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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128] Critique: 본 오케스트라 제3회 정기연주회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19.12.15 09:13
  • 수정 2019.12.15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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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여름, 백우주 음악감독을 중심으로 창단된 직장인 오케스트라인 본 오케스트라(Buon Orchestra)의 세 번째 정기연주회가 2019년 12월 14일 토요일 오후 7시, 피아니스트 김혜란이 협연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과 브루크너 교향곡 4번 '로맨틱'으로 열렸다.

브루크너 교향곡 4번을 연주한 본 오케스트라의 제3회 정기연주회
브루크너 교향곡 4번을 연주한 본 오케스트라의 제3회 정기연주회

본 오케스트라의 본은 한국어로 ‘근본’을 뜻하며 이태리어로는 ‘좋은’을 뜻하는 다중적인 의미로 일반적인 직장인이나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처럼 모여서 대중적인 음악을 연주하는 것도 좋지만 보다 더 아카데믹하고 깊은 수준의 음악들을 탐구하고 다루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근본에 접근하고 탐구하겠단 의미로 <본 오케스트라>라고 명명했다고 한다. 그래서 지난 공연 때는 거의 연주되지 않은 스트라빈스키의 교향곡 1번을 프로그램으로 삼았고 이번에도 일반 청중들에겐 낯설고 긴 브루크너라는 작곡가의 교향곡을 선택했다.

2부의 그 긴 브루크너, 연주자에게나 청중들에게나 큰 인내가 요구된 브루크너의 교향곡에선 청중들이 끝까지 착석해서 다 듣고 같이 해 주었다. 필자의 아픈 손가락이기도 한 브루크너 4번 교향곡의 한국 연주자들의 첫 실황 공연은 날 거 그대로의 브루크너의 민 모습이 나와 지금까지의 브루크너 연주가 얼마나 많은 대가들의 중재와 역할 덕인지 알게 된 시간이기도 했다. 직장인 아마추어 연주회에 오직 연주곡을 보고 그 곡을 들으러 가는 사람은 거의 없을 테다. 관객들은 전부 단원들의 친구, 가족, 지인일 수밖에 없고 연주자들이 좋아서, 이번 기회에 베토벤이나 브루크너를 연주해 보고 싶은 것과 그들이 하는 걸 그저 보러 간 일반 청중들 간의 괴리는 클 수밖에 없기 때문에 아마추어 연주회에서 클래식의 근본과 아카데믹의 탐구라는 명분을 내 건 본 오케스트라의 행보는 다른 동호회나 학생, 직장인 오케스트라에 비해 지향점에서 차이가 있다. 지휘자 백우주의 설명처럼 브루크너가 직접 붙인 4번 교향곡의 제목 '로맨틱'은 지금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인식되는 사랑, 낭만, 무드로서의 개념이 아닌 대자연을 향한 동경과 경외, 신비다. 그래서 높은 산 정상을 향해 나아가는 본 오케스트라의 현재와 미래의 모습이다. 1부의 베토벤이 끝나고 중년 여성분이 연신 브라보를, 중년의 남자분이 발음이 부정확한 해 정확히 무슨 단어인지는 못 들었으나 아마 '박수'라고 오케스트라를 향해 계속해 외치는 건 좋았는데 그들이 1부만 보고 갔다는 점(그래서 그들의 브라보와 박수는 음악이 아니라 지인인 아는 사람, 피아니스트에게 향했다는 명백한 방증)이 클래식 음악의 확산과 보급이 아닌 그저 지인 위주의 행사 참여로 밖에 머물지 않는 한국 클래식 음악회의 현상이다.

1부의 베토벤을 협연한 피아니스트 김혜란
1부의 베토벤을 협연한 피아니스트 김혜란

필연적으로 아마추어/직장인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핵심적인 몇을 제외하고는 들락날락할 테니 그런 조직에서 뭔가 장기간 숙련과 연습으로 음악적인 발전을 꾀하는 건 무리다. 그냥 지금의 단원들이 초심을 잃지 말고 삶에 바빠 '먹고 사는데' 메이지말고 쭉 같이 나이 먹어 가면서 음악을 즐기길 바란다. 스포츠나 연극이나 이런 단체에는 구성원들 간의 기량과 개성, 마인드와 성품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하나의 집합체로서 보다 자기를 들어내고 조화보다 자신의 솔로에만 신경 쓰고 집중하는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직장도 아니고 동호회에서 권위로 누르고 질서를 강조하기 보다 전부 소통을 강조하며 수평적인 관계를 요구할 터, 이들을 어떻게 잘 리드하면서 음악과 공동체 생활에서의 조화를 모두 이룰지가 관점이다. 동호회나 영리적인 목적이 아닌 비 직업적인 활동의 가장 큰 제약은 '취미'라는데에 있다. 골프든 낚시든 등산이든 동호인들의 활동은 어디까지나 여가(레저)다. 여가는 일상에서의 휴식이자 힐링이니 생계보다 느슨하고 빡빡하지 않는다. 하기 싫으면 안 하면 그만이다. 여가에서의 즐거움은 온전히 자신이 독차지하고 본인 위주가 되길 바라는 건 인지상정인데 그래서 여가활동을 여과 없이 충실히 이행하기 위해선 상호 간의 '양보'와 '배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질서'와 '존중'이 필수이다. 직장에서 출근 시간에 늦는 것과 합창단 연습 시간에 늦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제약'이 없기 때문에 더욱더 자발적으로 솔선수범을 해야 한다. 일면식도 없던 사람들이 단지 '음악'과 '연주'라는 공통된 관심사로 만나 성장하면서 음악회까지 기획, 완결인 무대에까지 선 것은 그 과정 자체가 인고와 큰 성취라는 사실을 더욱 잘 알기 때문에 음악으로 먹고사는 전업 작곡가에겐 감사 자체다. 어디까지나 음악으로 시작해서 음악으로 끝나는 음악이 목적이고 주가 되기 만을 바라는 건 그래서이다. 젊은 지휘자 백우주는 다재다능하고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고 있다. 명실상부 브루크너 지휘자요 내년에는 말러를 한다고 한다. 부디 그런 인재가 세상의 풍파에 지치고 물들지 않고 음악인으로서의 지금의 신념이 꺾이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 

본 오케스트라 음악감독 백우주
본 오케스트라 음악감독 백우주

앙코르는 옥에 티였다. 이미 왜 브루크너라는 다른 아마추어나 팝스 오케스트라가 매번 하는 지겹디 지겨운 레퍼토리,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식의 선곡이 아닌 본 오케스트라만의 철학과 차별점을 역설했다. 그러니 내용적인 면에서나 길이 면에서 브루크너에서 끝내야 했다. 오케스트라도, 관객도 장대한 브루크너라는 산 정상에 올라왔지 않은가! 그런데 회귀해서 글린카의 '루슬란과 루드밀라' 서곡이라니.... 알프스에 올랐으니 이제 긴장을 풀고 야호를 외치고 싶은 거 이해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점을 추구한다는 정통파 본 오케스트라이지 않은가.... 그것도 모자라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니 캐럴까지.... 도저히 그것까진 들을 수 없었다. 브루크너의 감동과 여운을 안고 싶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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