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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 신사(203) - 귀인은 어디에서 오나

서석훈
  • 입력 2014.05.17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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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창(소설가, 시인)
40대의 동영상 제작자 즉 감독께서 왕년의 여배우 장화자를 상대로 깊은 밤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바, ``요새 뭐 어려운 일이 없냐`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그녀의 마음에 깊은 여운을 남겼다. 여성이, 특히 미모가 출중하고 몸매 또한 뇌쇄적인 경우엔 흔히 여성의 일반적인 심성이나 감성이 빠져있다고 지레 짐작하기 쉬우나 여자는 여자로서 여자의 미덕을 또는 악덕을 잘 보존하고 있기 마련이다. 해서 장화자 또한 생활의 곤궁함을 대놓고 내색하진 않으나 근래 들어 어린 딸 하나 키우는 게 왜 이리 힘든지, 돈은 다 어디로 갔는지, 사내는 또 다 어디 있는지 하는 의문과 함께 신세한탄이 입 밖으로 나올 지경에 이르러 있었다.

그런 와중에 백기사는 아니더라도 그런 가능성이 있는 사내가 나타나 생활의 어려움에 대해 묻고, 영화 같은 것도 제작할 기미를 보이자 장화자는 표정은 차분한 가운데 가슴은 다소 흥분한 상태였다. 사실 인생이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귀인이 동쪽에서 올지 서쪽에서 울지 북극에서 올지 남극에서 올지 구파발에서 올지 천안에서 올지 지인의 이름으로 올지 전혀 모르는 낯선 사람에게서 올지, 우리의 짧은 생각으로는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참으로 원한 대로 흘러가는 것도 아니고 또 불행 속에서도 뜻하지 않은 행운이 오니 이는 명심보감 같은 고전에서 잘 얘기하고 있는 바 그대로이다. 장화자에게 귀인이란 어쩜 맞은편에 앉은 이 왜소한 사내, 어딘가 주눅 든 것 같고 기백이 없어 보이고 행운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이 사내가 아니라고 감히 단정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 이 남자는 이미 커다란 행운을 거머쥔 바 있으니 주머니에 든 복권 탄 금액 500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하겠다. 주머니는 껌값이고 큰돈은 은행통장에 잠겨 있는 바, 원한다면 언제라도 꺼내 쓸 수 있고 송금할 수도 있고 결제할 수도 있고 이자나 붙게 내버려둘 수도 있고 주식계좌로 이전할 수도 있고 세금도 내고 건강보험금도 내고 여차하면 지금까지 못 내던 국민연금도 자동이체로 낼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정의 남자가 속사정을 감추고 여자 앞에서 조용히 앉아 있으니 장화자가 그까지는 짐작을 못하지만 뭔가 심상찮은 기운이 남자에게서 지금 뿜어져 나오는 것을 무시할 수 없었다.

"화자씨는 행복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남자가 한 말은 뜬금없기도 하지만 무슨 속셈인지 알 수도 없었다. 장화자는 그러나 이 남자의 비위를 어느 정도 맞추기로 작정하고 있었으니 "행복요? 글쎄요. 그걸 느껴본 지가 언제인지 모르겠네요." 하고 대답했다. 가련한 여인, 남자가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알 수 없는 동정심과 야릇한 애정 같은 것이 서려있었다.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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