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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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음악은 한정된 수의 관객과 교감하는 소수 취향의 예술이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클래식 음악의 진가와 깊은 세계를 대중들에게 알리고 소개하기 위한 음악인들의 노력은 눈물겹다. 최대한 친절히 설명하고 맞춰주면서 클래식의 재미와 감동을 누리게 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시중에 가이드북, 입문서, 음악 감상 안내 등등의 길라잡이 서적들이 넘치는 판국에 유윤종의 신간 <클래식, 비밀과 거짓말>(을유문화사)은 커다란 전체의 일원을 뛰어넘어 예외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유윤종 저 / 클래식, 비밀과 거짓말/ 을유문화사
유윤종 저 / 클래식, 비밀과 거짓말/ 을유문화사

일단 필자는 클래식 대중화란 단어에 지극히 회의적이다. 클래식 음악이란 범주가 워낙 넓기 때문에 그 안에 귀에 익은 작은 소품, 알려진 노래,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같이 전체 4악장은 다 들어보지 않았어도 몇 소절 정도는 아는 불세출의 명곡들이 있다. 조금이라도 클래식 음악을 접하게 해서 클래식 음악의 심원한 세계에 발 들이게 하려는 노력은 참으로 가상하지만 음악에 대한 경의로서 이루어져야지 상업적인 논리로서의 클래식 음악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돈을 벌기 위한 수단, 조회수를 늘이기 위한 시도로서는 실패의 첩경이다. 서점에 한번 나가보라! 얼마나 많은 클래식 감상 안내류의 책들이 첩첩으로 쌓여져 있는지.... 유튜브에 검색해보라! 얼마나 많은 기초부터 말초적인 것들까지 클래식 관련 콘텐츠들이 넘쳐나는지... 남들과의 차별성을 띄기 위해 무리하고 과도한 시도를 하면 할수록 본질과는 멀어지게 되고 그래서 그런 손가락 까닥까닥으로 가볍게 수고 없이 얻어진 것들이 어떻게 진정 본인의 것들로 체화되겠는가! 그건 그대로 소비될 뿐이다. 남는 게 없다... 감동이 없는 클래식이라.... 판매의 이미지를 위해 스타의 미소를 띠고 만들어진 이미지의 '선글라스를 쓴 브루크너 교향곡' 모습이요, 별 볼일 없는 실력의 피아니스트가 가식적인 미소를 띠면서 남이 써준 원고를 읽는 모습에 열광하는 집단 체면의 모습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소수의 전문가들, 애호가들 사이에 갇혀 있는 클래식 음악에 대해 신념을 가지고 전도의 마음으로 진지하게 접근하는 선각자의 펜이 절실히 요구되는 와중 눈에 들어온 책이 유윤종의 <클래식, 비밀과 거짓말>이다.

유윤종 동아일보 기자, 사진 출처: 유윤종 페이스북
유윤종 동아일보 기자, 사진 출처: 유윤종 페이스북

연세대학교 독어독문학과, 동 대학원을 졸업한 저자인 유윤종은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소식지 '월간 SPO' 편집장을 역임하고 현재 동아일보 기자로 재직 중이다. 동아일보에 '올 댓 클래식', '클래식 깊이 듣기' 등의 칼럼을 연재했으며 음악 저널에 음반 리뷰와 공연평을 기고했다. 그래서 그런지 클래식 길라잡이란 명목으로 마구잡이 발간된 음악 애호가, 칼럼니스트들의 가벼운 저서에 비해 깊이와 진중함이 다르다. 음악학자 못지않은 치밀한 연구와 지식의 깊이, 방대한 자료와 데이터수집이 여타 다른 가십 위주의 클래식 가이드북과는 차원이 다르다. 알지 못했던 새로운 야사, 음악가와 작품에 얽힌 스토리를 알아갈 때는 정말 비밀의 문을 여는 거 같이 숨이 막히면서 흥미진진하다.

