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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105] Critique: 오페라 카르멘, 예술의전당 오페라 극장, 11월 15-17일, 솔오페라단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19.11.18 09:32
  • 수정 2019.11.18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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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의 주인공은 성악가, 연출가도 아닌 음악, 그 자체, 작곡가 비제에게 사랑과 존경의 박수를!!!!

불이 꺼지고 맨 위의 스크린이 자막이 나오자 바그너 악극 <신들의 황혼>을 보러 왔는지 알았다. 카르멘 줄거리, 배경과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그리스신화 운명의 세 여신 이야기 파르케가 나와 바그너 <신들의 황혼> 서막의 내용을 설명하는지 알았다. <신들의 황혼>의 서막에서 북유럽 신화 대지의 여신 에르다의 세 딸인 운명의 여신 노른이 모여 앉아 운명의 실을 자으면서 미래를 예언하는 장면이 연상되었다. 이미 카르멘, 돈 호세, 에스카미요 세 사람의 운명이 정해져 있다는 걸 암시하는 건데 파르케는 계속 투명인지, 망령인지, 영적 존재인지 극에 등장하면서 주인공들과 같이 있었다. 극의 내용과는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는 설정이지만 현실적인 소재의 오페라에 비약이 심했다.

솔오페라단의 카르멘
솔오페라단의 카르멘

어떻게라도 오페라를 관중들에게 쉽고 즐겁게 감상시키고 오페라 시장을 창출하려는 노력이 정말 가상하다. 콘서트 오페라, 콘체르탄테, 야외 오페라, 해설이 있는 쉬운 오페라 등등 공연예술계는 어떻게 해서라도 오페라라는 장르를 시장에 이식시키고 영화나 뮤지컬같이 대중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자막으로 번역하고 원어 대신 번역해서 불러보기도 하고 맘대로 가위질해서 하이라이트만 들려주고 열약한 환경에서 세트와 의상을 공유하고 서로 빌려주고 빌려 가면서 클래식 성악인들이 대학 때 배운 전공을 계승하고 오페라의 명맥을 이어가기 위해 온갖 시도를 다 하고 있다. 사실 어떤 제목의 기획이든지 한계는 명확하다. 오페라라는 음악의 본질을 극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냥 듣는 게 아닌 알아들어야 하는 데 그러지 못하다. “고음과 소리를 잘 낸다”라는 외형적인 기교만 보지 말고 그 행위만 집중하지 말고 이면에 담긴 노래의 내용을 알아야 한다. 왜 눈물을 흘리고, 왜 칼에 찔려 어깨에 들러 메어지고 나가게 되었는지, 그리고 연주 도중 왜 갑자기 무대 뒤에서 괴성이 나오고 갑작스레 하얀 와이셔츠가 피로 물들었는지 알고 감상해야 하는데 그건 어렵고 가혹한 요구다. 주연 가수, 합창단, 무용단, 오케스트라가 유기적으로 하나(One team)로 움직여야 하나의 감동과 정신(One spirit)를 선사할 수 있는데 그러지도 못하는 현실이자 환경이다. 주연 가수 말고는 모든 걸 하나의 조직에 하나의 리더를 통해 이끌어져야 하는데 명함이 너무나 많다. 노래와 연기 잘 하는 국내 스타 가수 대신 어느 학교의 교수라는 사람이 출연하면 학교생활에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사람이 제대로 잘 할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하다. 하긴 그러면 제자들은 와서 자리는 채워줄 테다.

이번 오페라에 참여한 어린이 합창단
이번 오페라에 참여한 어린이 합창단

새삼 새로울 것도 없을 오페라 <카르멘>을 보기 위해 굳이 비 오는 일요일 오후 오페라극장에 발걸음을 한 이유는 이번 솔오페라단의 공연에는 기성 음악인들에게 성악을 배우는 ‘벨라비타’ 수료자 중 자원자들이 연기체험 및 공연을 함께 하는 형식으로 참여해, 합창단 또는 배우 역할을 맡아 같이 무대에 올라 공연을 만든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기라성 같은 세계적인 가수들과 함께 한 무대에 서서 배우고 노래하고 같이 한다는 잊지 못하는 추억을 선사하면서 또 그들을 보기 위해 평상시 오페라와 클래식을 접할 기회가 없던 그들의 가족과 지인들이 공연장으로 발길을 향해 새로운 관객 및 팬이 유입될 터, 생활예술, 참여 예술의 본보기이자 모범적인 예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졌다. 예술을 예술전공자들만의 전유물로 여기지 말고 개방을 시도함으로써 언어와 생활풍토, 환경, 역사가 전혀 다른 우리나라에서 계속된 홍보와 보급을 통해 오페라 역시 민중들과 함께 호흡하며 시대정신과 정서를 반영한 '유희'라는 것을 알게 해주는 시도, 일자리가 창출되고 음악인들이 음악으로 먹고 살 수 있으며 음악 애호 인구가 늘어날 수 있는 기회.

