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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 신사(200) - 여인의 어려움에 대해서 묻다

서석훈
  • 입력 2014.04.19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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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창(소설가, 시인)
여인의 어려움에 대해서 묻다


왕년의 영화배우 장화자는 30대 후반의 이혼녀로 딸 하나를 키우며 특별한 수입 없이 지내고 있는 바, 한때 그의 영화에 출연한 적 있는 감독의 호출을 받고 깊은 밤 산낙지를 먹으며 술잔을 나누고 있는 중이었다. 여자로서 한창 성숙한 경지에 이른 장화자는 스스로 그 재능과 외모와 열정이 천하에 나설 만 하다고 여기고 있었으나 아직 때가 아니거나 이르거나 귀인을 못 만나 그 재능을 썩히고 몸매를 놀리고 열정을 발산하지 못하고 있다고 여기고 있었다. 해서 누군가 그녀를 알아보고 제대로 쓰기만 한다면 그녀 자신 뿐 아니라 그 자에게도 큰 이익과 행운을 안길 거라고 자신하고 있었다. 그 옛날 천년 전에도 낚시를 하며 하세월을 보내고 있는 인물이 적지 않았는 바, 현대에 이르러서도 그 점은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 현대는 여성이 남자와 동일하게 때론 그 이상으로 몸값이 나가는 바 낚시가 아니라 화장을 하고 몸매를 가꾸며 일정 수준의 교양을 쌓고 기다리고 있을 때 한 귀인이 나타나 동반성장을 꾀한다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 아니겠는가.
영화를 하나 하긴 해야 한다고 영화감독이 몇 잔 마셔 붉으스레한 얼굴로 말했을 때 장화자의 가슴은 뛰고 있었지만 크게 내색은 않고 그 다음 말을 차분하게 기다렸다. 감독으로 말하자면 주머니에 복권 일등 탄 게 있어 아무것도 안하고 지내도 평생 먹고 살 돈이 있었는 바 쪽박 차기 쉬운 영화를 굳이 하지 않더라도 팔자 좋게 지낼 수 있는 형편이었다. 그러니 예술적 열정과 특별한 소임으로 영화를 찍는다면 모를까. 이 돈을 투자하여 대박을 노리기엔 부담이 크다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 영화를 찍는다 해도, 투자를 받아 자신의 위험부담을 줄이고 감독료만 받아 챙기는 것이 가장 좋은데 인기감독도 해외영화제를 밥 먹듯이 드나드는 유명감독도 아닌 바에 누가 그렇게 감독료 주며 써 먹으려 하지 않는 게 영화판의 현실이었다. 해서 느긋하게 영화 찍자는 말만 꺼내놓고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여배우와 친분관계를 쌓아가며 좀 즐기자는 생각이 없지 않았다. 감독으로선 별 아쉬울 것도 없이, 뇌쇄적인 장화자를 앞에 놓고 운이나 떼어보는 것인데 정화자로선 생계가 걸린 문제이고 앞날이 걸린 문제라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고 심하게 말하면 살을 떨며 앉아 있는 중이었다.
"화자 씨, 요즘 뭐 어려운 일 있습니까?" 감독의 갑작스런 이 말은 지나가는 안부성 발언이기보다는 깊숙이 여인의 심장에 던지는 화두였다. 장화자는 여인의 어려움에 대해 묻는 남자를 애절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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