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순만 칼럼 - 오늘맑음] 사과에 관해 말하고 싶은 것
[임순만 칼럼 - 오늘맑음] 사과에 관해 말하고 싶은 것
  • 임순만 언론인·소설가
    임순만 언론인·소설가 hnanjn@naver.com
  • 승인 2019.11.26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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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우리가 한 입씩 베어 먹은 것은 사과(apple)였고, 사과(apology)였고, 그리고 또 다른 것이었다. 그것을 ‘어떤 희망’이라고 해도 괜찮을까?"

굵은 실로 꼰 목걸이를 하고 있던 여자가 떠오른다. 그 애와는 초등학교 시절 잠시 같은 반에서 지냈고, 십대 후반, 지방도시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 우연히 만나 가을날 교외의 과수원 길을 걸었던 기억을 갖고 있다. 그때 그녀는 이런 말을 했다. “모든 생명체에는 아픈 부분이 있는 것 같아. 나는 그 아픔에 관심을 갖게 돼!”라고. 젠장!

그 애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시골 초등학교로 전학을 온 아이였다. 외삼촌 집으로 살러왔다고 하는 아이는 우리보다 한 살이 많은 애였다. 부모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아이는 도시에서 6학년을 다니다 한 해를 휴학한 후 우리 학교로 왔다.

전학 온 여자애들에 대한 관심과 놀림은 어느 세상이나 있을 것이다. 물론 우리도 그랬다. 짝꿍이 되고 싶어 하면서도 어쩌다 짝꿍이 되는 날에는 나는 그 애를 괴롭히기 위해 별의별 궁리를 다하곤 했다. 책상 중앙에 금을 그어놓고 그 경계를 넘어오는 연필이나 지우기 따위는 돌려주지 않는다든지, 꼭 받고 싶다면 “오빠”라고 하면 한 가지씩 돌려주겠다든지, 여하튼 괴롭힐 수 있는 것은 뭐든지 머리를 짜내곤 했다. 그러나 그 애는 도시에서 살다 온데다가 6학년엘 다시 다니는 탓에 본토박이인 우리의 놀림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것 같았다. “내 것을 갖고 싶으면 그냥 가져.” 그런 식이었다.

"그날 우리가 한 입씩 베어 먹은 것은 사과(apple)였고, 사과(apology)였고, 그리고 또 다른 것이었다. 그것을 ‘어떤 희망’이라고 해도 괜찮을 것인가?"
"그날 우리가 한 입씩 베어 먹은 것은 사과(apple)였고, 사과(apology)였고, 그리고 또 다른 것이었다. 그것을 ‘어떤 희망’이라고 해도 괜찮을 것인가?"

어느 날 오후 우리는 평소처럼 그 애를 괴롭혔는데, 그 애는 평소와는 달리 버티지 않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우리는 뒤쫓아 갔다. 그날 왜 그랬던 건지 그 애의 달음박질은 아무도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날랬다. 나는 평소 달리기를 잘 하지 못했지만, 그날따라 가장 선두에서 그 애를 잡기 직전까지 뒤쫓아 갔다. 아마도 그 애를 잡고 싶은 나의 욕망이 가장 강했던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내가 마침내 그 애의 허리춤을 잡기 직전, 그 애는 휙 돌아서더니 엄청난 반동으로 나를 확 밀쳐냈고, 예기치 못한 반격을 받고 나는 순간적으로 나뒹굴고 말았다. 반바지를 입은 무릎에서 순식간에 피가 철철 흘렀다. 씩씩거리던 그 애는 피를 보자마자 놀라운 표정을 짓더니 안절부절못해 했다. 그리고 그 여자 애는 “널 미워하지 않아!”라고 말했다. 아이들이 우리를 둘러싸자 그 애는 슬금슬금 뒷걸음을 치더니 냅다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 다음날 오후 그 애는 다른 아이들이 없는 복도에서 내 앞으로 다가오더니 사과 한 알을 불쑥 내밀었다. 나는 앞장서서 그 애를 학교 뒤 울타리 쪽으로 데리고 갔다. 거기서 나는 그 애가 준 사과를 한 입 왈칵 베어 먹었다. 그리고 그 애에게 한 입 베어 먹은 사과를 건넸다. 자신이 준 사과를 잘 받으려 하지 않던 그 애는 내가 두 세 차례 권하자 사과를 받아 내가 한 것 그대로 한 입을 베어 먹고 나에게 주었다. 나는 한 입 베어 먹고 나머지를 또 그 애에게 건넸다. 그 애는 다시 또 그렇게 했다. 그렇게 여섯 번인가 일곱 번 사과를 한입씩 베어 먹고 나서 나는 씨방부분을 울타리 너머로 던져버렸다. 씨방까지 우적우적 먹고 싶었지만 그 애가 있는 데서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날 우리가 한 입씩 베어 먹은 것은 사과(apple)였고, 사과(apology)였고, 그리고 또 다른 것이었다. 그것을 ‘어떤 희망’이라고 해도 괜찮을 것인가?

