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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말과 글, 삶이 일관했던 인간 해방 사상가

권용 전문 기자
  • 입력 2020.01.06 23:00
  • 수정 2020.02.12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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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평전' 출간, 선생의 사유세계와 자취를 정리한 이야기

"'청년 운동가' 쇠귀는 1988년 8월 15일 20년의 감옥 생활을 마치고 '초로(初老)의 붓다'가 되어 돌아왔다."

신간 '신영복 평전'의 서두이다. '쇠귀'는 신영복 (1941~2016) 선생이 생전 가장 즐겨 사용하던 호이다. 무려 20년 20일 동안 감옥에서 시간을 보낸 선생은 광복절 8월 15일 자유의 몸으로 세상 밖으로 나왔다. 다른 의미로 선생 인생의 해방일이 되었다.

'인간 해방'이 사상의 근간이었던 선생이 타계한 지 벌써 4년의 시간이 지났다. 문재인 대통령은 1주기 추모식에서 자신이 존경하는 인물이라고 각별히 고인에게 경의를 표했다.

신영복 선생(사진=연합뉴스)

성공회대 최영묵·김창남 교수는 선생의 말과 글, 그리고 삶을 '신영복 평전'을 통해 새롭게 정리해냈다. 선생의 성공회대 동료이자 후배이고 제자였던 두 저자는, 오랜 시간 선생과 함께 생활하며 보고 듣고 배웠던 세밀하고 꾸밈없는 모습을 이번 책에 기록했다.

    "선생은 감옥 20년을 전후로 각각 27년여의 세월을 사셨다. 전반 27년은 일관되게 제도권 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생'으로 살았고, 감옥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후반 27년은 성공회대를 중심으로 '선생'으로 사셨다. 감옥도 대학이라고 하시니, 결국 평생 학교에서 사신 셈이다."

선생은 감옥에서 책과 교실보다 현장과 사람, 실천이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오로지 글자만 읽어서는 세상을 이해할 수 없고 삶의 지헤 역시 깨닳을 수 없다고 봤다. 이런 이유로 "책을 쓰기 위해 글을 쓴 적이 없다"고 술회한 적이 있다.

그러기에 선생의 말에는 절대 과장이 없고 글 또한 담담하고 냉철하며 군더더기가 없다. 저술의 세계, 삶과 사상이 불리되지 않았으며 말과 글에 정직이 담겨 있으며 어긋남이 없었다.

 

   "모든 사상은 기본적으로 기존의 관념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는 것이어야 하며, 궁극적으로는 개념적 인식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선생은 저서 '강의-나의 동양고전 독법'에서 말하듯이 삶을 진지하게 살았다. 하지만 파란만장한 삶 때문인지 선생의 사상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빈약했다. "선생이 감옥살이 20년과 이후 삶을 통해 일관되게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은 우리 사유 체계의 점검과 삶과 사상의 통일 문제였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이 책은 선생의 사상적 원류를 선비 정신과 마르크스주의, 동양 사상으로 본다. 영남 유림의 선비 정신은 가계로 전승된 것이며, 마르크스 주의 공부로 식민지 반봉건 사회를 국복할 비전을 만들자는 문제의식을 제기했다. 또한 새로운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인식, 동양 고전과 감옥에서 만난 사람들으르 통해 얻은 성찰적 관계론이 그것이다.

"쇠귀는 자신의 삶에 대한 기록을 많이 남기지 않았다. 사람은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확고한 소신 탓으로,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즐기지도 않았다"고 저자들은 회상한다.

선생은 경남 의령에서 출생해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에서 조사 및 구석되어 복역하다가 1988년 특별가석방으로 감옥에서 출소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옥중 편지를 묶어 펴낸 저서로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고, 2016년 1월 15일 75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신영복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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