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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152] 이 한 권의 책: '혼자 보는 그림'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0.01.09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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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박스 신간, 김한들 저 '혼자 보는 그림' 서평

제일 처음에는 큐레이터로서의 작가의 체험이나 에피소드를 엮은 에세이 또는 여러 미술작품들을 보고 느낀 감정이나 정서를 공유하는 에세이로 생각했다. 읽다 보니 작가의 성별과 나이가 궁금해졌다. 그건 마찬가지로 어린 나이인 고등학교 1학생 재학 시 독일로 유학 간 필자의 삶과 여러 방면에서 겹치기 때문이다. 조기 유학생으로의 외국 생활의 외로움을 뼈저리게 겪어 현재는 여러모로 한국이 썩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래도 떠날 수 없는 조국과의 밀착성에 기반한다. 작가와 뭔가 공통점을 찾고 싶었는데 이름이 한들이니 쉬 분간을 할 수 없어 더욱 아리송했다.

원더박스 신간, 김한들 저 / 혼자 보는 그림
원더박스 신간, 김한들 저 / 혼자 보는 그림

페이지를 넘길수록 선명하게 다가왔다. 작가 김한들은 여자구나.... 책에서 묘사한 그녀의 방과 일상이 눈앞에 그려졌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열정적으로 직장 생활을 하며 친구들과 맛집에 다니고 음식을 같이 먹으면서 수다를 떨며 신나하는 우리 주변의 평범한 3-40대 여성일 수도 있다. 쉬는 날은 코가 비뚤어질 만큼 자고 게으름을 즐긴다. 그런 일상에서 흔히 스쳐 지나갈 수 있는 우리의 주변인이 담담히 써내가는 일기와 낙서, 메모에 이 책을 읽는 사람이 자연스레 힐링된다. 처음엔 두렵고 막막했던 미지의 세계에 발을 딛디고 체화한다면 지극히 평온하고 자유롭다는 걸 깨닫게 된다.

원더박스에서 출간한 김한들의 <혼자 보는 그림>은 갤러리와 미술계라는 일터에서 저자가 마주한 삶의 인상적인 순간들을 진솔하게 풀어쓴 성찰일기다. 그림을 보는 게 좋아 그게 일이 된 저자의 청춘과 꿈, 미래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총 4개의 섹션, 4개의 키워드로 나누어져 있는 각 부분들은 큐레이터인 저자가 특별히 소개하고 싶은 네 명의 동시대 미술가들과 함께 한다. 1부 '일상'은 인천에 사는 전병구 작가와, 2부 '슬픔'은 혁오의 '톰보이' 뮤직비디오 감독으로도 널리 알려진 박광수 작가와, 3부 '고독'에서는 시(詩)와 달리기에 대한 애정을 고백하면서 독일의 팀 아이텔와, 마지막 4부에서는 아흔이 넘은 미술가, 알렉스 카츠의 꾸준함에서 '희망'을 이야기한다.

고독은 익숙하지 않다. 쉼은 불안하다. 특히나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고 경쟁을 유발하는 우리 대한민국에서의 멍 때리기는 사치라 여긴다. 제대로 쉴지 모르고 혼자 있어 본적도 없고 혼자 있어보기도 해 본 적이 없어 사람들에게 상처 입으면서도 같이 있길 원한다. 그래야지 안심이 된다.

김한들의 '혼자 보는그림'은 혼자서 누리는 자유로운 특혜에 대해 예찬하는 힐링서다.

혼자서 뭐 하지? 김한들은 나와의 시간을 보내는 가장 좋은 방법, 그림을 보는 것이야말로 자신과 자신의 내면을 연결해 주는 가장 적절한 행위라고 한다. 그림이 있고 읽을 책이 있고 볼 영화가 있고 들을 음악이 있으니 족하지 않은가! 움직임을 멈추고 그림 앞에서 서서 오직 그림만 바라본다면, 엉덩이 붙이고 앉아서 베토벤과 브루크너, 쇼스타코비치의 심원함에 빠진다면, 사방 곳곳의 미술관에 발품을 팔아 간다면, 그리고 스탠드 조명에 꽂힌 백열등의 노란빛으로만 각득 찬 어두운 방에서 독서에 빠진다면 옆에서 재잘거리는 사람이 얼마나 귀찮은 존재인지 거추장스럽게 된다. 속세의 번잡함에 얼마나 심신이 피로한지 새삼 알게된다. 김한들을 시끄러운 고독 속에서 가만히 붙들어 준 것들이 그림이라면 필자는 음악가니 음악이 날 세속의 소란스러움에서 해방시키며 붙잡는다. 김한들의 <혼자 보는 그림>과 함께 들어봐라. 이어폰을 꽂고 들으면서 한강을 달려보라. 그리고 숨이 버거우면 와짝 눈을 뜨고 책을 펼쳐라.

아담한 책의 크기....'플라뇌르'로 맺는 책에 적합한 사이즈다. 프랑스 단어로 '한가롭게 거니는 사람'이라는 플라뇌느에 핸드폰 대신 이 책을 옆구리에 끼고 걸으면서 읽고, 달리다가 멈추고 아무 데나 펴고 읽어본다면 세상 평온하고 무아에 빠진다. 책의 크기도 적당하다. 이 책과 함께 유유자적(悠悠自適) 현충원에, 남산에, 아님 정릉천으로 가라. 서울을 벗어나도 갈 데가 많다. 그럼 자연스레 여행, 방랑으로 날 초월한다. 방랑이 작가의 동경인 나라 밖, 특히 유럽으로 자연스레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이 책은 진정한 자유를 만끽한 사람이 터득한 경지를 담담하게 읊은 자서전이다. 현재의 삶에 부대낀 사람, 진정한 나를 찾고 싶은 사람, 세상의 오만 천태만상에서 벗어나 평온함을 누리고자 하는 사람에게 친절하게도 김한들이 <혼자 보는 그림>을 통해 답을 제시해주고 있다. 책을 덮으니 처음에 그녀와 나 사이의 어떻게라도 작은 공통점을 찾아내서 정서적 연대감과 작가와 독자로서의 유대감을 형성하려는 접근이 부질없었다. 그녀는 그녀고, 나는 나. 살다 보면 만날 인연이면 언젠가는 만나겠지....

속세의 소란스러움을 벗어나 일상의 평온함과 고독의 무아를 체험하고픈 분들에게 권하는 김한들의 '혼자 보는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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