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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 신사(22) - 누군가는 울어도 누군가는 즐거운 게 인생

서석훈
  • 입력 2010.08.07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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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창(소설가, 시인)
지난주에 백팔만이 ‘경마는 짧고 인생은 길다’라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소리를 우리는 들었다. 탁주를 한 잔 걸치고 다시 당나귀를 타고 떠난 백팔만이 몇 시에 집에 돌아갔는지는 알 수 없다. 몇 시가 뭔 상관인가? 돈을 잃은 루저가 해시(21시-22시 59분)에 들어가든 자시(23시-00시 59분)에 들어가든 빈털터리 신세가 바뀔 리가 있는가?
한편 술을 한 잔 마셔 얼굴이 알맞게 달아오른 마돈걸은 유세련 오빠가 축구 선수 베컴처럼 걸어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남자가 한 번 멋지면 언제 어느 순간에라도 멋지지 않기는 참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세련은 마돈걸이 이미 전작이 있었음을 귀신같이 알아보고 “일차는 누구하고 하고 이차로 날 불러내나?”하고 뼈있는 발언을 하였다. 물론 유세련은 질투 따위를 하는 자가 아니었다. 그는 현장의 여자를 그 자체로 최대한 즐기고 그러고도 우려먹을 게 있으면 가급적 우려먹는 자였다. 허나 마돈걸은 만만한 여자가 아니었다. 유세련은 마돈걸에게만은 함부로 책략을 쓰지 않고 있었다. 아주 큰 것을 노리고 있는지도 몰랐다. 큰 것이 뭔지는 우리 같은 신사 숙녀들은 쉽게 짐작할 순 없지만 말이다. “경마에서 좀 땄어. 해서 술 한 잔 사려고. 같이 마시던 언니는 신랑이 밥 달라고 운다며 먼저 갔거든.” 마돈걸은 입만 열면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지만 보다 시피 악의는 없었다. 언제나 돈을 땄다고 말하는 건 그녀의 성격이었다. 그렇다고 그녀는 방금 전에 어떤 남자와 헤어졌다고 고백하는 여자는 아니었다. 그런 게 쓸데없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경마? 사업 땜에 바빠서 신경을 안 썼더니 거긴 어떻게 돌아가는 지 다 잊었다.” 뭘 어떻게 돌아가나? 돈을 걸고 말이 뛰고 그리고 이기든 지든 결판이 나는 거지. 무슨 경마 행정가라도 되는 양 점잔을 빼고 있어.
유세련은 사실 어떤 여편네를 등친 돈으로 잡은 코스닥 주식이 폭락하는 바람에 기분이 영 꿀꿀했는데 마침 마돈걸이 휴대폰을 때린 것이다. ‘돈을 땄다니 오늘은 풀코스로 얻어먹어도 되겠군.’ 하고 그는 생각했다. ‘얻어먹으면 나도 대접을 해야지. 뭘 대접하나?’ 유세련은 음흉한 미소를 띠며 속으로 웃고 있었다. 발음도 어려운 ‘메독’이라는 와인 한 병을 나누어 마시며 세계 경기 회복 같은 격에 어울리지 않는 얘기를 좀 했더니 머리가 다 지끈거렸다. 마침 마돈걸이 모 연예인 얘기를 하자 유세련은 이때다 싶었다. 유세련은 연예인이라면 기자보다 더 빠삭했는데 친구 중에 엑스트라가 한 명 있기 때문이었다. 해서 촬영장에서의 스타들의 비하인드 스토리에 특히 정통하였고 스토리가 마르면 때로는 몸소 창작하기도 했다. 엽기적이고 선정적인 스토리를 지어내는 데는 유세련 따라올 자가 없었다. 두 사람은 적당히 취기가 올랐다. 누가 빈털터리가 되건 누군가는 즐거운 게 인생이라는 것이었다. 어쩜 인생의 묘미 아니겠는가 싶었다.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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