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와중에 백기사는 아니더라도 그런 가능성이 있는 사내가 나타나 생활의 어려움에 대해 묻고, 영화 같은 것도 제작할 기미를 보이자 장화자는 표정은 차분한 가운데 가슴은 다소 흥분한 상태였다. 사실 인생이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귀인이 동쪽에서 올지 서쪽에서 울지 북극에서 올지 남극에서 올지 구파발에서 올지 천안에서 올지 지인의 이름으로 올지 전혀 모르는 낯선 사람에게서 올지, 우리의 짧은 생각으로는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참으로 원한 대로 흘러가는 것도 아니고 또 불행 속에서도 뜻하지 않은 행운이 오니 이는 명심보감 같은 고전에서 잘 얘기하고 있는 바 그대로이다. 장화자에게 귀인이란 어쩜 맞은편에 앉은 이 왜소한 사내, 어딘가 주눅 든 것 같고 기백이 없어 보이고 행운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이 사내가 아니라고 감히 단정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 이 남자는 이미 커다란 행운을 거머쥔 바 있으니 주머니에 든 복권 탄 금액 500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하겠다. 주머니는 껌값이고 큰돈은 은행통장에 잠겨 있는 바, 원한다면 언제라도 꺼내 쓸 수 있고 송금할 수도 있고 결제할 수도 있고 이자나 붙게 내버려둘 수도 있고 주식계좌로 이전할 수도 있고 세금도 내고 건강보험금도 내고 여차하면 지금까지 못 내던 국민연금도 자동이체로 낼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정의 남자가 속사정을 감추고 여자 앞에서 조용히 앉아 있으니 장화자가 그까지는 짐작을 못하지만 뭔가 심상찮은 기운이 남자에게서 지금 뿜어져 나오는 것을 무시할 수 없었다.
"화자씨는 행복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남자가 한 말은 뜬금없기도 하지만 무슨 속셈인지 알 수도 없었다. 장화자는 그러나 이 남자의 비위를 어느 정도 맞추기로 작정하고 있었으니 "행복요? 글쎄요. 그걸 느껴본 지가 언제인지 모르겠네요." 하고 대답했다. 가련한 여인, 남자가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알 수 없는 동정심과 야릇한 애정 같은 것이 서려있었다.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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