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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144] 카텔란의 바나나 & 뒤샹의 변기, 2020 음악 스캔들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0.01.01 09:17
  • 수정 2020.01.07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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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가 벽에 붙어있다. 은색 박스테이프로 벽에 붙어 있다. 설치미술가는 이걸 '작품'이라고 당당하게 주장하며 1억 원을 요구했다. 그런데 거기서 끝난 게 아니다. 이걸 화젯거리로 만들어야 한다. 전시장에 나타난 누군가가 태연히 이 바나나를 먹어치운다. 사람들은 아연실색한다. 그래도 명색이 작품인데 이걸 훼손했으니 어찌하지... 설치미술가는 새 바나나를 벽에 또 붙인다. 그리고 또 누군가가 날름 먹어치운다. 그러자 이 바나나의 가격은 1억 3천만 원이 되었다. 먹어치울 때마다 가격은 올라갔다. 그리고 세 번이나 팔렸다.

벽에 붙어있는 바나나를 찍고 있는 관객들. 이들은 바나나를 찍고 있는 게 아니다. 이런 고명한(?) 전시회에 다녀왔다는 자신의 허영과 스노비즘을 만족시키고 있는게고 그걸 위한 가격이 책정된다.

2019년 12월 5~8일 미국 플로리다에서 열린 미술 장터 '아트바젤 마이애미'에서의 마우리치오 카텔란이라는 이태리 미술작가의 작품이다. 일단 벽에 테이프로 붙인 바나나가 1억이 넘는 가치가 있을까. 카텔란이 '코미디언'이라 칭한 이 작품은 바나나가 주가 아니라 바나나를 벽에 붙이는 행위를 통해 표현하려는 작가의 아이디어, 즉 개념의 가치라고 항변한다. 바나나를 먹어치운 행위, 먹은 사람도 작품 속의 일부였다. 데이비드 다투나가 의도적으로 먹은 거니 작품을 망친 게 아니다. 그럼 만약 지나가는 아이가 먹었다면? 하긴 이것도 이슈가 될만하다. 누가 먹었는지가 중요하지 않고 뭔가 떠들썩하고 화제집중이 관건이기 때문이다. 작품 주변에 경비를 세워야 할 정도로 '코미디언'이 화제가 되면서 미국 배우 브룩 실즈는 바나나를 이마에 테이프로 붙이고 찍은 사진을 '값비싼 셀카(Expensive Selfie)'란 제목으로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패스트푸드 업체 버거킹은 바나나 대신 감자튀김을 붙인 뒤 '0.01유로'라고 적거나, 프랑스 탄산수 업체 페리에는 물병을 붙이는 등 개인과 기업 가리지 않고 패러디를 쏟아내고 있으니 아이디어는 1억 이상의 가치와 입소문, 스캔들에 허기진 언론과 가십에 목마른 대중과 스노비즘에 영합해 대성공을 거둔 셈이다. 그러다 보니 아트바젤에 이 작품을 출품한 페로탱 갤러리와 다투나가 서로 짜고 했다는 의심도 살만하다. 다투나 덕분에 바나나 하나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으며 소장가가 천정부지로 올랐기 때문이다.

마르셀 뒤샹의 <샘>, 선명하게 적힌 R. Mutt 1917이 더 눈에 띤다.

자신의 입지를 구축하기 위해 일부러 스캔들을 만들어내는 건 다분히 전략적으로 그 선조는 뒤샹(Marcel Duchamp 1887-1968)까지 올라간다. 자신이 디렉터로 참여한 전시에 시중에 파는 변기를 사와 거꾸로 뒤집어 놓은 다음 <샘>(Fontaine)이라 명하고 사진의 이름 대신 리처드 머트(R. Matt)라는 이름으로 출품한 뒤샹, 변기로 인해 소동이 일자 자신이 디렉터였던 전시회에서 항의의 뜻으로 사퇴를 선언하고 자신이 창간한 잡지 <눈먼 사람>에 익명의 사설을 실어 <샘>을 옹호하고 작품으로의 가치를 스스로 세운 뒤샹.... 의자에 자전거 바퀴를 고정하고 변기를 놔두면서 시작하게 된 개념미술은 피카소, 앤디 워홀 등도 수공예적인 관점의 예술에서 많은 비난을 받았다.

피아노를 해머로 부수는 퍼포먼스. 이런 행위로 인해 음악은 현대인에게 도리어 더 거부감이 들어버렸으니 미술과 달리 '개념'의 피해자다.
피아노를 해머로 부수는 퍼포먼스. 이런 행위로 인해 음악은 현대인에게 도리어 더 거부감이 들어버렸으니 미술과 달리 '개념'의 피해자다.

그나마 개념미술이네 레디메이드네 운운하며 이런 헤프닝은 작품의 가치와 가격을 미술사적 선구자성, 독창성, 시도성, 유명 작가 편중성에 따라 좌우되는 시각예술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감상이 목적인 음악에서 아무리 작품성이 뛰어라도 음악 작품만으론 화젯거리가 되지 않는다. 심혈을 기울여 한음 한음 악보에 적으면서 남긴 <듣는> 작품 자체의 본질은 무슨 기준으로 평가되고 세상의 관심을 끌고 이슈가 되는가. 음악에서의 머니 메이킹은 백남준 선생처럼 피아노를 해머를 부수고 그런 퍼포먼스의 재연인가? 백남준 선생은 미국의 현대미술은 머니 메이킹을 위한 사기라고 일갈했다. 의상을 훌러덩 벗겨서라도 무대에서 베토벤을 연주하게끔 하고, AI나 로봇이 연주하고, AI와 인간의 연주 대결 이런 이벤트나 해야지 사람들 이목이 집중되고 돈 되는 장사가 된다는 것인가?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에서 열린 작곡발표회에서 관객에게 쌀을 뿌린 퍼포먼스, 반일감정이 극도로 달했을시 내한한 일본연주자의 음악회에 객석에서 쪽바리라고 외친 사건, 쇼팽 에튀드 10-2를 뒤에서부터 친 행태들도 순간 반짝하고 말았지 미술처럼' 개념음악'이라고 머니메이킹이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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