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마음
"화자 씨, 요즘 뭐 어려운 일 있습니까?"
왕년의 영화감독이 왕년의 여배우 장화자씨에게 이렇게 안부성 물음을 던졌을 때 장화자는 사실 가슴 속에서 찡하며 올라오는 게 있었다. 여자의 어려움에 대해, 즉 아이를 데리고 홀로 생활하는 여자의 어려움에 대해 물어오는데 그 누가 가슴에 파문이 없으리오. 사실 곁은 화려해 보여도 실사정을 알면 동정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여배우라는 존재의 사는 모습이었다. 그래도 영화 몇 편에 출연했다고 허드렛일이나 얼굴 팔리는 곳에서 일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잘난 척 뼈대고 있어봐야 누구 하나 도와주거나 일거리를 주지도 없으니 속만 새까맣게 타들어가는 게 여배우의 삶이었다.
그런 여배우들이 제일 손쉽게 빠져드는 게 재력 있는 남자를 만나 일시에 거액을 받거나 넉넉한 생활비를 타내는 일인데, 그렇다고 아무 남자나 만나 연애라든가 살림이라든가 했다간 뒤돌아오는 건 폭력이나 채권 채무 및 간통 재판이기 십상이다. 그 와중에서 상처받는 아이도 생각해야 한다. 때문에 남자를 만나는 건 신중할 수밖에 없다. 제일 좋은 건 적당한 재력에 자신을 사랑하고 아이를 예뻐해주고 변함없는 다정함과 애정으로 한평생 가자고 하는 남자지만, 그런 남자라면 세상 모든 여자들이 원하고 있고 또 같이 살아봐야 그러한 인간인지 알 수 있으므로 이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튼 이 정도 미모와 뇌쇄적인 몸매와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는 자신에게 합당한 남자가 없다는 건, 우선 자신의 재능을 펼쳐 몸값을 좀 더 올린 후에 남자를 고르라는 뜻으로 알고 그러한 기회를 기다리고 있던 바, 이 영화감독 작자가 나타나 영화이야기도 꺼내고 또 어려운 일 없냐고 물어오니 다소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사는 게 다 그렇죠, 뭐." 어려운 일이 한 두가지겠냐만은 우선 이렇게 일반적인 운을 떼고 그 다음 사내의 반응을 보는 게 맞을 터였다. 산낙지 두 접시를 시켜놓고 소주를 마시며 잠시 지켜본 바 이 왕년의 감독은 자신에게 깊이 빠져 있는 듯해 뭔가 노리고 있거나 남다른 의지를 펼쳐보이고자 하는 듯했다. 장화자는 `내 팔자가 좀 피려나` 성급한 생각을 했다.
"그래도 살기 나름이죠." 한참 후 감독은 꽤나 묘한 대답을 했다. 살기 나름이니 지금이라도 제대로 살아보지 않겠냐는 뜻이 내포되어 있는 듯했다. 장화자의 입에 어떤 미소가 머금었다.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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