우리는 침이 묻었다고 손톱만큼도 거리끼지 않았던 것 같다. 나도, 그 애도 그런 것은 애당초 염두에 없었다. 우리는 서로가 상대가 바라는 것을 해주고 싶었고, 그 외의 다른 것은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훗날 돌이켜보면 그것을 ‘우정’이나 ‘사랑’이라고 뭉뚱그리기에는 아쉬운 어떤 것이 있다. 사과를 그렇게 나눠먹으며 느꼈던 우리의 감정은 친밀감, 연대(連帶), 그리고 어떤 ‘막연한 희망’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모든 것을 나누고 싶은 친밀감, 어떤 상황에서라도 함께 하고 싶은 연대, 그리고 그 애와 나의 어떤 것을 서로 주고받고 싶은 미래의 희망.

"사과를 나눠먹으며 느꼈던 우리 감정은 친밀감, 연대(連帶), 그리고 어떤 ‘막연한 희망’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모든 것을 나누고 싶은 친밀감, 어떤 상황에서라도 함께 하고 싶은 연대, 그리고 그 애와 나의 어떤 것을 서로 주고받고 싶은 미래의 희망."
"사과를 나눠먹으며 느꼈던 우리 감정은 친밀감, 연대(連帶), 그리고 어떤 ‘막연한 희망’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모든 것을 나누고 싶은 친밀감, 어떤 상황에서라도 함께 하고 싶은 연대, 그리고 그 애와 나의 어떤 것을 서로 주고받고 싶은 미래의 희망."

그렇게 그 애와 나는 너 한 입, 나 한 입, 사과를 베어 먹는 일을 5년 후 지방도시에서 다시 한 번 경험하게 된다. 초가을 어느 휴일 오후 나는 농구를 하기 위해 친구를 불러내려고 친구의 집 쪽으로 가던 길이었다. 주택가 어느 집 앞에 한 여학생이 서 있었는데, 이상한 예감이 들어 그 여학생을 살펴보았더니 바로 그 애였다. 그녀는 굵은 실로 꼰 목걸이를 하고 있었다. 목걸이 끝에는 무슨 펜던트 같은 것이 매달려 있었던 것 같다. 우리는 동시에 서로 이름을 불렀다. 내가 그녀에게 다가가자 흰 블라우스와 검은 치마를 입은 그 애에게서는 살구 냄새 비슷한 향기가 나왔다.

나는 농구 따위는 때려치우고 그 애에게 함께 걷자고 제안했다. 그 애는 “시간이 없는데····" 하면서 순순하게 따라왔다. 주택가를 벗어나자 곧바로 과수원이 이어졌다. 우리는 소도시의 이름을 단 고교(남고)와 여고에 다니는 같은 학년이었고, 대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이었다. 의외로 그녀는 우리 누님이 그 도시에서 뭘 하고 있는지, 내가 그 해 어떤 학예회에서 어떤 성적을 거두었는지 같은 정보를 꽤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던 나는 왜 초등학교 6학년 때 외삼촌 집으로 살러왔는지,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등이 몹시 궁금해 “지금은 누구와 살고 있니?”하고 물어보았다. 내 질문의 속뜻은 지금 부모와 살고 있는지, 아니면 부모님은 어떻게 된 것인지, 하는 것이었다.

"아, 그런데 그녀는 그 사과를 받아 옛날처럼, 아니 옛날처럼 한 입 가득이 아니라 아주 조금 베어 문 후 입을 벌리지도 않고 오물오물 씹는 것이 아닌가."
"아, 그런데 그녀는 그 사과를 받아 옛날처럼, 아니 옛날처럼 한 입 가득이 아니라 아주 조금 베어 문 후 입을 벌리지도 않고 오물오물 씹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그 애는 아무 말이 없었다. 침묵이 흘렀다. 입을 다물어버린 그 애를 슬며시 바라보았더니 얼굴이 빨개졌고, 눈까지 충혈 돼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었다. 그 순간 내가 한 것은 주인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과밭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 빨갛고 탐스런 사과 하나를 우리 밭에 있는 것처럼 냉큼 따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사과를 씻지도 않고 손바닥으로 쓱쓱 문지른 후에 한 입 가득 베어 물고 우적우적 씹었다. 그러고 나서 그 사과를 그녀에게 건넸다. 아, 그런데 그녀는 그 사과를 받아 옛날처럼, 아니 옛날처럼 한 입 가득이 아니라 아주 조금 베어 문 후 입을 벌리지도 않고 오물오물 씹는 것이 아닌가. 그러고는 사과를 다시 나에게 건네주었다.

나의 ‘우적우적’과 그녀의 ‘오물오물’은 그렇게 몇 차례 계속된 후 나는 씨방을 과수원 풀밭으로 던져버리고, 사과즙이 묻은 그녀의 손을 내 손으로 문질러 닦아주었다. 근방에는 물도 없었고, 나는 손수건을 갖고 다니기에는 아직 어린 고딩이였다. 내가 그녀의 손을 잡았을 때 내 몸에 순간적으로 전해진 전율스러운 반응을 나는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되살려낼 수 있다. 그것 역시 그 애와 ‘연대’하고 싶다는 의지이자 앞날에 대한 ‘막연한 희망’ 같은 것이었다.

