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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 신사(205) - 밤새도록이라도 바라보고 싶지만

서석훈
  • 입력 2014.05.31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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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창(소설가, 시인)
밤새도록이라도 바라보고 싶지만


왕년의 여배우 장화자가 역시 일시 휴업 중인 왕년의 영화감독 앞에서 "여유란 뭐가 받쳐줘야 생기는 거 아닌가요?" 했을 때 감독은 조용히 웃었는데 그 여유가 가리키는 즉 돈이 주머니에 들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었다. 주머니에 있는 한 오백, 그것은 빙산의 일각이고 복권 탄 돈 수억 원이 통장에 들어 있는데 이 시간에도 이자가 불어나고 있어 산낙지 두 접시에 소주 몇 병 마시는 정도는 하루 이자로도 충분할 지경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몇 백 들어내 봐야 한강에 배 지나가기였다. 몇 백은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돈인데 몸매가 좋고 얼굴이 생활에 찌들려도 아직도 화사한 이 여배우에겐 매우 긴요한 돈일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돈을 어떻게 무상으로 제공하겠는가. 당연히 오는 것이 있고 얻어 낼 것이 있어야 하는 것인데, 그것이 감각이든 느낌이든 쾌락이든 뭐든 하여튼 그녀의 시간을 사는 일이 바탕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쉽게 얘기해 `나하고 좀 놀자` 이것인데 이 여자라면 상당 기간 같이 놀아도 쉽게 싫증나지는 않을성싶었다. 다만 사람들의 시선이 좀 부담스러운데 워낙 추레한 인간이 여자는 어디서 골라 옆에 끼고 다니나, 뒤늦게 사법고시라도 패스했나, 아니면 숨은 알부자인가, 유산을 받아 지금 부동산 등 고정자신을 현금화시키고 있는 중인가, 그렇지 않으면 아이티 천재인가, 천재들은 특히 사업천재들은 외양은 신경 쓸 여력이 없고 그저 눈부신 성과를 거두어 엄청난 부와 명성을 얻지 않는가.
"화자씨. 언제 시간 한 번 내실래요?" "왜요?" 시간 한 번 내달라는 게 아니라 무슨 일이 있으니 시간을 내보라는 뉘앙스로 들렸는데 그건 곧 사업적인 얘기 같았던 것이다. "관심 가질만한 일이 있을 것 같아서요." 이 정도로 감독은 얘기하였는데 "영화 관련이에요?" 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영화 쪽 일이라면 내가 나서야 되지 않겠는가. 그런 말투였다. "영화 얘기도 해야 되겠죠?" 이러한 복합적인 의미가 담긴 말을 감독은 하였다. 감독의 생각은 일단 `다음에 우리 또 보자. 그때 가서 내가 뭘 할지는, 널 위해 무얼 하려고 할지는 이제부터 내가 좀 천천히 생각해 보련다.` 이런 것이었다. 즉 여자란 또 만나는 데 의의가 있는 것인데 짝사랑이나 숭배와 연모의 감정만 가지고 울고 있는 건 인생을 제대로 즐기지 않겠다는 것과 다름이 없었던 것이다. 얼마나 삼삼한 여자들을 생각만 하다 놓쳤는가. 물론 그 돈이란 게 받쳐주지 않으니 적극성을 내보일 수가 없었지. 헌데 이제 돈이 있으니 조금 조심스러워지는구만. 그러나 이런 여자를 곁에 둘 수만 있다면 어느 정도는 투자가 이뤄져야 하겠지. 그동안 돈 있는 영화감독을 보지 못했을 터이니 돈 좀 쓰는 날 보면 아주 신선하지 않겠나. 장화자의 눈에 어떤 기대감이 떠오르고 그녀의 몸은 밤의 정기를 빨아들인 듯 매우 생기 있게 피어나고 있었다. 감독은 밤새도록이라도 맞은편의 육체를 보고 싶었지만 이쯤에서 칼같이 미련을 버리고 다음을 위해 일어서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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