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김홍성 수필 [ 26 ] 덕재 5 / 김 씨와 닭다리와 표범

김홍성 시인
  • 입력 2020.01.16 07:50
  • 수정 2020.01.16 12:0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살쾡이는 아무리 커봤자 진도개만하며, 사람에게 모래를 끼얹기는커녕 인기척이 나면 먼저 달아나는 짐승이라고 했다. 나는 우리 소들을 울타리 밖 안개 속에서 쫓아다니던 짐승이 바로 그 개호주, 즉 표범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포천시 관인면 중리 소재 평화나무 농장 우사에서 2019년 촬영했다. 연재 중인 수필은 역시 포천 땅인 여우고개 북쪽 덕재 사격장에서 1972년에 한우를 방목했던 나날을 더듬으며 썼다. 50 년이 지났지만 한우들의 모습은 다르지 않다.
포천시 관인면 중리 소재 평화나무 농장 우사에서 2019년 촬영했다. 연재 중인 수필은 역시 포천 땅인 여우고개 북쪽 덕재 사격장에서 1972년에 한우를 방목했던 나날을 더듬으며 썼다. 50 년이 지났지만 한우들의 모습은 다르지 않다.

그로부터 얼마 후 새로 온 목동 김 씨가 면소재지의 처가에 다녀오다가 큰 짐승을 만나 혼비백산한 일이 벌어졌다. 그 때 나는 서울에 볼 일이 있었고, 볼 일을 보고 며칠 놀다가 돌아 왔을 때는 김 씨가 목장 일을 그만 두고 하산해 버렸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당사자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가 아니라 주로 형에게서 전해들은 이야기이다. 내 기억의 의심스러운 대목은 형에게 물어 보충하면 되는데, 형은 오래 전에 고인이 되었으니 형수에게 물어야 한다. 40년 전 일이지만 형수도 그 때 같이 살았으니 분명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김 씨는 닭의 두 다리를 새끼줄로 묶어 자전거 핸들에 꿰고서 여우 고개를 향해 올라오는 중이었다. 장모가 바빠서 닭 잡아 줄 사이가 없으니 목장에 가서 삶아 먹으라고 준 생닭이었다. 그는 급히 마신 술에 얼큰하게 취해 있었고, 날은 슬슬 어두워지는 중이었다. 고개 밑에서 이미 다리 힘이 빠진 그는 자전거 핸들을 양손으로 잡고 걸으면서 산굽이를 돌고 또 도는 중이었는데 어느 산굽이 위에서 모래가 날아왔다.

처음 그랬을 때 그는 그냥 토끼 같은 작은 짐승이 지나가며 튀긴 모래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다음 산굽이에서 또 그런 일이 일어났다. 이상하게 생각하고 위를 쳐다보니 눈에 불을 켠 커다란 짐승이 버티고 서 있었다. 순간 소름이 오싹 끼쳤지만 못 본 체하고 가던 길을 계속 갔는데 다음 구비에서 또 모래를 끼얹었다. 다시 위를 쳐다보니 눈에 자동차 헤드라이트 같은 불을 켠 아까의 그 커다란 짐승이 훨씬 가까운 데서 노려보고 있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자전거에서 닭만 떼어들고 부리나케 뛰었다. 그는 '호랭이다! 호랭이다!' 또는 '사람 살려! 사람 살려!'라고 소리치며 뛰었던 기억 밖에 안 난다고 했다. 형에 의하면, 그는 목장에 도착하여 형을 보자마자 호! ! ! 이렇게 세 마디 말만 간신히 하고는 맥없이 주저앉았는데 손에는 몸통이 떨어진 닭발을 꼭 잡고 있었다.

형은 닭다리부터 빼앗아 팽개치고 나서 업어다가 방에 뉘였다. 온 몸이 물에 빠진 사람처럼 젖어 있었고 열이 펄펄 나더라고 했다. 찬물을 떠다 먹이고, 팔다리를 주무르고, 머리에 찬물 수건을 놓고 하면서 한참 부산을 떨었더니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목동 김 씨는 그날부터 내리 사흘을 심한 몸살 앓듯이 앓고 나더니 무슨 생각에선지 일을 그만 두겠다 하고 보따리를 쌌다고 했다.

마을 노인들에 의하면, 사람에게 모래를 끼얹는 짐승은 호랑이는 아니더라도 개호주 정도는 된다고 했다. 살쾡이는 아무리 커봤자 진도개만하며, 사람에게 모래를 끼얹기는커녕 인기척이 나면 먼저 달아나는 짐승이라고 했다. 나는 우리 소들을 울타리 밖 안개 속에서 쫓아다니던 짐승이 바로 그 개호주, 즉 표범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을 노인들은 또, 여우 고개 부근에 있던 서낭당에서 해마다 산신제를 지냈는데 새마을 운동을 하느라고 서낭당을 헐고 산신제를 지내지 않게 되자 산신령이 노해서 개호주를 보낸 것이라고도 했다. 새마을 운동이란, 1970년 초 당시 대통령 박정희의 특별 지시로 이른바 '농촌 현대화'를 위해 범국가적으로 시행되고 있던 운동이다. 새마을 운동의 구체적인 내용은 박정희가 직접 만든 새마을 노래 가사에도 들어 있듯이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고' 하는 운동이었다.

잘 살아 보자는 건 좋은 일이지만 마을 동구의 오래된 느티나무들이 잘려 나가고, 서낭당 같은 사당들도 미신타파의 일환으로 없애 버리는 일도 범국가적 새마을 운동의 일환이었다. 이런 일은 휴전 되면서 남한 땅이 된 삼팔선 이북 지역처럼 토착민은 적고 이주민이 다수인 지역에서 특히 심했다. 여우 고개는 바로 그런 지역이었다. 게다가 군 작전 지역이기도 했으니 서낭당이 남아날 수가 없었다. <계속> 

저작권자 © 미디어피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