그래도 전문가와 아마추어의 간극은 깊을 수밖에 없다. 벨라비타 수료자들의 비중이 너무 적었다. 투우사가 입장하는 2막 2장이나 마지막 또는 3막의 처음이나 마지막엔 노래는 하지 않더라도 군중의 무리로 함께 들어갈 수 있었을 터인데 너무 적었다. 벨라비타 안에서 수준과 경험의 차도 분명 존재하였을 테고 어떤 이는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기꺼이 들여 무대에 서는 거 자체에 큰 보람을 느꼈겠지만 어떤 이는 무대 울렁증도 있고 바쁜 자신의 본업 탓에 짜인 오페라 연습 스케줄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을 테다. 또한 벨라비타든 돌체비타든 고작 몇 달 성악을 배웠다고 전문 합창단과 한 무대에 서서 노래를 부른다면 프로들의 자존심에도 생채기를 입히는 일이니 프로들의 저항과 반발도 따라올 터. 이탈리아에서 온 한국 현실을 하나도 모르고 또한 관심도 없을 연출가 관점에선 이들을 수용하기도 난감했을 것이다. 그럼 왜 굳이 우리나라 성악가들의 실력이 결코 뒤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외국에서 가수와 연출가, 지휘자를 공수해 올까? 초빙한 가수와 연주자들의 실력이 납득이 갈 정도로 월등히 뛰어난다면 모를까 결코 이번의 공연에만 국한하면 그러지도 않은데 왜 그래야만 했을까? 다들 자신만의 답은 있을 테니 더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영화 보러 가면 신난다. 미리 사전에 정보도 입수해 자신이 뭘 볼지 결정하고 기다려진다. 보고 나면 영화를 주제로 이야기꽃을 피운다. 자발적이다. 허나 영화, 뮤지컬과 같은 공연, 미디어 예술인데 오페라는 진지하고 엄숙하거나 아니면 지루함을 참지 못해 몸부림을 친다. 이 두 부류도 결국엔 아는 사람이나 아는 노래가 나오면 반가워하고 하는 걸로 귀결된다. 그리고 사진 찍기 바쁘고 인증샷은 남겨야 한다. 왜? 처음 간 곳이고 지인이기 때문이다. 인터미션이나 오페라 시작과 끝에 공연되는 오페라를 소재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왜? 그날 상연되는 오페라에 대해 자세히 모르고 보면서도 별 공감이 안 오기 때문이다. 많은 수의 가수들도 전체적인 오페라의 내용과 배경에 대한 지식도 없이 자기 노래 부르는 데만 열중한다.. 오케스트라 역시 단순히 반주 맞춰주는 것에 불과하다. 부르는 가수도 듣는 관객들 태반도 내용도 잘 모르고 즐겁지 않고 그저 앉아만 있는 고문을 당하는데 왜 이걸 굳이 해야 하나?

불어 발음을 듣다 보니 지난 10월 소프라노 김지현과 Golden Muses 공연에서의 한국에 유학 중인 중국 성악가들의 한국어 발음이 연상되었다. 우리가 지금 프랑스어를 그런 식으로 부르고 있다. 제대로 불렀는지도 모르는 거의 다 눈뜬 장님이다. 그렇다고 뮤지컬이나 영화같이 시각적으로 화려하거나 막대한 자본이 들어간 물량공세로 스텍터클하지도 않고 같은 값이면 훨씬 구미를 당기고 감동받을 크기의 공연이나 엔터테인먼트는 현시대에 쌓이고 쌓였다.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 만세! 결국 비제가 주인공이다.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 만세! 결국 비제가 주인공이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범접할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존재한다. 바로 음악이다. 눈이나 자극적으로 즐기는 게 아닌 감상하는 예술이다. 비제의 카르멘은 1막부터 4막 전체가 하이라이트여서 어느 한 대목 버릴 것도 없고 음악적으로 중요치 않은 부분이 없어 하나의 음도 뺄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음악이었다. 이국적이고 뇌색적이다. 감미로운 선율과 극적인 묘사, 내러티브의 완벽한 보조와 극음악으로서의 전개, 우아한 프랑스 풍의 선율, 정확하고 치밀한 표현과 구성, 참신한 화성과 화려하고 색채적인 관현악법 등 비제의 음악 <카르멘>은 들을 때마다 경탄을 금치 못하며 화려한 미디어가 넘쳐나는 현 풍토에 오페라의 존재 이유를 명확히 밝혀주는 넘사벽이다. 비제의 음악 가치를 온전히 느끼고 감동받을 오페라 인구수는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한국에서 오페라는 어쩔 수 없는 '순수예술이자 고급예술'이 되어 버렸다. 오늘의 주인공 비제에게 박수와 존경을! 운명의 세 여신을 연결하려는 듯한 3막 2장의 카르멘과 메르세데스 집시 친구들과의 타로 카드의 운세, 운명이 주인이다(Fate is master)의 문구를 인용한다. 역시 오페라 카르멘은 비제가 주인공(Bizet is master)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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