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세계경영 김우중 대우 회장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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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세계경영 김우중 대우 회장 별세
  • 김홍국 칼럼니스트
    김홍국 칼럼니스트 archomme0@gmail.com
  • 승인 2019.12.10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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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가정신, 도전정신 잃어버린 CEO들이 돌아봐야 할 83년 삶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세계경영의 전도사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9일 밤 1150분께 경기도 수원 아주대병원에서 숙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83.

해외에 머물러온 김 전 회장은 지난해 말 건강 악화로 귀국해 1년여 입원과 통원을 반복하며 알츠하이머병으로 이한 투병생활을 이어왔다. 건강 악화로 이날 저녁 아주대병원에 입원했던 그는 평소 뜻에 따라 연명치료를 받지 않고 생을 마감했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세계경영의 전도사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9일 밤 11시50분께 경기도 수원 아주대병원에서 숙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83세.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세계경영의 전도사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9일 밤 11시50분께 경기도 수원 아주대병원에서 숙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83세.

 

세계경영, 수출경영의 선구자, 남북경협 선도, 꿈이 스러지다

김 전 회장은 한국기업을 세계무대로 뻗어나가게 한 세계경영과 수출경영의 선구자다. 1936년 대구에서 부친 김용하와 모친 전인항 사이의 6남매 중 4남으로 태어난 그는 6.25 전쟁으로 아버지가 납북되자 15세에 홀어머니 아래서 소년 가장으로 가족들의 생계를 도맡는 어려운 생활을 해야 했다. 휴전 후 상경해 경기중학교와 경기고등학교에 진학하고 1956년 연세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해 학창 생활을 보냈다.

그는 1966년까지 한성실업에서 근무하다 31살 때인 1967년 당시 자본금 500만원으로 대우실업을 설립하면서 경영일선에 나섰다. 그가 현대그룹에 이어 자산 규모 국내 2위의 기업집단을 일궈낸 대우그룹은 1999년 공중분해됐다. 대우그룹은 1990년대 김 전 회장의 세계경영을 기치로 급격히 성장했고, 해체 직전 해인 1998년 대우의 수출액은 186억달러로, 한국 수출액 1323억달러의 14%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거대한 공룡기업으로 성장했다.

대우그룹은 무역·건설·조선·중장비·자동차·전자·통신·컴퓨터·관광·호텔·증권업 등 광범위한 분야를 다룬 대기업이었으며, 수출사업에 주력하여 1975년 최다액 수출유공상, 198530억 불 수출탑 등을 수상했다. 다양한 해외사업으로 탄자니아, 헝가리, 부다페스트, 에티오피아, 미얀마까지 지사를 개설하는 등 세계경영의 선두주자로 각광을 받았다. 199210월 합작사업 승인을 시작으로, 199512월말 국내 기업 중 최초로 남포에 민족산업총회사라는 합영회사를 설립하는 등 남북경협을 선도했다. 그러나 무리한 차입경영과 확장경영으로 국내 60조 원, 해외 30조 원 등 총 90조 원에 달하는 국내외 부채를 감당하지 못한 끝에 IMF 외환위기의 와중에 1998년 그룹이 해체되고 그 역시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수출신화 샐러리맨 우상으로 부상, 꿈을 이룬 도전정신

그는 대우의 수출 신화를 통해 샐러리맨의 우상으로 부상했다. 그는 1969년 한국 기업 최초로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에 해외지사를 세웠고, 1975년에는 종합상사 시대를 열기도 했다. 이후 본격적으로 부실기업 인수를 통한 사업 확장에 나섰다.

1971년부터 1975년까지는 제3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에 맞추어 생산구조 고도화, 경제규모 확대를 도모하기 위하여 경공업 국제규모화, 업종 다양화로 금융업에까지 진출했다. 1976년부터 1979년까지 기업확장기에는 본격적인 중화학부문·중장비·철도·엔진·조선 등의 공업구조의 고도화를 추구하였다.

1976년 한국기계(대우중공업), 1978년 새한자동차(대우자동차대한조선공사(대우조선해양) 등을 인수한 뒤 짧은 시간에 경영정상화를 일궈내 한국 중화학산업을 이끌었다. 대우는 1976~1978년 에콰도르·수단·리비아 등 중남미·아프리카 진출에도 도전했다.

그 뒤 1980년부터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중화학 부문에 대한 투자조정, 산업구조 재편성, 성장정책에서 사회개발정책으로 우선순위를 변경하여 안정화를 추구하여, 해외자원개발 참여, 해외건설 및 조선수주, 그리고 대한전선의 가전 분야를 인수하여 전자 분야에 참여하게 되었고, 자동차업계에도 본격적으로 진출하게 되었다.

