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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순만 칼럼 - 오늘맑음] 평생의 역작은 그윽하게 울린다

임순만 언론인·소설가
  • 입력 2019.12.11 18:04
  • 수정 2020.02.13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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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대함은 옳다고 믿는 것에 치중할 수 있는 순수함으로부터 나온다. 인간의 고집이 세상의 선함을 이기면 곤란할 것이다."

겨울이 되면 밤늦은 시간에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 나그네’를 듣는 것이 참으로 좋다. 바람이 몰아치는 추운 겨울밤에 독일 바리톤 가수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1925~2012)의 서정적이고도 기쁜, 어둡고도 맑은 ‘겨울 나그네’를 듣는 것은 얼마나 큰 위안인가. 피셔 디스카우의 노래만이 아니다. 그가 독일 가곡 리트(Lied)를 단정하게 부르도록 든든하게 받쳐주는 제럴드 무어의 피아노 반주는 또 얼마나 근사한가. 알프레드 브렌델, 다니엘 바렌보임, 스비아토슬라브 리히터 등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들이 앞 다투어 그의 가곡 반주를 맡을 정도였지만 역시 최고의 파트너는 전문반주자 제랄드 무어였다.

독일 바리톤 가수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 그의 완벽한 발음은 흔히 ‘음악적이지 못한 언어’로 불리는 독일어의 숨은 아름다움을 최대한 드러낸다는 평가를 받는다(사진= 위키피디아).
독일 바리톤 가수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 그의 완벽한 발음은 흔히 ‘음악적이지 못한 언어’로 불리는 독일어의 숨은 아름다움을 최대한 드러낸다는 평가를 받는다(사진= 위키피디아).

오래 전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섰던 피셔 디스카우는 깊고 투명한 음색에 고독한 제스처를 보여주며 마치 성직자와 같은 분위기로 노래했었다. 24개의 연가곡 전곡을 부르는 동안 그는 단 한 번도 과장된 몸짓을 취하지 않았고,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지금 듣는 DVD 음반은 그보다 뒤에 제작된 것으로 머리카락은 더 희어지고 얼굴의 주름은 늘었지만, 음색은 오히려 더 깊어져 보인다. 반듯하게 정면으로 서서 이마로 노래하는 듯한 그의 겨울나그네는 이 밤의 깊은 곳에 차곡차곡 쌓인다.

슈베르트 가곡을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불멸의 목소리로 남은 피셔 디스카우는 독특한 그의 음색도 장점이지만,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를 새기며 정성을 다하는 그의 완벽한 발음은 흔히 ‘음악적이지 못한 언어’로 불리는 독일어의 숨은 아름다움을 최대한 드러낸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결같은 안정감과 최고의 수준. 작품을 연구하고 연습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고르고 뛰어난 기량을 무대 위에서 조심스럽게 펼쳐보였다.

우리에게 귀에 익은 5번 곡 ‘보리수’는 몇 차례 반복해서 들을 수밖에 없다. 겨울밤 찬바람 속에서 청년은 ‘그대는 거기서 안식을 찾으리(There you would find rest)’라고 탄식하며 보리수 곁을 떠난다(‘보리수’의 독일어 원제는 ‘Der Lindenbaum’인데 DVD음반의 영어 자막은 ‘a lime tree’라고 소개한다). 그러나 슈베르트의 노래는 실연의 슬픔으로 그치지 않는다. 어떤 소망이 잉태하는 듯 당당한 느낌을 준다.

피셔 디스카우는 평생 “우리는 주인의 포도밭에서 일하는 일꾼입니다. 그 이상은 안 되죠.”라고 말했다고 한다. ‘겨울나그네’의 세계적인 대가가 된 성악가가 평생 작곡가의 악보에 충실 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때로는 파격적으로, 과감하게 노래하고 싶은 실험정신이나 충동 같은 것은 없었던 것일까.

