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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138] 과거의 '황제'는 현대판 VIP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19.12.25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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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12월 24일 종영된 SBS 드라마 <VIP>는 성운이라는 가상의 백화점에서 상위 1%의 VIP 고객을 관리하는 전담팀의 비밀스럽고 은밀한 사생활을 그린 오피스 멜로다. 유복한 집안에서 자란 데다 이쁘고 친절하며 업무 능력도 뛰어난 VIP 전담팀의 차장(장나라 분)과 키 크고 잘 생긴 데다 묵묵히 맡은 바 일을 해내는 그녀의 남편 팀장(이상윤 분) 사이에 한 명의 여자가 끼면서 생기는 의혹과 갈등을 다룬 불륜 드라마다. 배경이 대한민국의 1% 상위 부자들을 상대하는 VIP 전담팀이다 보니 VIP 상대 대접이나 비즈니스에 관한 장면이 단편적인 에피소드로 등장한다. 그중 12월 23일 방영된 15회차에서는 백화점이 주관한 VIP 미혼 자제들끼리 연결 시켜주는 미팅 파티 장면에서 5초 정도 잠깐 흘러나오는 음악이 귀를 사로잡았다. 

SBS월화드라마 'VIP' 공식 포스터, 사진제공: SBS
SBS월화드라마 'VIP' 공식 포스터, 사진제공: SBS

으레 그렇듯 돈 있는 사람들의 잔치장면에는 약방의 감초처럼 클래식이다. 현악기는 왠지 부티 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더한다. 거기에 하이든의 <황제>라니! 하이든이 신성로마제국 황제인 프란츠 2세를 위해 작곡한 찬가로 그의 현악4중주(op.76-3) 2악장의 주제 선율로도 쓰여 유명해진 <황제> 처음 앞부분이 배경음악의 삽입곡이었다. 이 노래는 황제 찬가였다가 독일의 국가도 되었다가 한국에서는 가사를 붙여 찬송가로도 쓰이고 있다. 그만큼 보편성과 전달력이 크다는 살아 있는 증거다. 영국의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 1941~)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에서 창안된 밈(Meme)까지 연결된다. 도킨스가 모방이라는 그리스어 미메시스(Mimesis)와 유전자(Gene)를 조합해 만든 밈은 '계속 모방되고 반복되어 자발적으로 퍼져 나가는 문화적 전달과 파급 단위'를 뜻한다. 하이든이 이 선율을 작곡했을 시 그의 머릿속에 있지도 않은 동방의 코리아라는 나라에서 자신의 사후 황제가 아닌 하나님을 찬양하는 곡으로 둔갑될지 그리고 흥청망청 거리는 부자들의 연희 음악으로 쓰일지 상상도 못했을 밈으로 뻗어나갔으니 말이다. 하이든의 황제 선율은 차분하고 안정적이지만 그 안에 요동치는 고귀한 숭고미와 심장박동을 점진적으로 고동치게 하는 근원적인 힘이 넘치는 에너지로 충만하다. 참으로 고상하고 고귀하다. 이 선율이 졸부(?)들의 사람의 인품과 사랑으로 연결되는 게 아닌 소위 말하는 자기들끼리의 조건 보고 매칭되는 짝짓기 배경으로 아주 짧게나마 등장하는 건 음악감독의 의도된 복선이자 연출일까? 아님 우연의 일치일까?

왕정시대의 최고 권력자가 황제였다면 현재는 부와 권력의 척도인 자본가들, 즉 돈 있는 부자들이 21세기 황제로다. 대상만 바뀌었지 헌정의 의미는 엄연히 살아있다. 독생자로서 이 땅에 태어나 인류의 모든 죄를 몸소 안고 희생하신 거룩한 예수님의 탄신일에 인간을 숭배하는 음악작품이라니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결국 이런 음악을 만들어낸 사람은 신의 선택을 받은 자로 하나님의 은혜로다. 하이든의 현악4중주 <황제>말고 내친김에 유명한 트럼펫 협주곡의 3악장도 한번같이 들어보자. 아! 참으로 고귀하고 고상한 크리스마스다. 세상에 은혜가 넘치고 품격 높으면서 신의 은총을 음악에 담아 세상에 비추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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