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용원 음악통신 153] Critique: 2020 서울시향 카바코스의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성용원 음악통신 153] Critique: 2020 서울시향 카바코스의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 성용원 작곡가
    성용원 작곡가 klingsol@hanmail.net
  • 승인 2020.01.10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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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 9일 목요일 오후 8시 롯데콘서트홀

TV연예프로나 토크쇼에서 주체할 수 없는 타고난 개그본능을 통해 좌중을 압도하고 순간적인 재치를 발휘하는 패널들이 있다. 무리 속에 있어도 군계일학이요, 낭중지추다. 재치 있는 애드리브와 유머는 대화나 토론, 회의 등 사람들과 관계에서 적절한 순간에 터지면 윤활유가 되지만 너무 과하면 주변 사람과의 조화가 깨지고 혼자만 튀는 역효과가 나기도 한다.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한 바이올리니스트 레오니다스 카바코스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한 바이올리니스트 레오니다스 카바코스

일반적인 팀파니보다 훨씬 작은 크기의 캐틀 드럼과도 같은 팀파니를 객석에서 바라보았을 때 우측, 콘트라베이스 옆에 배치하였다. 트럼펫은 일부로 반대편에 위치시키면서 과도한 사운드를 절제하면서 마치 베토벤 시대의 고음악(古音樂), 원전연주를 표방한 조형미를 선보였다.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에서의 팀파니의 비중과 역할을 고려한 구도였다.

카바코스는 베토벤 안에서는 진지하고 영적이었다. 천천히, 고요한 아름다움과 숭고한 정신을 독주자지만 오케스트라 안에 용해되면서 구현하였다. 여타 바이올린 협주곡과 다른 베토벤만의 지극히 '온화함'을 비슷하지만 긴 구간들을 내적으로 연결하는 복잡한 과정들을 거치면서 더욱 진중하게 풀어냈다. 베토벤이 아니라 브루크너와 같은 장대함이었다. 그런데 카덴차만 나오면 베토벤이 아니라 카바코스로 변모했다. 서울시향과 크리스티안 테츨레프 때도 그렇듯이 이번에도 1악장 카덴차에 팀파니가 등장했다. 유행인가? 아님 서술한 팀파니의 특색을 더욱 부가시키기 위한 연출인가? 카바코스가 직접 쓴 카덴차는 베토벤이 남긴 피아노 버전의 카덴차가 가지고 있은 활력을 바이올린으로 표출시킨 시도였는데 '카덴차 본능'이라고 할까 이때는 오케스트라 안의 바이올린이 아닌 독주자로서 이 자신의 끼가 발산되었다. 카바코스는 오케스트라의 합주 시 객석을 바라보지 않고 등을 돌려 마치 지휘자 같이 오케스트라를 향한다. 카덴차 시는? 정반대다.

하이든과 드보르작의 퐁당퐁당, 이도저도 아닌 출장뷔페
하이든과 드보르작의 퐁당퐁당, 이도저도 아닌 출장뷔페

음악회 프로그램을 짤 때는 현시대의 미적 개념과 트렌드를 반영한다. 서로 다른 작품을 아무렇게나 모아놓은 백화점 식의 종합선물세트가 아니다. 그래서 열린 음악회나, 무슨 무슨 류의 제목이 붙은 대중음악회에서는 내용을 고려하는 게 아닌 청중들의 요구와 반응, '콘셉트'가 관건이 된다. 감상의 심리적인 제약과 체험을 우선시한다면 고전파, 낭만파 등의 시대를 기준으로 프로그램을 짜든지, 작곡가 별로 하던지, 사조, 스타일 별로 모으든가 아님 서로 대척점에 있는 것들을 분리하던지, 일관적으로 통일된 프로그램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음악가가 음악을 실현하려는 요구와 의지가 강할수록 참신함이 과도해진다. 과유불급이다. 드보르자크와 하이든을 왔다 갔다 하는 건 이도 저도 아닌, 맛집에 비유하면 정찬에 여러 음식이 들쑥날쑥 서빙돼서 어느 요리 하나 제대로 음미하고 참되게 맛보지도 못하고 입맛만 배린 격이었다. 서울시향이라는 양질의 연주자(재료)들의 가능성과 연주력을 요리사가 마구마구 칼질을 하고 찔러대는 바람에 중식 먹다, 일식 먹다 다시 돈가스 먹다 하는 그런 이류 출장뷔페가 되어버린 것이다. 도대체 편성도, 시대도, 스타일도, 사조도, 음악적 맥락도 맞지 않는 하이든과 드보르자크를 섞어서 교차 연주를 하다니... 이건 나중에 쇼스타코비치의 <재즈 모음곡>이나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 발레모음곡에도 중간중간 전혀 다른 성격의 하이든이나 모차르트 또는 바흐의 작품을 끼워 넣겠다는 시도와 별반 다르지 않다. 신년음악회의 분위기를 내는 것도 아니고 뭔가 드보르자크에 빠지려고 하면 파파 하이든의 푸근한 유머와 정갈함이 집시음악, 보헤미안의 정서와 상충된다. 막걸리 마시다가 와인 마시는 격이다. 둘 다 제대로 즐기겠는가?

오케스트라 단원들도 민망하다. 하이든 때문에 8명이나 기립된 콘트라베이스 주자들 중 2명 빼고 6명은 손을 놓고 그저 관객이 되어 버렸고 타악기 주자들을 비롯 드보르자크를 위해 모인 풀 편성의 단원들 70%는 하이든이 연주되면 그저 자리만 채우고 있어야 했다. 물론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 2악장에도 플루트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건 작곡가의 의도다. 한 작품 안에서, 악장에 따라 다양한 악기 편성이 있고 말러 같은 교향곡에서는 1시간을 악단 속에 앉아 있다 출현하는 악기도 있다. 한 작품 안에서의 휴지(休地)는 나름 타당한 연유가 있지만 이번의 비효율성은 왜 굳이 택했을까? 짬뽕 프로그램은 서울시향 아니더라도 널렸다. 굳이 서울시향의 뛰어난 연주력을 이런 식으로 소모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드보르자크의 슬라브 무곡 op.72-2의 감흥이 체감되고 op.72-7이 흥겹고 정열적인 춤곡이 앞의 하이든 4악장과 전혀 맞지 않아 연계성이 하나도 없어 느닷없고 생뚱맞았다.

중요한 건 프로그램을 어떻게 구성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음악을 하느냐다. 진정으로 위대한 작품들을 만족스럽고 생동감 넘치게 연주하는 것이 최고의 프로그램이다. 더군다나 티에리 피셔는 작년만 하더라도 생상스의 <오르간 교향곡>, 프로코피예프의 <로미오와 줄리엣> 모음곡 등 놀랍고도 응집력 뛰어난 연주를 보여주었으며 이날도 악곡 개개별로는 훌륭했다. 클래식 음악의 명곡들이 너무나 잦은 연주를 통해 '닳고 닳은'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하려는 노력이 이벤트가 되면 안 된다.

2020년 서울시향의 첫 정기연주회 포스터
2020년 서울시향의 첫 정기연주회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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