그러나 그는 믿고 있었다. 일꾼이 주인을 앞서가면 안 된다는 것, 성악가가 작곡가를 앞지르면 안 된다는 것을. 피셔 디스카우는 그래서 대가인 것이다. 그의 깊은 고독과 자연스러운 톤은 필경 그 오랜 충실함에서 나오는 것일 터이다. 그의 성악은 일상의 한결같음으로부터, 성실한 루틴(routine)으로부터 평생의 역작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일깨운다. 이 겨울밤 그의 노래를 듣는 것은 그래서 그윽하다.

겨울바람 속에서 생각한다. 청년시절 겨울방학에 시골집으로 돌아가 눈이 많이 내린 날 늦도록 깨어있노라면 바람은 밤새 문풍지를 울리고, 가까운 뒷산을 쓸어가는 솔바람 소리까지 들리곤 했다. 그런 밤에는 거기 꿩이며 토끼며, 참새들은 다 어느 산에서 잠들었을까 하는 궁금한 생각이 스쳐간다.

아버지는 추운 날 아침에 뒷산엘 다녀온다는 심심한 아들 녀석을 넉넉하게 쳐다본다. 아무 말 없이, 그러나 아버지는 뭔가 짚이는 것이 있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아들을 아는 사람의 이름이 아니던가.
아버지는 추운 날 아침에 뒷산엘 다녀온다는 심심한 아들 녀석을 넉넉하게 쳐다본다. 아무 말 없이, 그러나 아버지는 뭔가 짚이는 것이 있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아들을 아는 사람의 이름이 아니던가.

다음날 새벽에 뒷산으로 나가본다. 거기 비탈에 어린 소나무들이 무거운 눈을 이고 서 있다. 추운 날 아침이라 더욱 파릇했던 솔잎 빛깔. 집으로 돌아올 때 대문 앞에서 아버지와 마주친다. 아버지는 아침에 어디엘 다녀오느냐고 묻는다. 아들은 뚜렷하게 대답할 무엇이 없다. 그냥요, 뒷산에요. 아버지는 추운 날 아침에 뒷산엘 다녀온다는 심심한 아들 녀석을 넉넉하게 쳐다본다. 아무 말 없이, 그러나 아버지는 뭔가 짚이는 것이 있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아들을 아는 사람의 이름이 아니던가.

새해에는 괜히 뒷산으로 가보았던 그런 추운 아침으로 돌아가고 싶다. 아버지에게 뭐라고 대답하기 어려웠던 그런 날이 그립다. 돌아보면 거기엔 선함과 순수함이 있었다. 흰 눈으로 덮여 대부분의 사물과 색깔이 사라진 산등성이에 유일하게 빛을 잃지 않은 소나무의 청록색. 그것이 청년의 마음을 일깨웠다.

너 나 할 것 없이 현대인은 누구나 바쁘게 살아간다. 바쁜 삶이 칭송되다보니 이제 바쁘지 않은 삶은 게으른 것으로 간주되기까지 한다. 바쁜 것만이 선(善)인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한국의 많은 가장들이 가정을 돌볼 새도 없이 아침부터 밤늦게 일하며 시류에 따라 바쁘게 살아온 결과, 그런 삶의 방식이 꽤나 미흡한 것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인정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바쁜 것만이 선(善)인 것처럼 여겨진다. 하루하루를 만들어가는 방식은 대체로 바쁜 것보다 구별된 날들, 스스로의 내부를 알차게 하는 날들이 더 좋다."

하루하루를 만들어가는 방식은 대체로 바쁜 것보다 구별된 날들, 스스로의 내부를 알차게 하는 날들이 더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담대함은 옳다고 믿는 것에 치중할 수 있는 순수함으로부터 나온다고 생각된다. 세상의 많은 것들에 모두 기웃거리는 바쁨으로부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아주 적을 것이다. 그보다는 구별할 줄 아는 생활, 잡다한 것은 집어치우고 몇 개의 핵심적인 것에 주의를 하며 나아갈 줄 아는 생활이 훨씬 더 아름다운 것 같다. 성악가가 작곡가의 의도를 앞서가면 안 되듯, 인간의 고집이 세상의 선함을 이기면 곤란할 것이다. (*)

임순만 소설가·언론인(전 국민일보 편집인·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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