내가 그녀의 손을 잡고 있을 때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예전에 내가 밀쳐서 너 피가 많이 났잖아. 그날 나는 집에 가서 울었어.”라고. 내가 “그래서 다음날 사과를 나누어 먹었잖아, 오늘처럼!”이라고 대꾸하자 그녀는 한참을 있다 이런 말을 했다. “모든 생명체에는 아픈 부분이 있는 것 같아. 나는 그 아픔에 관심을 갖게 돼!”라고. 나는 그녀의 말을 어렴풋이 이해한 듯싶었지만, 아리송하고 난해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너 간호사가 되고 싶니?”

그 오랜 세월이 지난 후 나는 이런 시를 만난다.
 

잠에서 깨니 내가 꾸었던
꿈이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날이 밝고, 다시 어두워졌다.
그 풍요로운 시간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가?

잡초를 좀 뽑고, 차가운 꽃 몇 송이
꺾어다가 화병에 꽂았다.
약간 독서를 했고, 정돈과 빗질을 했다.

그날 나는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기로
맹세했고, 그렇게 했다.

잠시, 공연한 희망이 다가왔다가
내 곁을 지나갔다. 친숙한 숄을 걸치고
나무 태우는 요드 향기를 풍기며.

나는 그 공연한 것에게 말을 건네지 않았고 그것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우리 사이엔 따뜻한 관례가 오갔다
옛 친구들이 깨물어 먹던 사과처럼.

이쪽에서 한 입 베어 먹으면, 다음엔 그쪽에서 베어 먹는다.
그렇게 해서 다 없어질 때까지.

미국 여성 시인 제인 허쉬필드(Jane Hirshfield).
미국 시인 제인 허쉬필드(Jane Hirshfield).

Apple

Jane Hirshfield

I woke and remembered
nothing of what I was dreaming.

The day grew light, then dark again --
In all its rich hours, what happened?

A few weeds pulled, a few cold flowers
carried inside for the vase.
A little reading. A little tidying and sweeping.

I had vowed to do nothing I did not wish
to do that day, and kept my promise.

Once, a certain hope came close
and then departed. Passed by me in its familiar
shawl, scented with iodine woodsmoke.

I did not speak to it, nor it to me.
Yet still the habit of warmth traveled

between us, like an apple shared by old friends.
One takes a bite, then the other.
They do this until it is gone.

미국 여성 시인 제인 허쉬필드(Jane Hirshfield)의 ‘사과(Apple)'라는 시다. 친구와 서로 한 입씩 깨물어먹던 사과가 단지 ‘따뜻한 관례’(the habit of warmth) 그것뿐이었을까. 어느 추운 가을날 오후, 한껏 게으르고 싶은 화자에게 친숙한 숄을 걸치고 나타났다가 낙엽 태우는 듯한 냄새를 풍기며 사라지는 어떤 희망, 그 모습이 오래 전에 사과 하나를 서로 번갈아 깨물어먹던 친구들의 따뜻한 관습과 같은 그런 것이었을까? 한편으론 그렇다. 분명하다. 그러면서도 다른 것이다. 다른 그것은 더 이상 말하기 어려운 존재로 왔다가 잠시 머물다 간다.

"공간은 투명하고 시간은 제한적이다. 나는 그녀를 알 수 없다. 결코. 떠나는 것, 헤어지는 것이 영원은 아니지만 영원 같은 미궁이 되는 경우도 있다. 과수원에서 헤어진 후 그녀를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그것을 더 이상 말하는 것은 곤란한 일이다. 말로는 전달되지 않는다. 공간은 투명하고 시간은 제한적이다. 추운 가을날 나무 태우는 냄새를 풍기며 환영처럼 그녀는 온다. 그녀는 사과를 깨물어 먹던 시절만큼이나 따뜻한 희망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나 관계는 낯설다. 왜 그런가. 날은 밝지만 금방 어두워진다. 그래서 우리는 경험한 만큼만 안다. 나는 그녀를 알 수 없다. 결코. 그녀는 고개를 조금 숙인 채 불립문자(不立文字)처럼 서 있다가 간다. 그 이후의 일상이 펼쳐진다. 떠나는 것, 헤어지는 것이 영원은 아니지만 영원 같은 미궁이 되는 경우도 있다. 과수원에서 헤어진 후 그녀를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한 달 후 같은 장소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했지만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녀가 서 있던 동네를 여러 번 배회한 기억이 있다. 그 소도시에서 몇 km 떨어진 한 저수지 뚝방길에서 그녀를 보았다는 사람을 만난 적은 있다. 그녀가 늙은 교감과 산다는 허튼소리를 하는 놈의 아구통을 날려버린 적도 있다. (*)

임순만 소설가·언론인(전 국민일보 편집인·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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