대우그룹은 주식회사대우가 중심이 된 무역·경공업·건설 분야, 대우중공업주식회사가 중심이 된 일반기계 분야, 대우조선공업이 중심이 된 조선·플랜트 분야, 대우자동차주식회사, 대우전자주식회사가 중심이 된 전자·통신 분야, 동양투자금융주식회사·대우증권주식회사의 금융 분야, 화학·운수·서비스 등에 걸쳐 사업을 펼쳐나갔다.

1982년에는 무역과 건설부문을 통합해 대우를 설립했다. 이후 자동차·중공업·조선·전자·통신·금융·호텔 등 전방위 사업 확장을 통해 그룹화에 나섰고, 1999년 그룹 해체 직전 대우는 계열사를 41곳까지 늘렸다. 1998년 대우그룹의 자산총액은 76조원이 넘었고, 매출은 91조원에 이르렀다. 1989년에는 에세이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를 저술해 출간 6개월 만에 100만부가 팔리는 등 샐러리맨들의 위대한 영웅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공격경영의 악순환, “청년들 해외진출-창업 도와달라유지

문제는 사세가 커졌지만 부실의 규모는 더욱 커지는 공격경영의 악순환이 이어졌다는 점이다. 그룹 해체 직전인 1998년 부채 규모는 89조원에 달해 자산총액을 넘어섰다. 구조조정 과정에서는 공적자금 30조원이 투입됐다. 외환위기로 유동성 위기에 빠져든 뒤 19998월 채권단의 기업재무구조개선작업(워크아웃)에 들어간 뒤 그룹은 해체됐다.

그룹 해체 후 검찰의 수사를 피하기 위해 해외 도피 생활을 지속하다가 20056월 입국하여 분식회계, 횡령 등의 혐의로 기소된 뒤 200712월 대통령 특사로 사면되었다

김 전 회장은 경영에서 물러난 뒤 2010년부터 지와이비엠(GYBM·Global Young Business Manager) 양성사업을 벌여, 베트남·미얀마·인도네시아·타이 등 동남아시아에 청년사업가 1천여명을 배출하기도 했다. 대우그룹 임직원들은 그룹 해체 이후로도 매년 창업기념일에 기념행사를 진행해왔는데, 김 전 회장이 공식석상에 모습을 보인 것은 20173월 서울에서 열린 대우창업 50주년행사 때가 최후의 장면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 이후로 김 전 회장의 행보는 공개된 적이 없으며, 2017<김우중 어록: 나의 시대, 나의 삶, 나의 생각>을 펴냈다.

김 전 회장은 청년들의 해외진출을 돕는 지와비엠 교육사업의 발전적 계승과 함께 연수생들이 현지 취업을 넘어 창업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체계화해달라는 유지를 남겼다고 대우 관계자들은 그의 마지막 목소리를 전했다.

1985년 연세대에서 명예경제학박사, 1986년 고려대에서 명예경영학박사, 1988년 미국 조지워싱턴대학에서 공공봉사 부문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사회활동으로는 1978년 대우문화복지재단을 설립했고 1982년 아시아 경기조직위원회 부위원장, 1983~86년 요트 협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1989년 섬유산업연합회 명예회장, 1988년 대한축구협회 회장, 대한체육회 부회장, 1991년 국제민간경제협의회 회장 등을 지냈다. 수상 경력은 철탑·동탑·금탑산업훈장과 한국의 경영자 대상, 다액(多額)수출 대통령유공기, 수단 최고훈장, 국제상공회의소 국제기업인상, 마로니에 기업문화상, 파키스탄 민간최고훈장 등이 있다.

 

도전하는 글로벌CEO, 안주하는 기업가에 경종 울리길

김 전 회장의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러진다. 빈소는 아주대병원 1호실에 마련될 예정이고, 조문은 10일 오전 10시부터 가능하다. 영결식은 12일 오전 8시 아주대병원 별관 대강당에서 열린다. 장지는 충남 태안군 소재 선영이다. 유족으로는 부인 정희자 전 힐튼호텔 회장, 장녀 김선정 재단법인 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 장남 김선협 아도니스 부회장, 차남 김선용 벤티지홀딩스 대표와 사위 김상범 이수그룹 회장 등이 있다.

치열하게 한국경제와 경영의 현장에서 평생을 고뇌하며 업적과 공과를 남겨온 고인을 추모한다. 기업내부 유보금만 늘린 채 중소기업과 하청기업에 갑질하는 이들, 부당한 편법과 특혜에 머물며 기업가정신을 잃어버린 일부 한국의 경영자와 CEO들이 그의 치열했던 삶과 용감했던 기업가정신을 돌아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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