유윤종의 클래식, 비밀과 거짓말은 비밀의 문을 열면서 몰랐던 클래식 음악의 숨겨진 이야기들을 알아가는 숨 막히는 어드벤처다.
유윤종의 클래식, 비밀과 거짓말은 비밀의 문을 열면서 몰랐던 클래식 음악의 숨겨진 이야기들을 알아가는 숨 막히는 어드벤처다.

총 3개의 챕터 20개의 꼭지로 되어 있는 책을 펼치자마자 차이코프스키의 죽음을 둘러싼 논쟁을 파헤친다. 지금까지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알 수 있던 차이코프스키의 죽음에 관련된 설화들을 그저 짜집기 한 게 아니라 논문 수준으로 들어가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6번 1악장의 2주제 악보까지 분석한다. 음악적 텍스트를 죽음의 암시와도 결부시킨다. 콜레라로 인한 자살 여부와 상관없이 우리는 진실에 도달하게 된다. 결국 호사가들의 입방아를 뛰어넘어 소리 너머의 음악에 도달하게 된다. '비창' 교향곡이 차이코프스키의 염세적 세계관과 개인적인 슬픔을 집약한 음악적 유서로 오늘날 수많은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인류에게 치유의 손길을 건넨다는, 클래식 음악의 진정한 존재 이유와 음악을 들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 주니 해당 문구를 읽으면서 숙연한 감동이 밀려왔다. 차이코프스키 음반에 손에 가게 만든다. 참고로 유윤종이 제시한 선율 말고 리스트 피아노곡집 <순례의 해>의 제1권 스위스 편 6번의 '오베르만의 골짜기'도 하강선율에서 오는 비슷한 비통과 불길함, 체념의 정감이 비슷하니 하나 첨부한다. 더군다나 졸탄 코르치스가 오케스트라로 편곡한 버전이니 차이코프스키의 비창 교향곡과 나란히 들어 보길 권한다.

비브라토, 음악 속의 새소리는 참신하고 마지막의 스메타나의 <몰다우> 선율과 이스라엘 국가와의 유사성을 파헤치면서 리처드 도킨스의 밈까지 언급된다. 정보의 바다다. 어쩜 이런 걸까지 치열하게 파헤치고 연구했을까 경탄이 절로 나오고 궁금증을 증폭시킨다. 책에서 언급한 모든 음악들은 듣고 싶게 만든다. 저자가 들어보고 감동받은 작품의 애정이 물씬 배어난다. 역사적 맥락과 강한 호기심으로 작가&기자 정신이 투철하게 배어 있는 책이다. 이 책을 읽을 때 필수 지참품이 있다. 바로 유튜브다. 방대한 음악 레퍼토리를 저자가 설명해주고 알려주는데 같이 들어보자. 글로 풀어쓴다고 해도 음악은 결국 듣는 예술. 듣지 않는다면 아무리 유려한 문장도, 청산유수의 달변도 무용지물이다. 천 마디 말보다 한번 듣는 게 정도(正道)다. 들어보고 읽어보고 또 비교해서 들어보자. 이 책을 통해 몰랐던 비하인드스토리와 곡들도 알게 되면서 광대한 음악의 세계에 더욱 빠지게 되었다. 아직도 모르는 사건과 이야기가 많다는 깨달음과 함께 알아야 할 세계가 끝없이 펼쳐졌다는 기쁨과 안도를 함께 느낀다. 나부터 반성했다. 음악가라고, 전문가라고 마치 다 아는 척하면서 뻐기고 다녔던 내 모습을....

각 부분별로 주석을 달고 평을 쓸게 넘쳐서 한 번의 소개로 안될 거 같다. 오늘의 기사는 이쯤 마무리하고 독자들의 요구가 있다면 다음에는 개개의 항목별로 느낀 바를 적어보겠다. 지금도 필자의 작업실 한편에는 책 254페이지에서 다룬 파가니니의 <로시니, 모세 주제에 의한 변주곡>이 은은하게 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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