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성용원 음악통신 143] 왜 연말엔 베토벤 합창 교향곡? 다른 곡은 없나???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19.12.31 09:01
  • 수정 2020.01.07 16:2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2월말 되면 베토벤 교향곡 9번을 하는 이유

12월만 되면 해마다 함께 오는 베토벤 교향곡 9번, 왜 12월이 되면 베토벤 합창 교향곡이 울려 퍼지나? 실러의 가사에 내포된 인류와 형제애의 화합과 평화의 메시지가 한 해를 정리하고 새해를 여는 송년음악회의 주제로 딱이라고 할 수 있긴 하지만 올해 이번 달에만 3일엔 경기필하모닉과 수원시향이 그리고 서울시향, KBS교향악단, 대전, 대구, 부산 등의 시립 교향악단과 수십 개의 민간 오케스트라에 아마추어, 학생 오케스트라까지 안 하면 뭔가 허전하고 빠진 듯 무조건적으로 하고 있다. 더불어 찬송가의 선율로도 쓰이는 4악장이 교회에서도 방방곡곡 울려 퍼진 거까지 감안하면 엄청난 횟수다. 그런데 유독 이런 현상이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만 관례처럼 이루어지고 있으니 그 이유를 알고나 넘어가자.

영화 카핑 베토벤, 사진갈무리: 영화 카핑 베토벤
영화 카핑 베토벤, 사진갈무리: 영화 카핑 베토벤

1918년 12월 31일, 1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독일의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가 전쟁의 상처를 씻고 국민들을 위로하기 위해 독일 노동자를 위한 콘서트에서 베토벤 교향곡 9번을 연주했다. 그때 정확히 해가 넘어가는 12시에 4악장이 연주되게끔 밤 11시에 공연을 시작하는 획기적이고 참신한 시도로 연말 콘서트의 새 장을 열었는데 지금도 이 전통을 이어나가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는 매년 12월 31일에 합창 교향곡을 연주하고 있다. 일본의 서양음악을 담당하던 방송국 JOAK의 직원 야베 겐조가 이 콘서트를 소개하면서 한 해의 마무리를 독일에서는 베토벤 교향곡 9번을 소개한다고 전한데에 일차적으로 합창 교향곡의 전래에 기인한다.

중국을 거쳐 자국으로 넘어온 독일 포로들이 수용소에서 불완전한 상태로 공연한 9번 교향곡의 4악장이 일본에서 처음 연주된 후 자국의 집단주의, 전체주의 그리고 동맹국인 독일문화에 대한 존경과 선망까지 더해졌다. 전쟁 후 NHK에서 해마다 재야 음악회로 합창 교향곡을 생방송으로 내세우면서 일본에선 으레 전통적인 행사로 고정되어버렸다. 대규모 합창과 스텍터클한 광경이 개인이 아닌 전체의 화합이라는 일본 특유의 이상과도 맞물려 1만 명이 넘는 합창단이 베토벤 교향곡 9번을 부르는 기네스에 기록될 공연까지 있을 정도다. 우리가 새해에 떡국을 먹듯이 연말에 합창 교향곡을 연주하는게 관례가 되어버린 일본의 문화가 한국에 넘어와 그대로 답습되면서 우리도 덩달아 12월에는 베토벤 교향곡 9번 연주에 동참하고 부화뇌동하고 있는 격이다. 일만명의 사람들이 동시에 기립하면서 매스게임과 같은 집단군무를 펼치는 광경에 전율이 인다. 거기에 사람들의 가슴을 가장 울리게 만드는 인간이 인간의 목소리로 부르는 단체합창이라니...집단의 카타르시스에 경이를 넘어 두려움까지 생기게 만든다.

이제 연유를 알았으니 우리도 연말에 합창말고 다른 곡으로 대체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12월이며 크리스마스와 맞물려 바흐의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 핸델의 '메시아'와 같이 주구장창 이 곡만 파지말고 비슷한 메시지를 담은 여러 작품들 중에서도 이젠 우리도 한국 정서와 얼, 시대정신을 내포한 자국 작곡가의 작품을 통해 연대감을 느끼고 카타르시스를 체험하면서 분열과 갈등을 뛰어넘어야 하지 않을까? 새해 1월 8일 수요일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는 신년음악회에 한국을 대표하는 작곡가 중의 한 명인 이영조의 <여명(黎明) Glory of Dawning>이 KBS교향악단에 의해 연주되는데 동터오는 첫 햇살을 의미하는 여명(黎明)이라는 제목이 새해 첫날 또는 모든 일의 새 출발을 의미해 연초부터 제격이다. 하지만 대통령과 국무 위원들이 참석하는 거창한 행사로 준비되고 있다고 하여 일개 백두(白頭) 풍각쟁이의 발걸음이 쉬 떼이지 않는다. 예술이 독립성을 띠지 않고 관심과 안목도 1도 없는 고관대작들의 '보여주기 식 관계 맺기의 장'이 되는 주객전도 음악회는 사절이다.

아님 정치평론가 김홍국의 가사로 된 가곡 Triology에서 언어를 빼고 메들리 식으로 엮은 '김홍국 모음곡'은 어떨까? 민주-독립-평화라는 대주제가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대서사시로 가사가 없이 음악으로만으로도 고귀한 숭고미와 심장박동을 점진적으로 고동치게 하는 근원적인 힘이 넘치는 에너지로 충만하다. 일본을 따라한 송구영신 베토벤 교향곡 9번 말고도 2020년 12월은 좀 더 다른 참신하면서도 민족정기가 살아 숨쉬는 프로그램을 고대해본다.

저작권자 © 미디어피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