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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145] 이 한 권의 책: '소리, 그 너머의 음악'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0.01.02 09:20
  • 수정 2020.01.07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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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작곡과 교수, (사)한국작곡가협회 이사장을 역임한 작곡가 황성호의 <소리, 그 너머의 음악>(도서출판 현대문화)은 작곡가 대상의 책을 넘어 연주자라면 꼭 읽어야 할 필독서이다. 책에서 황성호는 시종일관 강조한다. 악보의 중요성과 해독(Reading)을.. 그래서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사이비 연주자를 경계하며 얼마나 많은 사이비들에 의해 진의가 왜곡되는지 한탄하고 분개하고 작곡가가 진정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전하는 게 연주자의 책무요, 그게 진정한 음악 감상이라고 구구절절이 주장한다. 연주자의 잘못된 해석은 가짜 뉴스와 진배없다. 그런데 그게 태반은 무지요, 무관심이요, 진리 추구를 하지 않으려는 게으름에 기반을 둔 것이니 매스컴에서 전하는 소식을 여과 없이 받아들이는 현대의 작태와 별다르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소리, 그 너머의 진실을 탐구하고 추구해야 한다.

도서출판 현대문화에서 출판한 황성호 작곡가의 소리, 그 너머의 음악 표지

원래 이 책은 초, 중기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중 첫 악장 몇 곡들과 브람스의 후기 실내악곡을 중심으로 작곡가의 작곡 과정을 살펴보기 위해 집필되었지만 정작 읽어야 할 사람은 작곡가가 남긴 작품을 청중들에게 전하는 연주자 더 나아가서는 음악을 듣는 감상자다. 음악은 문학과 달라 타인이 음악을 읽은 소리로 듣게 되기 때문이다.

① 연주자: 음악만이 독특한 중간 단계인 연주자가 소리로 전달한다. 그래서 중세의 사제와 신부들 같이 접근 가능한 사람만이 해독할 수 있어 중간 전달자 관점에서 해석되어 서로 다른 주장을 펼친다는 성경과의 비율은 절묘했다. 영향력 있는 일부 사제는 클래식 음악계에선 연주자, 음악학자 혹은 비평가가 될 것이고 그래서 그들의 권위와 지도는 절대적이다. 일례로 지금 연주되는 유명한 악곡 중 하나는 작곡가의 의도와는 다르게 연주자가 초연 시 연습 미흡으로 작곡가의 의도보다 훨씬 느리게 연주되었는데 지금에 와서는 그게 옳은 속도로 알고 있다. 입시와 평가는 오직 얼마만큼 선생님, 교수, 스승으로부터 배운 그대로 잘 구현했는지 달려있지 스스로 독해하는 능력을 가르쳐주지도 않는다. 불현 중에 그런 방식에 잠식되고 적응되어버린 연주자들을 자립보단 기존의 무비판적인 답습만 이어오고 있다. 성경 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서 진리를 탐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우리 목사님'만 신봉하고 추종하는 세태와 별다르지 않다.

② 청중: 수용자의 이해력이 음악감상의 척도다. 완숙의 경지에 이른 작품에 대한 세인들의 몰이해와 무관심, 알아주기를 바라는 작곡가의 작곡 의도를 묵묵부답으로 그저 막연한 감상과 일상적인 공치사(그것도 안 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지만)만 일삼는 사람들에게 창의에 충만한 작곡가의 작가적 고독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구전 콘텐츠들은 문자로 기록되며 글을 아는 사람은 이해할 수 있는데 음악은 추상적이다. 그저 감상자, 수용자 중심의 유희에 충실해 노래 부르고 감정을 배설하는데 쓰이지 집필 행위의 집결이자 완성체인 작품은 어렵고 지루하다. 음악이란 위안와 여흥의 기능이지 그래서 대중&상업음악 정도에서 값없이 만족을 얻으려하고 가사가 있는 인성 음악, 음보다는 가사와 노랫말에 더 빠진다.

저자 황성호
저자 황성호

사실 그건 예나 지금이나 수준과 정도의 차이지 별반 다르지 않다. 책에서도 언급한 베토벤과 브람스의 세상에 대한 냉소적인 반응, 자신의 작품을 알아주지 않는 데 대한 실망감과 절망감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름 없는 작곡가들의 푸념과 한탄, 처지와 엇비슷하다. 자신의 예술세계에 탐닉하고 깊어질수록 세상과의 괴리는 심해진다. 창조적인 예술가일수록 자신의 생각과 음악, 이상을 진부하지 않고 새롭게, 이 세상에 아직 존재하지 않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전하려고 시도할 것이다. 스스로에 대해 더욱 엄격해지며 상투적이지 않도록 끝없이 자기 자신을 담금질할 것인데 그러면 그럴수록 고립은 가속되고 세상과 단절된다. 황성호의 <소리, 그 너머의 음악>을 읽고 서평을 쓰고 있는 필자도 작곡가로서 나의 음악, 나만의 독자적인 예술을 지향하며 내 음악에 공감하고 진가를 알아주는 사람을 원한다. 속세를 초월한, 틀을 벗어나 절대 고독의 완전한 개인적 자아며 그래서 작가적 고독은 숙명이다. 예술가의 삶이란 사회에서 인정받기 위한 투쟁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이 시대에 같은 고민을 하며 마음 아파하고 괴로워하는 선배 작곡가가 있다는 건 위안이다. 작곡이란 행위가 지극히 개인적인 활동이기 때문에 서로에 대해 간격이 있으며 학교에서 후학을 지도하신 교수와 현장에서 직접 관객을 만나면서 음악시장을 개척하는 사람과 세대, 공간, 방식의 차이가 있지만 작곡가란 공통점이 있어 그의 주장이 피부에 와닿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읽고 그 진정성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한국의 작곡가들은 학교에 있는 교수나 강사들이다 보니 그 학교의 제자가 아니면, 동문이 아니면, 협회나 악회, 진흥원 등의 기관에서 같이 근무하고 작업하는 인연이 아니다 보면 음악으로 서로 만나기 힘들다. 그래서 작곡가 포럼이나 모임을 주선해도 세속적인 이득과 관계가 없으면 모이지 않고 다른 이의 작품에 관심도 없다.

황성호의 '소리, 그 너머의 음악'과 함께 현대문화에서 출판된 서적들
황성호의 '소리, 그 너머의 음악'과 함께 현대문화에서 출판된 서적들

이런 고귀한 책을 출판해준 도서출판 현대문화와 최영선 발행인에게 감사를 안 할 수 없다. 음악대학 안에서도 진지한 학습, 기초 위주의 교육 대신 흥미 위주의 학생 유치와 운영을 위한 살아남기 류로 전락한 대한민국의 음악대학풍토에, 그리고 더더욱 클래식이 갈수록 교육 기관에서도 돈이 되지 않는다는 명목하에 외면받고 화성학, 시창청음, 음악 분석이라는 기초 학문도 전필이 아닌 필수 이수과목이 되지 않은 시점에, 이런 토론과 사색 그리고 내면적 에세이의 독백이 담긴 책을 출판해준 건 이 시대 정말 몇 명밖에 남지 않은 순수음악인들에게 동지와 같다. 이윤만 추구한다면 가히 하지 못했을 결정이요, 순수음악을 보존하고 발전, 계승하는 시대과제를 같이 수행하는 동업자이다. 감히 단언한다. 앞으로 대한민국의 연주자들은 이 책을 읽은 사람과 읽지 않은 사람으로 분리될 거라고. 2020년 초에 베토벤에 이어 브람스를 집중적으로 다룬 <소리, 그 너머의 음악2>가 출간된다고 하니 손꼽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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