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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 신사(186) - 좋은 아이디어 있습니까?

서석훈
  • 입력 2014.01.05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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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창(소설가, 시인)
좋은 아이디어 있습니까?



40대의 동영상 제작자가 메가폰 잡아본 지가 3년 하고도 7개월 되었다고 했을 때, 여배우 미나는 나도 3년 7개월 이상을 굶었다, 영화에 굶고 돈에 굶고 남자도 굶었다, 이렇게 속으로 부르짖었다. 그러면서 비싼 일식에다 여기 고급 바에서 양주를 사주며 메가폰 이야기를 하는 저의가 무엇이냐, 얼른 본론을 이야기해라, 설마 포르노 찍자는 건 아니겠지 하고 생각하였다.
감독은 이어 “뭐 3년 7개월 아니라 37년 간 영화판 주위만 어슬렁거리는 작자도 있긴 하지. 물건만 만들어 낼 수 있다면야 나도 몇 년은 더 기다릴 수 있지만”하고 말했다.
물건이라니, 하긴 영화도 물건이다. 지금 감독이 말한 물건이란 초대형 히트작품을 말하는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미나는 “물건만 만들지 말고 배우도 좀 만들어요.”하고 대답하였다. 작품상, 감독상만 타지 말고 여배우에게 주연상 조연상 인기상 같은 걸 안겨주는 영화를 만들라는 거였다.
“미나 씨. 뭐 좋은 아이디어 있으면 얘기해 봐요.”
아이디어는 술에서 나온다는 듯 양주를 한 잔 따르며 감독이 말했다. 뭔 아이디어? 지금 기획회의 하자는 건가. 여배우야 누가 찍자 그러면 감독 보고 시나리오 보고 출연 배우 면면을 보고 출연료를 따져보고 그리고 결정하면 되는 것이다. 다 시원찮아도 돈만 많이 주면 찍을 수 있고 지금 형편엔 사실 얼마라도 준다 하면 찍는 것 아닌가. 아이디어는 무슨 아이디어. “요즘은 부성을 강조하는 게 인기던데요.” 미나가 그게 무슨 아이디어나 되는 듯 말하자. 감독은 “부성. 부성 좋죠. 우리 아버지 이야기만 찍어도 눈물이 산정호수 만큼은 나오겠네.” 하는 것이었다. “어머, 아버님이 무슨 사연이 있으셨어요?” “뭐. 우리 때는 아버지 하면 다 그렇죠. 희생. 근면. 그리고 수십 년 다니던 회사에서 팽 당하는 거 이게 우리 아버지들 아닙니까.” 감독은 눈물에라도 젖은 듯 목소리가 잠겼다. 그러더니 “좋은 의견 주셨는데 좀 더 검토해 봅시다. 그런데 난 부성도 부성이지만 젊은 여성들도 아버지 못지않게 안 됐다는 생각이 들어. 예전처럼 집에서 살림만 해도 안 되고 맞벌이 해야지 얘 키워야지 보통 힘든 게 아니잖아.” 그래서 뭐 어쩌자는 건가. 안 됐으면 니가 뭐? 미나는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다. 남자가 좀 화끈하게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거지. 차라리 날 처먹고 싶다고 해라. 속 터져 죽겠네.
미나는 휴대폰 액정에서 시간을 들여다보았다. 이럴 땐 자신이 매우 귀중한 시간을 내고 있다는 걸 남자에게 인식시킬 필요가 있었다.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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