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용원 음악통신 137] 이 한 권의 책: 반이정의 '예술 판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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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137] 이 한 권의 책: 반이정의 '예술 판독기'
  • 성용원 작곡가
    성용원 작곡가 klingsol@hanmail.net
  • 승인 2019.12.24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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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평론사 반이정의 <예술 판독기>는 일상에서의 스침, 느낌을 자신만의 시각으로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관찰일지와 같다. 예술가는 남이 보지 못하는 것, 남이 느끼지 못하는 것, 남이 듣지 못하는 걸 듣고 보고 느끼면서 남과는 다른 시각으로 세상에 다양성과 다채로움을 그리고 영적인 풍요로움을 심어주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반이정의 접촉(touch)에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것들이 재 발견되고 간과했던 여러 일상의 요소들이 "아~~이런 식으로 느끼고 바라보고 생각할 수 있구나"하면서 사고의 폭을 넓혀준다. 또한 기발한 발상에 놀라고 그를 통해 숨겨진 비밀을 알아 탄복하며 지식과 지혜가 넓어짐에 눈이 훤해진다.

반이정의 예술 판독기 책 표지
반이정의 예술 판독기 책 표지

요즘같이 통섭이 강조되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한 분야에만 함몰되지 않고 정치, 사회, 경제 등 다양한 분야의 주제들을 주무르고 조합하여 하나로 연결한다. 스티브 잡스가 말한 'connect the dots'처럼 여러 경계들의 차이점과 유사점을 발견하면서 연결 짓는다. 결론을 내리지 않고 이런 가능성과 관점도 있구나 하면서 생각을 트게 한다. 정답지, 사전이 아닌 그래서 안내서(Guide Book)다. 이 책을 통해, 아니 반이정의 시각을 통해 건드려진 지적 호기심과 탐구는 독자들에게 좀 더 깊은 세계로의 자발적인 행동을 요구하며 자극한다.

​여러 단상 중 3가지가 유독 깊게 찌른다.

첫 번째는 Chapter 3. 하드코어 만물상에서의 '예술에서 대중성과 소통이라는 숙제' 단편이다.

필자가 클래식 작곡가다 보니 방관자가 아닌 실제 업종 종사자로서 같이 고민하고 대중의 무지에 같이 가슴 아파한다. 대중들이 해석의 부담 없이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형상 회화를 선호한다는 문장에서 형상 회회 대신 아무런 고민 없이 남녀노소 누구나 한 번만 듣고도 좋아해지는 쉬운 음악, 익숙한 음악으로 단어만 대체한다면 대동소이다. 예로 든 뉴에이지나 케니 지도 상업음악 관점에선 돈 버는 수단이 못된다. 더 쉽고, 더 편하고, 더 유치하고, 더 친숙하게 하향 평준화와 몰취향으로 치닫는다. 수억 번 울어먹은 이디엄의 반복과 도용인 음악에서 새로운 게 어디 있나.... 기존의 것을 조금만 비틀고 바꿔도 모르고 낯설다고 외면한다. 눈보다 더 취약한 게 귀다. 모른다. 거부한다.

미메시스 출판사에서 나온 반이정의 예술 판독기

두 번째는 Chapter 4, 섹스어필에서 '미모와 선정성의 가산점'이다.

창세기 성경 구절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로 서두를 열면서 타고난 미모가 전문 분야의 무관함에도 업종 평가에서 유리한 가산점이 작용하는 경우다. 겉으로 드러난 외형이 아니라 내면의 진가를 파악하고 그 가치를 인정해 주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수용자의 심미안과 미적 수준, 그리고 변별력이 있어야 한다. 예술가의 자질과 별개로 미모와 함께 어떤 이유에서인지 꽂힌 사람을 맹목적으로 좋아한다. 개인 추종은 우리나라같이 쏠림 현상이 심한 의타적인 민족에게 더욱 심하게 발생한다. 우리나라에서 클래식 음악계는 철저히 인물 위주로 움직인다. 자신의 감성과 판단, 기준이 아닌 남의 시선, 남의 판단에 의존하는 의타적이고 비독립적인 사고방식 탓인지 세계 유수의 콩쿠르에서 1등을 했다고 하면 대번에 영웅이 되고 언론은 기삿거리가 생겼다는 듯이 마구 달려들어 스타 만들기에 나선다. 관심이 지나칠 정도로 쏠리게 되고 우르르 몰려가 그 사람만 열광적으로 추종한다. 냄비근성이란 말로 대변되는 일시적이고 맹목적인 여론몰이와 관심의 집중 그리고 그것을 이용한 교조화가 심하다. 같은 곡을 서로 다른 연주자의 연주로 들려주고 자신이 선호하는 사람과의 일체 되는지 시험하는 블라인드 테스트를 해보면 결과는 정말 실소를 금치 못할 정도로 뒤죽박죽이다. 별로였다는 연주가 평상시 좋아하는 사람이 연주한 거라고 밝히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자신의 선택을 뒤집는다. 음악적 식견과 고상함이 없으니 그저 미모가 뛰어난 사람이 하면 음악이란 본질보다 허상에 쏠려 접근한다. 음악 애호가가 아니라 그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을 좋아할 뿐이니 클래식 감상 인구가 확산이 안된다.

세 번째는 Chapter 1. 브랜드 가치관의 '재활용 상품의 감동 플라세보'다.

여기선 예술의 생리, 즉 수용자의 만족감 플라세보를 채워주면 상업적인 대박이 가능할 거라는 예측으로 마치는데 음악에선 그래서 희귀성과 유일성을 충족시켜주는 방법으로 수용자, 소비자를 위한 맞춤형 헌정곡을 시도해 보았다. 이 세상에서 없는 오직 당신만을 위한 당신을 위한 찬양곡, 주제곡을 써드립니다! 이런 캐치프레이즈로 곡을 선물하는 거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등의 작곡가들도 모두 자신의 후원자, 패트런들에게 작품을 헌정하고 그들이 연주하는 걸 자랑스러워했다. 모차르트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아마데우스'에서도 살리에리가 모차르트의 빈 왕궁 입성을 축하해 작곡한 행진곡 악보를 황제에게 보여주고 황제가 그걸 직접 연주하니 감격스러워하는 장면이 나온다. 교회는 음악인들의 가장 훌륭한 직장이었다. 작곡가들은 미사를 비롯 여러 전례를 위한 작품을 생산해 내는 수공업 노동자였다. 전체주의 시대에도 음악은 민중을 단결시키고 선동하고 결집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국가는 대규모 집회를 위한 곡을 주문하는 주 고객이자 주문처였다. 애국가, 교가, 군가, 사가 등을 같이 제창하면서 소속감과 연대감을 느끼며 편안해 한다. 진영논리를 떠나 집회에 가면 스피커가 찢어져라 울려 퍼지는 노래들.... 그래서 필자도 구로에 있는 독지가, 무역업을 하는 (주)나래코리아 김생기 사장을 위해 그의 이름에서 착안한 <생기 넘치는 구로>라는 곡을 작곡해 헌정하였다. 아직 별 반응이 없으니 김생기 사장이 만족하지 못했다는 증거..... 음악에서도 '만족감의 플라세보'가 작용되어 곡을 받은 사람이 영광으로 여기고 기뻐해 기꺼이 주머니를 연다면 주문이 쇄도할 건데.... 선(先) 제작이다..... 작곡이야 뭐 하면 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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