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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141] Critique: 테너 손형빈 Wagner / Schumann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19.12.28 10:28
  • 수정 2020.01.08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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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7일 금요일 밤, 마리아 칼라스 홀에서 열린 테너 손형빈의 바그너와 슈만 가곡연주회(Liederabend)

바그너의 악극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1막 전주곡이 흘러나오면서 오늘의 주인공 테너 손형빈이 등장했다. 음악회 개요와 프로그램에 대해 10분 정도 외워서 해설하는 모습에서 공부하는 성악가라는 인상을 받았다. 안 그래도 바그너의 <베젠통크 가곡집>과 슈만의 <시인의 사랑>이라는 독일 가곡으로 구성된 프로그램을 보고 강한 호기심에 이끌려 온 음악회였기에 쇼펜하우어를 언급하고 기존의 해설에서 더 나아가 오늘의 프로그램을 연계한 자신만의 3가지 관람 포인트를 제시하는 학구적인 설명에 곧 있음 시작될 음악회를 더욱 기대하게 만들었다. 한국인의 기질 때문인지 노래라고 하면 으레 목청이 크고 고음을 잘 내고 기교를 부리는 외형에 치중된 국내 성악계 풍토에 이렇게 전혀 한국인의 DNA에 맞지 않은 독일 가곡, 그것도 알려진 몇 개를 삽입하는 게 아니라 통으로 연가곡으로 무슨 귀국 독창회나 가곡연구회도 아닌 리사이틀은 기획해 흥미위주의 토크쇼 진행이 아닌 작품을 조곤조곤 설명하는 모습이 귀감이었다. 아카데믹하고 지적이었다.

테너 손형빈과 피아니스트 백동현의 절묘한 호흡과 내적충만함
테너 손형빈과 피아니스트 백동현의 절묘한 호흡과 내적충만함

손형빈의 목소리는 가곡에 어울리는 미성이었다. 대규모로 운집한 관객들과 소리를 멀리까지 전달해야 하고 뚫고 나가야 하는 오페라에 맞춘 무겁디무거운 벨칸토 발성이 아니라 마리아 칼라스 홀 같은 살롱에 적합한 소리였다. 가곡과 오라토리아 가수였다. 반주자 백종현은 그걸 더욱 살려주고 같이 호흡을 절묘하게 맞춰주는 역할을 충실히 담당했다. 슈베르트, 슈만, 바그너, 볼프,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등의 독일 가곡에서의 피아노는 단순한 반주가 아니라 시의 내용이나 장면을 묘사하고 시 어구 하나하나에 어울리고 융화되는 문학적 감성이 극도에 달해있기 때문에 시의 이해가 절대적이다. 독일어 구사여부를 확인하려고 다시 이력을 살펴 볼 정도로 백동현은 곡에 대해 알고 쳤다. <베젠동크 가곡집>의 3번 '온실에서'의 이상과 현실의 비교는 에메랄드빛 천장에 떨어져 반사되는 물방울같이, 5번 '꿈'의 허무함은 피우고 향기를 퍼트리다가 소리 없이 시드는 한 송이 꽃같이 비극적이지만 아름다웠다. 슈만 <시인의 사랑> 5번 '나의 마음을 적시리'와 8번 '만일 예쁜 꽃이 안다면'은 내용이 이어지는 드라마와 같은 연가곡의 특성이 절정에 달한 손형빈과 백동현 그리고 청자인 필자와의 혼연일체였다. 손형빈의 노래를 들으며 앞에서 쾰른 대성당 앞의 라인강이 물결치며 사랑에 절망한 젊은이가 두 주먹을 꽉 쥐면서 울지 않는다고 다짐하는 1인칭 모노드라마가 훤하게 펼쳐졌다. 가슴을 아리는 10번 '저 노래가 들려오면'에서는 멀리서 들려오는 옛사랑의 노래에 가슴이 아렸다.

그런데 그때!

사근사근 코 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격조 높은 독일 가곡을 들을 수 있는 자리에 사실 음악회 입장부터 관객 중에 짜장면 드시고 입장한 분이 계셔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짜장면 냄새가 은근히 나 감상에 방해가 되었긴 했다. 지금까지의 집중과 인내가 슈만의 중반을 넘으면서 드디어 한계가 이른 거다. 또한 <베젠동크 가곡집>의 싯구와 내용을 이해한다면 손형빈이 전달하는 비통과 고뇌에 동감하면서 내가 시의 주인공이 되어 감정이입일 될 건데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옆의 사람과 웃는 중년 부인의 모습엔 탄식이 절로 나왔다. 어쩔 수 없다. 가사를 모르고 알아듣지 못하니 그저 1시간 정도 막연하게 앉아 있는 거뿐이다. 서술했듯이 연가곡은 영상 매체가 없던 18세기의 현재 텔레비전 드라마와 같다. 개별적인 에피소드가 있으며 편들이 시리즈로 이어지고 모아진다. 상상해보라! 드라마 시청하며 슬픈 장면에 모두 몰입해있는데 장면과 내용과 상관없이 옆에서 웃고 있는 사람을..... 어떤 심정일지.... 정말 탄식이 나오니.. (Ach, wie sollte ich da klagen)

테너 손형빈의 바그너와 슈만 가곡발표회 포스터
테너 손형빈의 바그너와 슈만 가곡발표회 포스터

슈만이 끝나고 마침내 보면대가 치워졌다.

보면대가 치워지면서 독일 가곡의 봉인이 풀리고 이젠 한국인을 위한 일반적인 열린 음악회로 돌아왔다.

보면대가 치워진 무대도, 아는 노래가 나오고 익숙하지 않더라도 모국어 한국어 가사를 들으는 객석도 모두 긴장이 풀린 이제는 같이 즐기는 시간이다. 손형빈의 노래로 이언주의 '연'을 들은 건 수확이었다. 확실히 손형빈은 소리의 질감과 크기로 승부하고 관객몰이하려는 여타 가수들과는 다른 유의 가수인 게 분명하다. 손형빈의 한국 가곡들을 감상해 볼 기회가 있으리... 앙코르로 동요를 선택한 것도 손형빈의 인품과 음악을 대하는 자세, 한국에서의 성악가로서의 사회참여를 알 수 있는 자리였다. 곡의 구조를 파악하고 거기에 맞는 음색을 만들 줄 아는 피아니스트 백동현의 재즈 편곡까지 더해져 익숙한 <반달>과 <등대지기>로 훈훈하게 마무리되었다. 등대지기를 하니 어떤 분이 나직이 따라 불렀다. 슈만 때는 그러지 않더니... 이게 한국 현실이다. 이런 환경에서 자신이 좋아서 혼신의 힘을 다해 독일 가곡으로 무대를 만들고 성악가의 길을 걸어가는 테너 손형빈과 그의 파트너 백동현을 응원하지 않을 수 없다. 독일 가곡은 이태리 노래와 달리 은밀하고 내적이기 때문에 한국에서의 감상은 제약적일 수 밖에 없다. 교육과 설득, 회유 등으로 억지로 좋아하게 만드는 데 한계가 있고 태어날 때부터의 가지고 있는 DNA와 문화의 차이다. 한국에서의 독일 가곡은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오래된 나쁜 노래들'(Die alten, boesen Lieder)로 남을 수밖에 없을 테니....

다음 기회에 한국가곡을 듣고 싶게 만든 테너 손형빈
다음 기회에 한국가곡을 듣고 싶게 만든 테너 손형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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