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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 신사(192) - 네가 이 여자보다 나은 게 뭐가 있느냐

서석훈
  • 입력 2014.02.22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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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창(소설가, 시인)
네가 이 여자보다 나은 게 뭐가 있느냐


왕년의 배우 장화자가 스타박스에 나타나자 사람들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쏠렸다. 일단 한 번 봐둘만 한 여자인 건 분명했다. 세월이 흘렀어도 이혼녀에 애가 하나 있어도 그녀의 몸매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성숙해지고 풍만해지며 성적인 요염함을 물씬 풍기고 있었다.
“오랜만이에요.”
장화자가 먼저 인사했다. 감독은 그녀의 멋진 모습에 반은 넋이 나가 있었던 관계로 “네 ...”하고 말을 더듬기만 했다. 봐라, 일식집에 고급 바에 저녁 내내 공을 들이고도 포옹한 번번 못하고 떠나보내야 했던 미나를 떠올리곤, ‘네가 이 여자보다 나이만 좀 어리지 나은 게 뭐가 있느냐, 벌써 풍겨오는 냄새부터 다르지 않느냐. 이 성숙미를 너는 아느냐?’ 그런 말을 속으로 하고 있었다.
“지금도 영화 하세요?” 장화자는 바로 물었다. 어디서 오느냐, 누구 하고 사는냐, 그런 질문도 없이 자신의 관심사에 대해서 돌직구를 던진 것이다. “네 준비 중입니다.” 이 말은 감독이라면 흔히 하는 얘기로 그놈의 준비가 범위가 하도 넓어서, 십 년을 놀고 있어도 당구장에서 후배들과 자장면 먹으며 공 치다가 ‘올해는 영화 들어가야 될 터인데’ 이 말 한마디만 해도 그건 준비인 것이다. 누구한테건 전화해서 ‘요즘 뭐하시냐’ 이렇게 물으면 감독이 영화준비 중이라는 소문이 퍼지는 것이다. 이 준비기간이 짧게는 반년에서 길게는 수십년을 아우르는바 본인보다도 주위에서 더 지겨워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감독은 항상 준비 중이니. 밥을 먹다가도 남의 영화를 보다가도 심지어 영화를 찍고 있는 와중에도 차기작을 눈비 중인 것이다. 길을 가다 어떤 여자를 보면, 어느 역을 맡기고 싶다, 심지어 저 여자를 위해 영화를 한 편 만들고 싶다 그런 영감이 떠오를 때가 있는 것이다. 여배우라면, 여자라면 누구나 그런 꿈을 꾸기 마련인데 그 감독이 매우 유명하거나 해외영화제를 밥 먹듯이 초청받아 드나든다든가 하는 자라면 여배우의 로망은 부풀어 오르는 것이다.
“그때 준비하시던 거는 찍었어요?” 장화자는 오래 전 이야기를 날카롭게 지적하였다. 그때도 준비 중이라고 했을 거다. 하긴 그녀를 어떻게 한 것도 아니고 술자리에서 그것도 단 둘이도 아니고 좀 어울렸을 뿐인데, 한 놈이 그를 유망 전도한 감독이라고 이 시대의 진정한 예술감독이라고 그녀에게 소개했으나 그가 찍은 영화 제목을 몇 편 들어보더니 고개를 갸우뚱했고 그 뒤로 급속히 친해지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냥 뭔가 있는 친구라는 정도로만 얘기했어도 여자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관계를 진전시켜 볼 수 있었을 터인데, 그 놈 이야기는 전혀 도움이 안 되었던 것이다. 어쨌든 그녀가 이제 눈앞에 던져져 있으니 뭔가 해보야 되지 않겠냐 싶었다. 주머니에 복권 탄 돈도 있는데 말이다.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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