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성 수필 [ 27 ] 덕재 6 / 윤 씨는 뱀을 보면 기어코 잡았다
김홍성 수필 [ 27 ] 덕재 6 / 윤 씨는 뱀을 보면 기어코 잡았다
  • 김홍성 시인
    김홍성 시인 ktmwind@naver.com
  • 승인 2020.01.17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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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격장에는 뱀도 많았다. 윤 씨에 의하면, 뱀은 화약 냄새를 좋아하여 사격장에 모여 든다는 것이었다. 능사, 화사, 구렁이, 살모사 ……. 윤 씨는 뱀을 보면 기어코 잡았다. 소를 몰고 걷는 중에도 그는 어느 틈에 잡았는지도 모르게 뱀을 잡아서 껍질을 벗기고 있었다.
ⓒ김홍성 

나는 휴전 직후에 태어났지만 전 씨는 전쟁 나던 해에 이미 두 어 살 쯤 되었다. 윤 씨는 전 씨보다 서너 살 많았고, 박 씨는 윤 씨보다 또 서 너 살 많았다. 그러나 전 씨, 박 씨, 윤 씨 세 사람은 객지에서 만난 처지라서 그런지 서로 성에다 씨를 붙이며 말을 높였다.

나는 전 씨를 형이라 불렀고, 다른 분들에게는 아저씨라고 불렀다. 전 씨는 고향이 목장에서 멀지 않은 삼팔선 부근이지만 박 씨는 휴전선 북쪽인 평강이 고향이고 윤 씨는 고향을 몰랐다. 윤 씨는 고향은 물론 부모에 관해서도 말하지 않았다. 그것은 일부러 감춘 것이 아니라 기억이 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군 장교에 관한 이야기는 여러 번 들려주었다.

미군 장교가 고아원의 아이들 중에서 윤 씨만 특별히 귀여워 한 이유에 대해서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든 미군 장교는 고아원에 찾아 와서 윤 씨만을 데리고 나가 부산의 어시장을 돌아다니며 맛있는 것도 사주고 부대의 피엑스에도 데리고 가서 야구 글러브와 야구 모자와 야구공을 사주기도 했다.

어린 윤 씨가 다리가 아프다고 하면 업어 주기도 했고, 가죽점퍼 냄새가 고소하게 나는 넓은 등에 업혀서 깜박 잠이 들었다가 깨보니 고아원 원장실이었던 기억도 있다고 했다. 나는 윤 씨가 비록 고아였지만 당시로서는 부잣집 아이들도 못 가져본 것들을 한 때나마 가져봤음이 부러웠다.

윤 씨가 잊지 못하는 장면 중에는 눈물 나는 장면도 있다. 그 날은 어린 윤 씨가 미군 장교와 헤어지던 날이었다. 윤 씨에 의하면, 미군 장교는 자기를 그 안에 넣어서 미국으로 데려 가려고 커다란 나무 상자까지 짜서 부두로 가져 왔으나 무슨 문제가 생기는 바람에 윤 씨는 나무 상자와 함께 남겨졌다. 그 때 윤 씨는 카우보이모자에 카우보이 복장에 쌍권총까지 차고서 그 나무 상자 위에 서서 발을 동동 구르며 엉엉 울었다.

미군 장교는 다시 와서 데려 가겠다고 약속했으나 돌아오지 않았고, 미군 장교가 나무 상자 가득히 장만해 준 모든 선물은 고아원 원장에게 빼앗겼다고 했다. 윤 씨에 의하면, 고아원 원장은 그 미군 장교로부터 가죽점퍼도 '빼앗아'입었다. 예전에 미군 장교가 입고 다닐 때는 그렇게도 고소한 냄새가 나던 가죽점퍼가 주인이 바뀐 후로는 고약한 냄새를 풍기더라고도 했다.

사격장에는 뱀도 많았다. 윤 씨에 의하면, 뱀은 화약 냄새를 좋아하여 사격장에 모여 든다는 것이었다. 능사, 화사, 구렁이, 살모사 ……. 윤 씨는 뱀을 보면 기어코 잡았다. 소를 몰고 걷는 중에도 그는 어느 틈에 잡았는지도 모르게 뱀을 잡아서 껍질을 벗기고 있었다. 화사(꽃뱀)는 알불에 얹어 노릇하게 구워서 먹었고, 살모사는 대가리만 떼어내고 날로 씹었다.

살모사는 워낙 독한 짐승이어서 껍질을 벗기고 창자를 훑어내고 대가리를 떼어 낸 후에도 세차게 요동을 쳤다. 몸통을 씹는 중에도 요동을 치면서 윤 씨의 뺨에 피를 묻히기도 했다. 어느 날은 땅바닥으로 떼어 던진 살모사 대가리의 반짝반짝 빛나는 작은 눈이 자기 몸통을 씹는 윤 씨를 쏘아보고 있기도 했다.

구렁이 종류는 살 속에 보이지 않는 사충(뱀에 기생하는 벌레)이 있고 비린내가 나기 때문에 반드시 푹 과서 먹어야 한다고 했다. 윤 씨는 구렁이를 잡으면 땅꾼처럼 목에 걸고 다니다가 점심밥을 먹고 난 항고에다 푹 고아서 국물만 마시고 찌꺼기는 바위에다 털어버리곤 했는데, 찌꺼기를 버린 자리에는 어느 틈엔가 불개미가 새빨갛게 몰려 있곤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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